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마케팅의 절대강자 덴츠 불참이 원인
‘탈(脫) 덴츠 시도’ 딜레마

[더팩트 l 유병철 전문기자] # 9월 19일 개회식을 치른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이 시설, 운영 등에서 엉망진창이라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개회식마저 매진이라던 관중석에 빈자리가 많았고, 참가선수단 중 일부가 도중에 자리를 뜨고, 일본 내 지상파 생중계가 이뤄지지 않는 등 흥행실패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한국은 물론, 주요 외신과 심지어 자국에 대한 비판을 삼가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 매체까지 쓴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비용 절감과 화이트 엘리펀트(대회 후 남는 대규모 시설) 방지가 목적이라고 하지만 사고가 빈발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참가선수단의 불만이 쇄도합니다. "형편없다"는 반응을 넘어 선수들이 컨디션 관리가 어렵다며 하소연할 정도입니다.
# 보도가 많이 됐는데 숙소는 물이 새는 화장실에, 식사 부실, 허술한 방 배정 등 시작부터 온갖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한국 농구대표팀은 숙소를 컨테이너에서 호텔로 급히 변경하기도 했지요. 운영은 더 심각한데 도대체 배차를 어떻게 한 것인지 차량은 나타나지 않고, 축구팀을 야구장으로 데려가기도 했습니다.
훈련을 위해 동네 학원버스를 급히 빌리거나, 비싼 택시요금을 내며 숙소로 이동하기도 했죠. 훈련장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아, 야구는 실내훈련을, 여자배구팀은 호텔 피트니스 센터에서 컨디션을 관리했습니다. 급기야 한국 남자하키 팀의 경기(15일) 때 애국가 대신 북한 국가가 울려퍼졌죠. 이를 만회한다고 국제관례를 깨고 전 종목에서 일시적으로 국가연주를 중지하는 졸속 결정을 내렸는데 이마저도 제대로 공지가 안 돼 혼란이 발생했습니다.

# 대형 스포츠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치러온 선진국 일본이 왜 이럴까요. 일단 표면적으로 개최 비용 급증에 따른 '여유없는 자금사정'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장애인아시안게임을 포함한 이번 대회 개최 총비용이 3700억 엔(약 3조 2600억 원)으로 늘어나 초기 추정치의 3배 이상으로 많아졌습니다. 조직위원장을 맡은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는 "OCA의 예상치 못한 요구로 약 600억 엔(약 5300억 원), 물가·인건비 상승으로 약 550억 엔(약 4900억 원)의 비용이 더 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곳간이 넉넉지 않으니 다양한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 그런데 흥미로운 원인분석이 나왔습니다. 인도의 유력 매체 '인디언 익스프레스'는 19일 ‘이번 아시안게임에 일본 최대의 스포츠마케팅 및 광고대행사인 덴츠(電通)가 배제되면서 대회운영 전반의 미숙함과 행정 대혼란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이치 현에 위치한 시가쿠칸(至学館) 대학의 타니오카 쿠니코 학장도 "덴츠 없이 다양한 사람이 모여 대회를 준비했는데, 이 구조가 이런 규모의 대회에서는 문제를 낳고 있다"고 분석했죠. 나름 논리가 있어 보입니다.
# 광고회사인 덴츠는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회사입니다. 한국의 동종업체와는 체급이 다릅니다. 덴츠는 일본 내에서 광고와 방송은 물론, 엔터테인먼트와 스포츠 분야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습니다. 2020 도쿄 올림픽 등 그동안 일본에서 열리는 대형이벤트를 도맡아왔지요. 정치명문가나 재벌가의 자녀가 경력을 쌓기 위해 근무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심지어 지금은 파산했지만 한때 국제축구연맹(FIFA),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의 마케팅대행사로 위세를 떨쳤던 ISL의 지분 49%(51%는 아디다스 집안)를 소유하기도 했습니다.

# 이런 덴츠는 2020 도쿄 올림픽(2021년 개최)과 관련해 입찰 담합과 뇌물수수 혐의로 법원에서 벌금 등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덧붙여 덴츠는 물론, 2위 업체인 하쿠호도 등 대형 광고대행사의 정부 입찰 참여가 정지됐습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 덴츠가 빠진 이유입니다. 그동안 일본에서는 ‘덴츠 없는 대형 스포츠이벤트’는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지난해 일본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과 럭비세계선수권이 덴츠 없이 무탈하게 치러지기는 했지만 아시안게임은 규모 면에서 차원이 다릅니다. 일본의 '지지통신'은 ‘이번 아시안게임이 덴츠 의존에서 벗어나는(脫電通) 새로운 전형이 될까’라는 기사로 의미를 부여했지만, 현재 운영노하우와 전문인력 부족 등 덴츠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겁니다.
#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구석이 여럿 있습니다. ‘강자에 대한 복종 문화’가 대표적입니다. 태평양전쟁 때 ‘1억 옥쇄’를 외치며 강하게 저항했지만, 일왕의 항복선언 후 심하다 싶을 정도로 친미로 돌아서 미국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죠.
일본의 현대정치도 비슷합니다. 세습이 만연하고, 웬만해서는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않습니다. 다른 분야에서도 1등은 비판보다는 인정을 받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민주화 이후 여차하면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어느 분야든 잘나가는 1등은 늘 거센 비판을 각오해야 하는 한국과는 사뭇 다르죠.
이번 아시안게임이 그들의 기대처럼 일본의 스포츠이벤트 개최에서 절대강자(덴츠)로부터 벗어나는 변곡점이 될까요? 아니면 여러 부작용을 이유로 다시 ‘덴츠의 세상’으로 돌아갈까요? 남의 나라 얘기지만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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