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다음은 휴머노이드…구미, 대한민국 '로봇 제조 심장' 노린다
  • 정창구 기자
  • 입력: 2026.10.01 12:02 / 수정: 2026.10.01 12:02
1~5국가산단 품은 '로봇 구미'…휴머노이드 양산기지로
삼성, 19조 투자 맞물려…로봇 공급망 선점 승부수
김장호 구미시장이 한국로봇산업진흥원(KIRIA)을 방문해 로봇 제조·자동화 설비를 살펴보며 관계자로부터 산업용 로봇의 기술과 활용 현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구미시
김장호 구미시장이 한국로봇산업진흥원(KIRIA)을 방문해 로봇 제조·자동화 설비를 살펴보며 관계자로부터 산업용 로봇의 기술과 활용 현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구미시

[더팩트ㅣ구미=정창구 기자] 대한민국 산업화를 떠받쳤던 구미국가산업단지가 반도체에 이어 이번에는 '휴머노이드'를 새로운 먹거리로 품었다.

정부가 지난달 30일 대구·경북을 국내 첫 로봇 분야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통합 지정하면서 구미 1~5국가산업단지가 대한민국 로봇산업의 핵심 생산기지로 올라섰다. 구미가 맡은 역할은 분명하다. 연구실의 로봇 기술을 실제 제품으로 만들고 대량 생산하는 '제조와 양산'이다.

이번 지정의 의미는 구미에 또 하나의 '특화단지'라는 간판이 붙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전자·IT를 시작으로 반도체와 방산으로 산업 영역을 넓혀온 구미가 이제 AI와 로봇을 기존 제조업에 결합하면서 산업구조 자체를 다시 짤 수 있는 국가 차원의 발판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무게가 다르다.

특히 휴머노이드는 AI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모터와 감속기, 액추에이터, 센서, 제어기 등 정밀 하드웨어와 배터리, 반도체, 통신·전자부품, 소프트웨어가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한다. 결국 기술 경쟁 못지않게 누가 안정적인 부품 공급망과 양산 능력을 확보하느냐가 시장 경쟁력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구미의 오래된 제조업 DNA가 다시 주목받는다.

강명구 국민의힘 국회의원(구미시을)과 지역 기업체 대표들이 지난 5월 21일 열린 AI특화공동훈련센터 개소식에서 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며 산업용 로봇 제조공정 시연을 살펴보고 있다. 구미시는 센터를 거점으로 AI·로봇 제조혁신을 이끌 현장 맞춤형 전문인력 양성에 나선다. /구미시
강명구 국민의힘 국회의원(구미시을)과 지역 기업체 대표들이 지난 5월 21일 열린 AI특화공동훈련센터 개소식에서 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며 산업용 로봇 제조공정 시연을 살펴보고 있다. 구미시는 센터를 거점으로 AI·로봇 제조혁신을 이끌 현장 맞춤형 전문인력 양성에 나선다. /구미시

구미 1~5국가산단에는 수십 년간 전자·전기·IT 산업을 뒷받침해 온 제조기업과 생산 인프라가 집적돼 있다. 새로운 공장을 처음부터 세워 산업생태계를 만드는 방식과 달리 기존 제조기업의 기술과 생산설비를 로봇산업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이 구미가 가진 강점이다.

경북의 로봇 특화단지 전략에서도 역할은 뚜렷하게 나뉜다. 구미가 부품과 완제품 제조·양산을 담당하고 포항이 R&D와 현장 실증을 맡는다. 여기에 대구의 로봇기업과 소프트웨어, 평가·인증 기반이 결합되는 구조다. 기술개발→부품→완제품→실증→사업화로 이어지는 초광역 로봇 밸류체인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도 로봇을 단순한 미래 기술이 아니라 실제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했다. 정부는 2030년까지 민관 합동으로 AI 로봇 20만대를 보급하고 현장 실증과 공공수요 창출 등을 통해 피지컬 AI 시장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구미로서는 '로봇을 만들 수 있는 제조기반'과 '로봇을 필요로 하는 산업 현장'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구미산단에는 전자·반도체뿐 아니라 방산과 이차전지 등 자동화·지능화 수요가 큰 산업군이 포진해 있다. 이 때문에 구미에서 개발·생산한 로봇을 산업현장에서 실증하고, 다시 제품 개선과 양산으로 연결하는 제조 생태계 구축도 가능하다.

여기에 삼성전자와 삼성SDS가 구미에 제시한 19조 원 규모의 휴머노이드·AI 관련 투자계획이 맞물리면서 구미 로봇산업의 외형을 키울 동력도 확보됐다.

