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한 그릇에 담긴 이웃의 정"…울릉 저동에 퍼진 따뜻한 나눔
  • 김성권 기자
  • 입력: 2026.08.10 00:00 / 수정: 2026.08.10 00:00
11년째 이어온 '사랑의 짜장차', 울릉도 첫 봉사
지역 어르신 350여 명에 짜장면·공연 선물
아름다운 동행 봉사단 사랑의 짜장차가 9일 울릉 저동항 어판장에서 지역 어르신에게 대접할 짜장면 준비에 분주하다. /아름다운 동행 봉사단 사랑의 짜장차’
'아름다운 동행 봉사단 사랑의 짜장차'가 9일 울릉 저동항 어판장에서 지역 어르신에게 대접할 짜장면 준비에 분주하다. /'아름다운 동행 봉사단 사랑의 짜장차’

[더팩트ㅣ울릉=김성권 기자] "짜장면이 참 맛있네. 오랜만에 사람들과 같이 먹으니 더 맛있는 것 같아."

9일 오전 울릉군 저동 수협 어판장 일원. 평소 어민들의 삶의 현장인 어판장이 이날만큼은 조금 달랐다. 이른 시간부터 행사장 한쪽에서는 커다란 솥과 조리도구가 분주하게 움직였고, 갓 만들어진 짜장 소스 냄새가 주변에 퍼졌다.

"짜장면 나갑니다!" 봉사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어르신들이 하나둘 식사 공간으로 모였다. 접시에 면을 담고 짜장 소스를 듬뿍 얹는 손길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한쪽에서는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잡았다. 짜장면을 받아든 어르신들은 젓가락을 들기 전 서로의 안부부터 물었다.

"잘 지냈어?", "요새 어디 아픈 데는 없고?"

짜장면 한 그릇이 오가는 사이, 조용했던 어판장은 어느새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음악소리로 가득 찼다.

경북 성주에 본부를 둔 '아름다운 동행 봉사단 사랑의 짜장차'가 울릉도를 찾은 날이었다.

11년째 이어온 짜장면 나눔 봉사활동이 울릉도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봉사단은 이날 울릉지역 어르신 350여 명에게 현장에서 직접 만든 짜장면을 무료로 대접했다. 이날 현장에는 많은 어르신들이 찾아와 따뜻한 한 끼를 함께했다.

짜장면만 있는 잔치는 아니었다. 대중가요와 색소폰 공연이 이어지자 식사를 마친 어르신들이 박수를 치며 공연을 즐겼다.

"잘한다!" 흥겨운 음악이 울려 퍼질 때마다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졌다.

식사를 마친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공연을 지켜보는 어르신들의 모습에서는 오랜만에 찾아온 흥겨운 자리에 대한 반가움이 묻어났다.

지역 어르신 350여명이 아름다운 동행 봉사단 사랑의 짜장차에서 제공한 짜장면을 먹고 있다. /아름다운 동행 봉사단 사랑의 짜장차
지역 어르신 350여명이 '아름다운 동행 봉사단 사랑의 짜장차'에서 제공한 짜장면을 먹고 있다. /'아름다운 동행 봉사단 사랑의 짜장차'

◇"섬까지 찾아와 준 마음이 고맙지"

이날 행사에서 눈에 띈 것은 울릉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였다.

저동 개발위원회와 부녀회, 상가번영회 회원들은 봉사단과 함께 그릇을 나르고 음식을 전달했다. 식사를 마친 자리의 빈 그릇을 치우고, 행사장 곳곳을 오가며 부족한 일손을 채웠다.

육지에서 배를 타고 건너온 봉사단과 섬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한 팀이 된 것이다.

"이쪽으로 가져다드릴게요.", "어르신들 먼저 앉으세요." 주민들의 손길이 이어지면서 행사장은 큰 혼선 없이 움직였다.

저동 주민 A씨(78)는 짜장면을 받아들고 환하게 웃었다. 그는 "정성이 담긴 짜장면도 맛있고 신나는 공연까지 볼 수 있어 기분이 좋다"며 "멀리서 울릉도까지 찾아와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것이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옆자리에서는 한 어르신이 짜장면을 비비며 말했다. "육지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 고생하네. 참 고맙지."

