'순한맛' 윤정환이 빚어낸 인천Utd의 '무서운 축구' [이영규의 비욘더매치]

  • 이영규 기자
  • 입력: 2026.10.26 00:00 / 수정: 2026.10.26 00:00
온화한 리더십과 정교한 빌드업으로 승격 첫해 파이널 A 진출 쾌거
이제 더 높은 곳, 아시아무대를 바라본다
인천유나이티드 선수들이 24일 K리그1 제주SK와의 홈경기에서 1-1로 맞선 후반 35분 이동률이 다시 앞서가는 추가골을 터뜨리자 서로 부등켜안고 기뻐하고 있다./인천=K리그
인천유나이티드 선수들이 24일 K리그1 제주SK와의 홈경기에서 1-1로 맞선 후반 35분 이동률이 다시 앞서가는 추가골을 터뜨리자 서로 부등켜안고 기뻐하고 있다./인천=K리그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후반 추가시간, 페리어가 상대의 타이트한 압박을 뚫어내고 반대편으로 건넨 크로스가 이청용의 오른발에 걸려 골망을 가른 순간. 윤정환 감독은 손에 들고 있던 물병을 바닥에 내던지고 몸을 한 바퀴 돌린 뒤 격정적으로 주먹을 쥐어 보였다.

평소 기쁨을 표현하는 방식이라야 선 채로 양팔을 펼쳐 보이는 정도였던 윤 감독이다. 하지만 24일 제주SK와의 K리그1 정규라운드 최종전 홈경기에서는 달랐다. 이번 시즌 벤치에서 보여준 가장 뜨거운 세리머니였다. 1년 만의 다이렉트 승격에 이어 파이널 A 진출까지 이뤄낸 치열한 시간이 그 짧은 순간에 응축돼 있었다.

지난 시즌 K리그2 강등이라는 아픔을 겪었던 인천 유나이티드. 윤정환 감독은 팀을 맡자마자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K리그2 1위를 달성하며 1년 만에 K리그1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승격 첫해, 인천은 어느덧 K리그1 파이널 A에 안착하며 다시 한번 아시아 무대 진출을 바라보는 반전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놀라운 성과의 중심에는 윤 감독 특유의 '순한맛 리더십'과 '밀도 높은 빌드업 축구'가 자리 잡고 있다.

인천유나이티드 윤정환 감독이 24일 K리그1 제주SK와의 홈경기에서 후반 13분 이명주의 선제골이 터지자 두팔을 펼쳐보이며 기뻐하고 있다./쿠팡플레이 중계화면 캡처
인천유나이티드 윤정환 감독이 24일 K리그1 제주SK와의 홈경기에서 후반 13분 이명주의 선제골이 터지자 두팔을 펼쳐보이며 기뻐하고 있다./쿠팡플레이 중계화면 캡처

◆ 다그침 대신 독려, 베테랑과 신예를 묶은 '원팀'의 힘

윤정환 감독은 평소 감정 기복이 거의 없다. 팀이 승리할 때나 아쉽게 경기를 놓쳤을 때나 표정 변화가 크지 않다. 라커룸에서도 감정을 쏟아내기보다 조용히 경기를 복기한다.

이청용이 인천으로 이적한 뒤 윤 감독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부분 역시 "선수들을 다그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실책이나 패배로 의기소침해지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우고, 잘 준비하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다.

이러한 수평적이고 온화한 지도 방식은 선수들 사이의 경쟁을 팀 전체의 결속으로 연결하는 데 힘을 보탰다. 올해 새로 합류한 페리어가 지난 7월 울산전에서 선발 출전해 선제골을 터뜨린 뒤, 벤치에 있던 포워드 경쟁자이자 팀의 상징인 무고사에게 가장 먼저 달려가 포옹한 장면은 인천 선수단에 자리 잡은 끈끈한 유대감을 잘 보여준다.

