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택공급 후보지 거론에 주민 반발
신용산역~정원 길목에 반대 화환 줄이어

[더팩트|서울 용산어린이정원=오승혁 기자] "집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 뭔 소리인지는 알지. 그런데 꼭 여기를 또 아파트 단지로 만들어야 하냐고."
12일 '오승혁의 현장'은 이재명 정부가 주택 공급 후보지로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서울 용산구 용산어린이정원을 찾았다. 이날 신용산역에서 용산어린이정원으로 향하는 인도에는 근조 화환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기자가 현장에서 확인한 화환만 100여 개에 달했다.
화환에는 "서울의 허파를 지키자", "어린이정원 뺏지 마라", "콘크리트에 갇힐 아이들의 미래 책임져라", "하다 하다 어린이 공원을 빼앗냐"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서울 도심의 주택 공급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미군기지 반환 부지를 활용해 조성된 대규모 녹지 공간까지 주택 부지로 활용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용산어린이정원 안으로 들어서자 바깥의 무거운 분위기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셔틀버스가 내부를 오갈 정도로 넓은 정원에는 아이와 함께 온 가족,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시민, 친구와 연인끼리 찾은 방문객들이 눈에 띄었다. 점심시간이 지난 낮 시간대에는 인근 직장인들이 카페를 찾거나 산책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용산어린이정원은 과거 미군기지 반환 부지 일부를 정식 용산공원 조성에 앞서 임시 개방한 공간이다. 정원 안에는 과거 미군들이 살았던 주택과 미8군 클럽을 중심으로 형성된 대중음악의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 공간, 카페, 굿즈숍, 물놀이터, 어린이놀이터, 축구장, 야구장 등이 자리하고 있다. 단순히 빈 녹지가 아니라 시민들이 걷고, 쉬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복합 여가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정원 내부를 크게 한 바퀴 도는 동안 곳곳에서 용산이라는 공간이 가진 여러 층위가 보였다. 과거 미군들이 생활하던 주거 시설은 서울 한복판에 남은 이질적인 시간의 흔적처럼 보였고, 미8군 클럽과 가수들의 역사를 담은 공간은 한국 대중문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그 옆으로는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와 물놀이 시설, 시민들이 쉬어가는 카페가 이어졌다.
한 시민은 "서울에 집이 부족하다는 말에는 동의한다"면서도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아름다운 휴식 공간이 있는데 여기를 또 아파트 단지로 바꾸는 것은 아닌 듯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방문객은 "정말 공원이 너무 잘 되어있다"며 "개발 논리만으로 보기에는 아까운 공간"이라고 했다.
최근 정부는 수도권 내 가용 부지를 활용해 추가 주택 공급을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용산어린이정원 일대도 후보지로 거론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용산어린이정원은 전체 미군기지 반환 부지의 일부로, 현재는 시민들에게 개방된 정원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이곳을 주택 부지로 활용할 경우 5000호에서 최대 7000호 수준의 공급이 가능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 입장에서는 용산어린이정원이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 인근에 있고,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과도 맞물려 있어 주택 공급 효과가 큰 부지로 보일 수 있다. 서울 도심에 신규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대규모 부지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용산 일대는 청년층과 신혼부부 수요가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그러나 서울시와 용산구, 주민들의 반발은 거세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용산공원 부지에 주택을 짓는 방안에 반대 입장을 밝히며 "반환받은 그대로 후손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냈다. 용산구도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국민적 공감대 없이 주택 공급 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용산공원의 본래 취지와 국가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주민들은 용산어린이정원 주변에 근조 화환을 설치하는 한편, 용산공원 관련 법 개정 반대 움직임에도 나서고 있다. 용산공원조성특별법은 미군기지 반환 부지를 용산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용산어린이정원 일대에 주택을 공급하려면 예외 조항을 두거나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정부의 고민도 작지 않다. 서울의 주택 공급 부족과 높은 집값은 시민들의 생활과 직결된 문제다. 특히 청년층과 신혼부부에게 도심 내 주택 공급은 절실한 과제다. 교통이 편리하고 업무지구 접근성이 높은 용산 일대는 공급 효과가 큰 곳으로 평가된다.
결국 논란의 핵심은 주택 공급과 녹지 보존 중 어느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에 집이 더 필요하다는 현실과, 도심 속 대규모 공공 녹지를 미래 세대에 남겨야 한다는 가치가 충돌하고 있다. 용산어린이정원은 아직 완성된 공원은 아니지만, 이미 시민들은 이곳을 산책하고 쉬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용산어린이정원을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 정부의 주택 공급 대책 발표와 맞물려 더 커질 전망이다. 서울에 더 많은 집이 필요하다는 요구와, 서울 한복판의 드문 녹지를 지켜야 한다는 요구 사이에서 어떤 선택이 내려질지 시민들의 시선이 용산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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