말 한마디였지만 이날 행사에 담긴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했다.

행사를 마친 아름다운 동행 봉사단 사랑의 짜장차 관계자들이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아름다운 동행 봉사단 사랑의 짜장차
행사를 마친 '아름다운 동행 봉사단 사랑의 짜장차' 관계자들이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아름다운 동행 봉사단 사랑의 짜장차

◇ 짜장면 먹고, 공연 보고…경품 추첨에 또 한 번 ‘웃음’

식사가 끝난 뒤에도 행사장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추첨을 통해 TV와 전자레인지, 커피포트, 프라이팬, 수저세트 등 다양한 경품이 전달되면서 행사장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내 번호 아니야?", "TV 되면 좋겠다." 경품 추첨이 진행될 때마다 어르신들은 번호표를 손에 꼭 쥔 채 귀를 기울였다.

당첨자가 발표되면 주변에서는 박수와 축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짜장면 한 그릇으로 시작된 잔치가 공연과 경품으로 이어지면서 이날 저동 어판장은 한동안 작은 축제장이 됐다.

◇ 11년 봉사, 울릉에서 더 깊어진 의미

정한교 아름다운 동행 봉사단 사랑의 짜장차 대표에게 이번 울릉도 봉사는 특별했다.

11년째 전국 곳곳을 찾아 짜장면 봉사를 이어왔지만,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와 주민들을 만나는 봉사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정 대표는 "11년째 봉사활동을 이어오면서 여러 지역을 찾아갔지만 울릉도에서 가진 봉사활동이 어느 시·군보다 큰 보람으로 다가왔다"며 "배를 타고 섬까지 들어오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어르신들을 직접 만나고 주민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면서 봉사의 의미를 더 크게 느꼈다"고 말했다.

특히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 그릇을 나르고 음식을 전달하는 일부터 식사 안내, 행사장 정리까지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손을 보태면서 봉사단의 부담을 덜었다.

결국 이날 행사는 '육지에서 찾아온 봉사단의 일방적인 나눔'이 아니라 울릉 주민들과 함께 만든 잔치가 됐다.

◇군수·의회 의장도 함께한 따뜻한 자리

이날 행사에는 남한권 울릉군수와 이철우 울릉군의회 의장 등도 참석해 봉사단과 주민들을 격려했다.

남한권 울릉군수는 "먼 길을 건너 울릉에서 뜻깊은 행사를 마련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며 봉사단의 나눔에 고마움을 전했다.

임시로 마련된 식사 공간에서는 이날 내내 어르신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짜장면을 비비며 웃었고, 누군가는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박수를 보냈다.

봉사자들은 빈 그릇을 치우고 다시 음식을 날랐다. 주민들은 부족한 일손을 거들었다.

어판장 한쪽에서는 짜장 소스가 끓고, 다른 한쪽에서는 음악이 흘렀다. 그 사이를 봉사자들과 주민들이 쉼 없이 오갔다.

거창한 구호도, 화려한 시설도 없었다. 짜장면 한 그릇과 사람들의 손길, 그리고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 전부였다.

하지만 섬에서 나눈 그 한 끼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육지에서 배를 타고 건너온 봉사단과 울릉 주민들이 함께 만든 이날의 풍경은 멀리 떨어진 섬에도 따뜻한 이웃의 정이 닿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행사가 끝나갈 무렵, 어르신들은 하나둘 자리를 정리하며 행사장을 나섰다.

"오늘 참 잘 먹었어.", "내년에도 또 오면 좋겠네." 짧은 인사 뒤 어르신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그리고 빈 그릇이 하나둘 치워진 자리에는 여전히 웃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짜장면 한 그릇.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한 끼였지만, 이날 울릉 저동에서는 그 한 그릇에 육지와 섬을 잇는 정과 이웃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어르신들의 얼굴에 번진 미소가 이날 봉사가 남긴 가장 따뜻한 답이었다.


t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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