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대신 영리하게 '예나코어' 확장

[더팩트 | 정병근 기자] 자신만의 색깔을 만드는 것만큼 어려운 게 그 색깔에 갇히지 않는 것이다. 최예나는 '네모네모'를 거쳐 올해 '캐치 캐치'로 이른바 '예나코어'를 완성했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바로 다음 순간, 조금 다른 곳으로 발을 내디뎠다.
최예나가 지난 2일 발표한 디지털 싱글 '보기 드문 여자'(Feat. 나우아임영)는 그래서 흥미롭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듯했던 최근의 최예나와 비교하면 한결 힘을 뺐다. 음악과 비주얼을 촘촘하게 채웠던 '예나코어'의 여러 장치도 상당 부분 걷어냈다. 그런데 노래를 듣고 있으면 묘하게 최예나다. 익숙한 최예나가 낯선 옷을 입었다.
'보기 드문 여자'는 보이그룹 블락비가 2014년 발매한 네 번째 미니 앨범 'HER(헐)'에 수록한 동명의 곡을 재해석했다. 원곡은 매력적인 여성을 바라보는 남자의 적극적인 구애를 담은 달콤한 팝랩이었다. 최예나 버전은 그 시선부터 뒤집는다. 누군가에 의해 '보기 드문 여자'로 묘사되던 사람이 이제 화자가 돼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한다.
원곡에서 남성이 상대를 향해 "You're not an ordinary girl(유아 낫 언 오디너리 걸)"이라고 했다면 이번에는 최예나가 "I am not an ordinary girl(아임 낫 언 오디너리 걸)"이라고 말한다. 원곡에서 매력적인 여성을 바라보며 자신이 피곤하다고 했던 후렴 역시 이번에는 '예쁜 건 나니까 네가 피곤하다'는 식으로 주체가 바뀌었다.
'보기 드문 여자'는 단순히 남성의 노래를 여성 키에 맞춰 다시 부른 리메이크와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그렇다 보니 리메이크임에도 최예나가 뛰어놀 영역이 넓다.
Mnet '쇼미더머니12'에서 주목받은 래퍼 나우아임영이 피처링으로 참여하면서 원곡의 일방적인 구애는 남녀가 말을 주고받는 밀당으로 변했다. 최예나는 자신의 매력을 잘 알고 있지만 간지러운 표현에는 능청스럽게 한발 물러서는 여자고, 나우아임영은 그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연하남이다. 이 지점에서 최예나의 강점이 빛을 발한다.

