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회복은 결국 행동에서 시작된다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사람의 진짜 모습은 평온할 때보다 위기의 순간에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무엇을 말했느냐보다 어떤 행동을 했느냐가 그 사람의 품격을 결정하는 순간이 있다. 불의의 위험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는 사람과 그대로 지나치는 사람, 손을 내미는 사람과 외면하는 사람 사이에는 불과 몇 초의 차이밖에 없지만 그 선택이 남기는 울림은 오래간다.
축구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흔히 한 팀의 가치를 승점과 골, 우승 트로피로 평가한다. 그러나 스포츠가 백 년 넘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것은 단지 승패 때문만은 아니다. 경쟁 속에서도 사람을 존중하고, 어려움에 처한 이를 외면하지 않는 인간적 가치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잘하는 축구보다 먼저 있어야 할 것은 좋은 축구이고, 좋은 축구의 출발점에는 결국 사람이 있다.
지난 9일 새벽, 부천 원정경기를 마치고 광주로 돌아가던 광주FC 선수단 앞에 그 질문이 예고 없이 던져졌다. 선수단 버스 앞에서 트럭과 승용차가 충돌했고, 트럭은 전복됐으며 승용차에서는 불길이 치솟았다. 언제 더 큰 사고로 번질지 알 수 없는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그때 신창무가 먼저 사고 차량으로 다가가 운전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이슬란드 출신 공격수 프리드욘슨과 이인성 트레이너가 곧바로 뒤따라 운전자를 차량 밖으로 구출했고, 김종문 주임은 선수단 버스에 비치된 소화기를 들고 화재를 1차 진압했다. 이후 선수단은 구조된 운전자를 살피며 출동한 소방대원에게 안전하게 인계했다.

그 순간 그들에게는 작전을 지시하는 감독도, 판단을 기다릴 VAR도 없었다.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판단만 있었다.
이들의 행동은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고, 한국프로축구연맹도 그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프로연맹은 13일 제5차 상벌위원회를 열어 신창무와 프리드욘슨, 이인성 트레이너, 김종문 주임 등 4명에게 선행 표창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신속하게 구조에 나서 인명 피해를 막는 데 기여했고, 투철한 시민의식으로 K리그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였다.
표창은 상장 한 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프로축구연맹이 이들의 행동을 공식적으로 기린 것은 K리그가 무엇을 가치 있는 행동으로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선언이기도 하다. 골을 많이 넣고 승리를 많이 거두는 선수만이 리그의 얼굴이 아니라, 그라운드 밖에서 공동체의 책임을 다하는 축구인 역시 K리그가 자랑해야 할 주인공이라는 메시지다.
그래서 이들의 행동은 지금 한국축구에 더욱 크게 다가온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의 실패와 계속된 행정 논란으로 축구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어느 때보다 차가워진 시기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실망을 거듭하며 축구에서 발길을 돌리던 사람들에게, 캄캄한 새벽 고속도로에서 보여준 광주 선수단의 행동과 이를 기린 프로연맹의 표창은 작은 희망의 불씨가 됐다.
한국축구가 다시 신뢰를 얻는 길은 반드시 거창한 혁신안에서만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위험에 빠졌을 때 외면하지 않는 것, 해야 할 일을 망설이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 그리고 그런 행동을 축구계가 제대로 평가하고 기억하는 것. 어쩌면 신뢰 회복은 그런 기본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축구를 사랑했던 이유는 과연 승리뿐이었을까. 월드컵에서는 졌고, 행정은 신뢰를 잃었다. 그러나 위험에 빠진 한 사람을 위해 불길 앞으로 달려가는 축구인들이 있는 한 한국축구의 심장까지 멈춘 것은 아니다. 광주FC의 네 사람이 보여준 그 몇 분이 말해준다. 한국축구는 아직 죽지 않았다.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 이메일: jebo@tf.co.kr
-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