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의 형태보다 어떤 가치를 제공하느냐가 관건

음악을 담던 앨범은 팬심을 담는 상품이 됐고, 그 이면에는 과잉 소비와 환경 문제도 쌓였다. 이제 앨범은 키링과 이어폰, 운동화가 돼 팬들의 일상으로 들어오고 있다. 단순히 형태만 달라진 걸까, 그 안에 담긴 가치도 달라진 걸까. 듣는 앨범에서 소장하는 앨범을 넘어 사용하는 앨범으로 진화하는 현재를 들여다보고 미래의 가능성을 짚어봤다. <편집자 주>
[더팩트 | 정병근 기자] 운동화를 신고, MP3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고,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K팝 팬들에게는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과 세계관을 경험하는 특별한 행위가 될 수 있다. 음악을 담고 소장하던 앨범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상품으로 진화하면서 새로운 소비 경험을 만들어내고 있다.
머치(MERCH) 앨범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뜨겁다. 과거 음반과 포토카드 등 구성품을 중심으로 소비했던 팬들에게 전혀 다른 형태의 상품은 신선한 경험이다. 단순히 독특한 물건을 소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티스트의 콘셉트와 서사를 일상에서 즐길 수 있다는 점도 구매를 이끄는 요인이다.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크리에이티브 비주얼의 김욱 총괄 디렉터와 조우식, 조수연, 이지홍은 NCT JNJM(엔시티 제노재민)의 컨버스 운동화 앨범에 대해 "신발이 앨범으로 제작됐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놀랍다는 반응이 있었으며 응원하는 아티스트의 앨범이 차별화된 형태로 주목받는다는 점에서 팬들의 만족감과 자부심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JYP엔터테인먼트(이하 JYP)도 팬들에게 비슷한 반응을 확인했다. JYP 관계자는 "새로운 형태의 머치 앨범을 공개할 때마다 팬 분들의 반응이 매우 뜨겁다. 단순히 음악을 소장하는 것을 넘어 앨범이 가진 콘셉트와 서사에 깊이 몰입할 수 있는 유기적인 매개체 역할을 하기 때문에 더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몰입을 위한 매개체 외에 상품의 희소성으로 또 다른 가치를 부여한다. JYP는 머치 앨범을 해당 활동과 콘셉트의 희소성을 담은 한정반으로 규정하고, 소장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초도 물량 이후 추가 제작은 진행하지 않는 기조로 운영하고 있다.

신선함과 희소성은 구매를 이끄는 강력한 동력이지만, 그것만으로 지속적인 상품 가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가방에 매달고 다니는 키링이나 실제로 음악을 듣는 MP3 플레이어, 발에 신고 외출하는 운동화라면 일반적인 소비재와 마찬가지로 품질과 편의성을 담보해야 한다. 이 점을 기획사들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SM 관계자는 "머치 앨범은 소장하는 앨범인 동시에 실제로 사용하는 제품인 만큼, 아티스트의 이름이나 한정판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치를 부여하기보다 제품 자체로도 충분한 매력과 완성도를 갖춰야 한다. 새로운 형태에서 오는 특별함은 물론, 품질과 사용 경험에 대한 만족도까지 충족되어야 지속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머치 앨범 제작 과정 역시 일반적인 음반 패키지와는 다르다. 단순히 디자인을 완성하고 인쇄물을 제작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기능과 내구성 등을 검증한다. 특히 전자기기와 같이 실제로 작동하는 제품을 앨범과 결합할 경우 제작 기간과 품질 관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JYP 관계자는 "전자기기나 실용적인 기능이 들어가는 머치 앨범 특성상 품질 관리의 기준을 훨씬 높게 적용하고 있다. 실물 샘플 검수를 일반 지류 상품보다 배로 반복하여 진행하며, 동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마이너한 문제점까지 찾아내 수정하는 작업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양산 및 품질 검증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앨범 전체 제작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머치 앨범을 가장 먼저 기획하고 제작에 들어간다"며 "협업 제조사 및 파트너사와 다각도로 소통하며 기술적 안정성과 제품 완성도를 최상으로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하이브 관계자도 "머치 앨범은 팬들이 소장하는 동시에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인 만큼, 각 품목의 특성과 사용성을 고려해 가격과 품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상품 유의사항, 교환 등 관련 사항은 상품별 기준에 따라 안내하고 있다"고 밝혔다.

머치 앨범의 상품군이 일반 소비재의 영역으로 다양해질수록 기획사가 고려해야 할 요소도 늘어난다. 동시에 기존의 실물 앨범이 갖지 못했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팬심에 기대 판매하는 상품을 넘어 그 자체로 갖고 싶고 쓰고 싶은 물건이 된다면 기존 팬덤 외부의 소비자에게도 다가갈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반드시 머치 앨범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실물 앨범도 음악과 콘셉트를 구현하는 방식에 따라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발매된 르세라핌의 싱글 1집 'SPAGHETTI(스파게티)'가 대표적이다. 사전 프로모션부터 앨범 디자인, 무대 세트까지 요리라는 키워드를 일관되게 반영했다. 실제 마트에서 판매될 것 같은 스파게티 상자와 패키지, 요리책처럼 구성된 포토북과 포토카드, '먹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실리카 젤 포장까지 세세하게 콘셉트를 구현했다.
일반적인 형태의 앨범에서도 개봉하고 구성품을 살펴보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경험으로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이러한 일련의 시도들은 새로운 앨범의 핵심이 반드시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소비자가 경험할 수 있는 방식을 다양화하는 데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획사들은 실물 앨범이 앞으로 더욱 다채로운 형태로 진화할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SM 관계자는 "음악을 소유하고 아티스트의 세계관과 콘셉트를 물리적으로 경험하려는 수요는 계속 존재할 것이며 머치 앨범은 이러한 경험을 넓히는 하나의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모든 앨범이 머치 앨범을 지향할 필요는 없다. 아티스트의 음악과 정체성에 따라 가장 적합한 형태는 다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형태의 새로움 자체보다 음악과 아티스트의 메시지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전달하느냐에 있다"고 강조했다.

JYP 관계자는 "음악을 담는 수단이라는 본질 하에 더 많은 리스너에게 전하고 느끼게 하는 전달의 역할은 시대 흐름과 소비자의 요구를 따르게 될 것"이라며 "현재는 디지털 요소와 함께 머치 카테고리에서 이동성, 편의성, 체험성, 감성 등을 고려하고 있다. 소비자가 앨범에 두는 개념과 가치에 대해 주기적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앨범이 어떤 형태를 취하느냐보다 소비자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느냐다. 소장 자체에 가치를 느끼는 팬에게는 전통적인 형태의 앨범이, 음악 감상을 중시하는 소비자에게는 CD나 LP가, 일상에서 아티스트와의 연결을 경험하고 싶은 팬에게는 머치 앨범이 각각 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넓히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젠 그 다음 스텝이 필요한 시기다. 앨범 수백만 장을 판매하는 것만큼이나 앨범이 오랫동안 팬들의 곁에 남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K팝 산업의 지속과 성장을 위한 과제다. <끝>
<관련 기사>
[앨범의 가치①] 듣지도 않는데..1억 장 팔리는 CD의 역설
[앨범의 가치②] 키링·이어폰에 운동화까지…사용하며 즐기는 음악
[앨범의 가치③] MP3·운동화·괄사 세라믹 어떻게 탄생했나
kafka@tf.co.kr
[연예부 | ssent@tf.co.kr]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 이메일: jebo@tf.co.kr
-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