최예나가 솔로 활동을 하며 구축한 가장 강력한 무기는 특정 장르보다도 캐릭터를 노래로 만드는 능력이다. 2022년 'SMILEY(스마일리)'에서 이미 밝고 장난기 많고 당당한 에너지를 보여줬고 이후 록, 팝, 감성적인 음악 등을 오가며 자신의 범위를 탐색했다. 그 과정이 하나의 명확한 형태를 갖춘 게 2024년 '네모네모'였다.
사랑하며 발견한 서로의 모난 모습을 '네모'라는 도형으로 표현한 직관적인 가사, 밀레니엄 감성의 일렉트로닉 사운드, 손가락으로 네모를 만드는 안무와 만화적인 비주얼까지 음악과 캐릭터가 하나로 붙었다.
'캐치 캐치'에서 이를 더 뾰족하게 다듬었다. 반복적인 멜로디와 단번에 기억되는 포인트 안무, 높은 채도의 색감, 현실보다는 애니메이션에 가까운 세계가 한꺼번에 움직였다. 그렇게 '예나코어'는 단순히 귀여운 콘셉트가 아니라 과장된 표현과 빠른 에너지, 엉뚱하고 당당한 태도를 음악·퍼포먼스·비주얼 전체로 구현하는 최예나만의 방식이다.
이 방식은 제대로 폭발했다. '캐치 캐치'는 숏폼에서 시작된 열기를 음원 차트로 연결하며 써클 디지털차트 월간 최고 7위에 올랐고, 지난달 30일 스포티파이 누적 스트리밍 1억 회를 넘어섰다. 4월 서울을 시작으로 마카오, 타이베이, 홍콩, 도쿄를 돈 아시아 투어에 이어 8월 앙코르 콘서트까지 열며 활동의 크기도 키웠다.
이 상승세를 만든 '예나코어'를 한 번 더 꺼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런데 최예나가 택한 건 12년 전 보이그룹의 수록곡이다. 이 지점에서 '보기 드문 여자'의 가치가 생긴다.
새 버전에서도 최예나 특유의 밝고 가볍게 튀어 오르는 톤과 말을 장난스럽게 던지는 방식은 살아 있다. "내가 보기 드문 여자"라고 스스로 선언하는 능청스러운 태도 역시 '네모네모'나 '캐치 캐치'에서 보여준 최예나의 캐릭터와 맞닿는다. 오글거릴 수 있는 말을 뻔뻔하면서도 사랑스럽게 만들어내는 것은 최예나가 특히 잘하는 영역이다.
반면 그것을 포장하는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네모네모'와 '캐치 캐치'가 온갖 장치가 들어찬 새로운 세계였다면, '보기 드문 여자'는 훨씬 일상적인 로맨틱 코미디에 가깝다. 혼자 화면 전체를 장악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상대와 대화하고 밀고 당긴다. 그래서 최예나의 밝음도 이전처럼 폭발하기보다 상대의 말에 반응하며 작동한다.

2분 29초로 압축된 새 버전은 3분 11초였던 원곡보다 훨씬 짧고, 원곡의 익숙한 후렴을 중심에 남겨두면서 새로운 가사와 나우아임영의 파트를 빠르게 주고받는다. 기타와 베이스, 신시사이저를 활용한 편곡 역시 원곡을 그대로 복원하기보다 지금의 짧고 경쾌한 팝 문법에 맞게 다시 짰다.
뮤직비디오 역시 최예나 한 사람의 과장된 세계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관계와 케미스트리를 전면에 놓는다. 앞서 8월 앙코르 콘서트에서 나우아임영과 함께 이 곡을 선공개했던 것부터가 그런 성격을 잘 보여준다. 다음 챕터라기보다는 공연에서 시작된 즐거운 호흡을 음원으로 이어간 행보에 가깝다.
그렇기에 디지털 싱글이라는 형식이 적절하다. 한 곡짜리 리메이크 싱글은 부담 없이 다른 모습을 시험할 수 있다. 색깔을 버릴 이유도 없고, 계속 머물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이번 곡은 '예나코어'의 본질이 무엇인지 역으로 보여준다. 높은 채도의 세트, 애니메이션적인 설정, 쉼 없이 몰아치는 콘셉트를 걷어냈을 때도 최예나 특유의 톤과 표정, 능청스러운 당당함, 노래를 하나의 캐릭터처럼 소화하는 힘이 느껴진다. 이는 여러 장치들이 아니라 최예나 그 자체가 '예나코어'의 중심임을 증명한다.
지금 최예나에게 필요한 건 자신의 색을 더욱 짙게 칠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색이 어디까지 번질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고, '보기 드문 여자'는 그 첫 실험으로 꽤 영리한 선택이다. 디지털 싱글이라는 가벼운 형식에 이미 잘 알려진 블락비의 노래를 가져와 부담 없이 다른 톤을 시험했다. 그것도 자신의 핵심 장점은 잃지 않은 채.
그렇게 봤을 때 '보기 드문 여자'는 '예나코어'의 경계를 확인하는 곡이다. 최예나는 '캐치 캐치'로 올해 강력한 상승세를 탄 시점에 또 하나의 '캐치 캐치'를 서둘러 만들지 않고, 이미 확보한 자기 색깔을 다른 장르와 관계 속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예나코어'의 영리한 확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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