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라고 해도…” 구멍 숭숭 뚫린 경복궁 창호지 [오승혁의 현장]
  • 오승혁 기자
  • 입력: 2026.09.16 18:16 / 수정: 2026.09.16 18:29
16일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는 경복궁 찾아
건물 곳곳 구멍 뚫린 창호지들 가득
16일 오승혁의 현장이 찾은 경복궁에서 조선시대 왕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건물의 창호지가 더러 훼손된 모습을 마주했다. /경복궁=오승혁 기자
16일 '오승혁의 현장'이 찾은 경복궁에서 조선시대 왕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건물의 창호지가 더러 훼손된 모습을 마주했다. /경복궁=오승혁 기자

[더팩트|서울 경복궁=오승혁 기자] "창호지 뚫는 사람들 많죠.. 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 있어요."

16일 '오승혁의 현장'은 서울 종로구 경복궁을 찾았다. 9월 중순임에도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 검을 든 무인, 공주, 왕자 등의 느낌으로 각기 다른 한복을 아름답게 차려입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미소를 머금고 궁을 거닐었다.

근정전과 경회루 등 주요 관람 장소에서는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언어가 끊이지 않았다. 궁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거나 영상통화로 가족과 친구에게 주변 풍경을 보여주는 관광객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웨딩 촬영에 나선 예비부부와 사진작가들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고궁의 아름다운 풍경을 따라 걷다 보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모습이 나타났다. 전각 문과 창문에 붙어 있는 창호지 곳곳에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일부 구멍은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정도였지만, 종이가 크게 뜯겨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곳도 있었다. 작은 구멍 여러 개가 일정한 높이에 줄지어 생긴 창호도 확인됐다.

경복궁을 여러 차례 돌며 전각의 창호 상태를 살펴봤다. 높은 곳이나 관람객의 접근이 제한된 곳보다 성인과 어린이의 손이 쉽게 닿는 높이에서 훼손 흔적이 집중적으로 발견됐다.

종이가 자연적으로 찢어졌다기보다 누군가 손가락이나 물체를 이용해 누른 것처럼 보이는 구멍도 적지 않았다. 다만 이날 현장에서는 관광객이 직접 창호지를 뚫는 장면은 확인하지 못했다.

창호지는 전통 건축에서 빛과 공기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실내외 공간을 나누는 역할을 한다. 얇은 종이로 만들어진 만큼 작은 충격에도 쉽게 손상될 수 있다.

16일 오승혁의 현장은 서울 종로 경복궁을 찾았다. 경복궁 건물 곳곳에 구멍이 뚫린 창호지가 보였다. /경복궁=오승혁 기자
16일 '오승혁의 현장'은 서울 종로 경복궁을 찾았다. 경복궁 건물 곳곳에 구멍이 뚫린 창호지가 보였다. /경복궁=오승혁 기자

특히 궁궐 내부의 생활상을 재현한 전각 주변에서 훼손이 두드러졌다. 창호 너머에 놓인 가구와 병풍 등 내부 모습을 자세히 보려는 관람객이 창호지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손을 대거나 구멍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복궁 비현각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왕족이 공부하던 공간을 보존해 조선 시대의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도록 내부가 꾸며진 공간의 창호지에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었다.

훼손된 부분을 새 종이로 덧댄 흔적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문제는 이미 보수한 부위나 그 주변에 다시 구멍이 생겼다는 점이다. 훼손과 보수가 반복되면서 창호지 표면에는 크기와 색깔이 서로 다른 덧댐 자국이 겹겹이 남았다.

경복궁의 창호 훼손은 최근 갑자기 발생한 문제만은 아니다. 조선시대 궁중 생활을 소재로 한 이야기나 사극에서 창호지에 구멍을 낸 뒤 안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익숙하게 등장한다.

일부 관광 안내 과정에서도 과거 사람들이 창호에 구멍을 뚫고 내부를 엿봤다는 이야기가 소개된다. 이러한 설명이 흥미로운 문화적 일화로 전달되는 과정에서 일부 관광객의 모방 심리나 호기심을 자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창호지를 직접 뚫어보는 행동은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일이 아니다. 문화유산의 일부를 훼손하는 행위다. 한 사람이 만든 작은 구멍이 다른 사람의 장난을 부르고, 비슷한 행동이 반복되면 창호 전체를 교체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복궁은 곳곳에 안내판을 설치해 창호지 훼손 등을 자제하고 있다. /경복궁=오승혁 기자
경복궁은 곳곳에 안내판을 설치해 창호지 훼손 등을 자제하고 있다. /경복궁=오승혁 기자

경복궁 곳곳에는 ‘문화유산을 보호해 주세요’라는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안내문은 경복궁의 건물과 담장, 수목 등이 후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설명하며 낙서와 담장·창호 훼손을 금지하고 있다. 위반 시 관련 법령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경고도 적혀 있다. 송곳으로 창호지를 뚫는 듯한 행동을 금지하는 그림을 통해 훼손을 막고 있다.

경복궁은 이날도 관광객들의 웃음과 카메라 셔터 소리로 가득했다. 취재진도 사진을 찍어달라는 관광객들의 부탁에 자세를 숙이고 이들의 비율을 신경 쓰며 추억을 남겨줬다. 추억이 아름답고 평화롭게 이어지기 위해 문화유산을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sh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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