이명주, 이청용, 이주용 등 노련한 베테랑들이 중심을 잡고, 김성민, 이동률, 서재민, 김건희 등 젊은 선수들이 자신의 장점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만든 신구 조화는 인천의 가장 큰 무기가 됐다. 윤 감독은 "명주와 청용이가 제가 운동장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뒤에서 잘 이끌어줬다. 그 좋은 분위기가 경기장에서 표현되는 것 같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선수들을 다그치기보다 믿고 맡기는 리더십은 선수들이 서로를 신뢰하고, 그라운드에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팀의 토대가 됐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캡틴 이명주(가운데)가 24일 K리그1 제주SK와의 홈경기에서 후반 선제골을 터뜨린 뒤 손을 들어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인천=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의 캡틴 이명주(가운데)가 24일 K리그1 제주SK와의 홈경기에서 후반 선제골을 터뜨린 뒤 손을 들어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인천=K리그

◆ 자극적인 매운맛이 아니다, 패스길을 열어가는 'K리그 최고 수준의 빌드업'

인천의 축구는 외견상 매운맛이 아니다. 상대를 압도하는 가공할 공격력이나 빽빽하게 가로막는 극단적인 텐백 수비를 구사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그라운드 위에서 보여주는 내공은 매섭다.

윤정환표 빌드업은 후방에서부터 짧은 패스워크로 차근차근 상대를 허물어간다. 상대가 강하게 전방 압박을 가해도 후방에서부터 패스 길을 찾고, 넓은 공간을 활용해 압박을 벗겨내며 공격의 출발점을 만들어간다. 서로 다른 장점을 지닌 공격 자원과 수비진, 젊은 선수들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면서 인천은 개인의 기량에만 의존하지 않는 조직적인 축구를 구현하고 있다.

이 시스템의 힘은 데이터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축구 통계 매체 풋몹(FotMob)에 따르면, K리그1 정규라운드를 마친 24일 현재 인천의 스쿼드 가치는 리그 12개 팀 중 11위(780만 유로)에 그친다. 반면 경기당 득점(1.3골, 4위)과 실점(1.1골, 4위)은 모두 리그 4위에 올라 있고, 평균 점유율(51.6%)과 클린시트(9개)도 각각 6위를 기록하며 주요 지표에서 고르게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선수단의 이름값이나 몸값을 넘어서는 성과의 밑바탕에는 윤 감독이 이식한 '조직과 빌드업의 힘'이 자리 잡고 있다.

윤 감독은 "어느 한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밑에서부터 빌드업을 해오며 발전된 모습이 분명히 있었다. 선수들이 서로 믿고 의지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인천유나이티드 서포서들이 24일 K리그1 제주SK와의 홈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 3-1로 앞서가자 우리의 항해는 ASIA를 향해라는 배너를 펼쳐보이며 포즈난 응원을 하고 있다./쿠팡플레이 중계화면 캡처
인천유나이티드 서포서들이 24일 K리그1 제주SK와의 홈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 3-1로 앞서가자 '우리의 항해는 ASIA를 향해'라는 배너를 펼쳐보이며 포즈난 응원을 하고 있다./쿠팡플레이 중계화면 캡처

◆ "우리의 항해는 ASIA를 향해"… 새로운 출사표

파이널 A 진출을 확정한 날, 인천 서포터들은 경기장에 "우리의 항해는 ASIA를 향해"라는 플래카드를 펼쳐 들었다.

윤 감독 역시 "팬들에게 약속했던 파이널 A를 달성해 기쁘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좀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준비하겠다. 오늘 경기를 통해 또 하나의 목표가 새롭게 생겼다"라며 아시아 무대를 향한 숨김없는 야심을 드러냈다.

골 하나, 승리 하나에 일희일비하며 감정을 드러내는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윤정환 감독이 만들어가는 '순하지만 강한' 인천의 축구는 K리그1 무대에 어느덧 단단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선수단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조직력과 정교한 빌드업으로 승격 첫해 파이널 A 진출을 이뤄낸 인천은 아제 아시아 무대를 바라본다. 인천의 항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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