AI 기반 자율주행과 각종 센서를 탑재한 4족 보행 로봇이 시연되고 있다. 4족 로봇은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산업현장과 재난·위험지역에서 순찰·점검·탐색 등 다양한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 /구미시
AI 기반 자율주행과 각종 센서를 탑재한 4족 보행 로봇이 시연되고 있다. 4족 로봇은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산업현장과 재난·위험지역에서 순찰·점검·탐색 등 다양한 임무 수행이 가능하다. /구미시

하지만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다.

대기업의 대규모 투자와 특화단지 지정이 곧바로 지역경제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삼성의 투자와 정부 지원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시장에 구미 중소·중견기업이 얼마나 진입하느냐가 핵심이다.

기존 전자·기계·부품업체가 로봇용 액추에이터와 센서, 제어기, 배터리 등 고부가가치 핵심부품 기업으로 전환하고, 실제 대기업 공급망에 들어가 수주와 매출을 만들어내야 특화단지 지정 효과가 지역에 남는다.

전문인력 확보도 넘어야 할 산이다. AI와 로봇, 정밀기계, 반도체를 아우르는 융합인재를 지역에서 길러내고 정착시키지 못한다면 생산시설은 구미에 있어도 핵심 연구·기술 인력은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구조가 반복될 수 있다.

로봇 분야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에 포함된 구미국가산업단지 전경. 구미는 1~5국가산단의 전자·IT 등 축적된 제조기반을 바탕으로 로봇 핵심부품부터 완제품까지 아우르는 대한민국 휴머노이드 제조·양산 거점으로 도약할 기반을 마련했다. /구미시
로봇 분야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에 포함된 구미국가산업단지 전경. 구미는 1~5국가산단의 전자·IT 등 축적된 제조기반을 바탕으로 로봇 핵심부품부터 완제품까지 아우르는 대한민국 휴머노이드 제조·양산 거점으로 도약할 기반을 마련했다. /구미시

따라서 앞으로 구미시의 성적표는 특화단지 지정 자체가 아니라 '기업의 변화'로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몇 개 기업을 유치했느냐보다 기존 지역기업 가운데 몇 곳이 로봇기업으로 전환했는지, 얼마나 많은 기업이 대기업 공급망에 진입했는지, 그리고 투자와 매출·고용이 실제 얼마나 늘었는지가 중요하다.

특화단지에는 투자 지원과 기반시설 확충, R&D와 정책금융 우대, 인허가 신속처리 등 기업 투자를 뒷받침할 정책수단이 연계된다. 구미가 이 제도를 지역기업의 기술개발과 사업전환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연결하느냐가 앞으로의 과제다.

구미는 이미 방산혁신클러스터와 반도체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를 확보한 데 이어 로봇까지 국가 전략산업의 핵심 축에 이름을 올렸다.

한때 대한민국 수출산업을 상징했던 전자도시 구미가 이제 반도체·방산·AI·로봇이 맞물린 미래 제조도시로 다시 한번 변신을 시도하는 셈이다.

강명구 국민의힘 국회의원과 지역 기업체 대표들이 지난 5월 21일 열린 AI특화공동훈련센터 개소식에서 개소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센터는 AI·로봇 기반 제조혁신을 이끌 현장 실무형 전문인력 양성에 나선다. /구미시
강명구 국민의힘 국회의원과 지역 기업체 대표들이 지난 5월 21일 열린 AI특화공동훈련센터 개소식에서 개소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센터는 AI·로봇 기반 제조혁신을 이끌 현장 실무형 전문인력 양성에 나선다. /구미시

김장호 구미시장은 "반도체에 이어 로봇 분야에서도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된 것은 구미의 첨단산업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고 대한민국 휴머노이드 산업의 중심으로 도약하는 새로운 전환점"이라며 "핵심부품 개발과 생산·실증, 사업화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세계와 경쟁하는 글로벌 로봇산업 핵심거점으로 키워가겠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특화단지 지정이 구미에 던진 질문은 하나다.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었던 구미의 제조력이 '휴머노이드 시대'에도 통할 것인가.

국가정책과 대기업 투자, 50여 년간 축적한 제조기반이라는 세 개의 축은 이미 갖춰졌다. 이제 남은 것은 그 기회를 지역기업의 기술과 매출, 일자리로 바꾸는 일이다. 구미의 '로봇도시' 경쟁은 특화단지 지정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시작됐다.

tk@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