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울릉=김성권 기자] '국토외곽 먼섬 지원 특별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넘었다. 그런데 섬 주민들은 또다시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법은 생겼지만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지난 6일 여수에서 열린 섬의 날 행사에 앞서 만난 울릉군과 신안군은 특별법 개정과 함께 '섬지역 특별자치군' 설치를 공동 추진하기로 했다. 옹진군까지 연대해 국회와 중앙정부를 상대로 공동 대응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겉으로는 지방자치단체 간 정책 공조다. 하지만 본질은 다르다.
지방정부들이 "현행 특별법만으로는 섬을 지킬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2024년 제정된 특별법은 국토 외곽 먼섬의 특수성을 국가가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그러나 법이 만들어졌다고 섬 주민의 현실까지 바뀐 것은 아니다.
물류비는 여전히 비싸고 의료 접근성은 취약하다. 배편 하나가 끊기면 생활권 자체가 흔들리고, 기상이 악화되면 육지와의 연결은 사실상 차단된다.
그런데도 국가의 섬 정책은 여전히 '영토 수호'라는 명분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가 영토를 지켜달라고 요구하면서, 그 영토를 지키며 살아가는 주민들의 삶에는 얼마나 책임을 지고 있는가.
울릉도와 흑산도, 백령도 등 국토 외곽의 섬은 지도 위의 점이 아니다. 사람이 살고 생활하는 공간이다. 주민이 떠나고 학교와 병원, 상점이 사라진다면 영토는 지도에 남을지 몰라도 그곳을 지탱하는 사회적 기반은 무너진다.
섬의 인구감소는 단순한 지방소멸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영토 관리 문제이기도 한 이유다.
이번에 울릉군과 신안군이 요구한 정주생활지원금과 세제 특례, 의료·물류 지원 확대, 국가보조항로 확대 역시 단순한 지역 숙원사업으로 볼 일이 아니다.
섬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회성 공모사업이나 행사성 예산이 아니다.
섬에 계속 살아도 손해 보지 않을 최소한의 국가적 안전망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행정체계다.

육지와 섬을 사실상 같은 기준으로 관리하면서 섬의 특수성을 해결하겠다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육지에서 몇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섬에서는 하루, 이틀 또는 며칠이 걸린다. 물류와 의료, 교통, 교육, 에너지 비용도 구조적으로 다르다.
그런데 행정과 재정의 기준은 여전히 육지 중심이다.
그래서 '특별자치군'이라는 대안이 나온 것이다.
자치권 확대와 재정 특례를 통해 섬의 현실에 맞는 행정체계를 만들자는 취지다. 단순히 지방정부에 권한을 더 달라는 요구로만 볼 일이 아니다. 현행 지방자치제도가 과연 섬의 현실을 제대로 담아내고 있는지를 묻는 문제다.
특히 이번 움직임에서 주목할 것은 울릉과 신안이 손을 잡았다는 사실이다.
동해와 남해, 영남과 호남이라는 지역적 경계를 넘어섰다. 여기에 서해의 옹진군까지 합류한다면 '먼섬'이라는 공통의 현실이 하나의 정책 의제로 묶이게 된다.
하지만 연대의 이름만 거창해서는 안 된다.
공동건의문을 만들고 국회를 찾아가는 것으로 끝난다면 또 하나의 지방자치단체 행사에 그칠 뿐이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다.
특별법에 어떤 조항을 넣을 것인지, 재원은 누가 부담할 것인지, 정주생활지원금은 어떤 기준으로 지급할 것인지, 국가보조항로는 어디까지 확대할 것인지, 특별자치군의 권한과 재정은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구체적인 답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와 국회도 이 문제를 '섬 지역의 추가 지원 요구' 정도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사람이 떠나는 섬에는 결국 국가가 관리해야 할 공간만 남는다.
섬 주민들에게 '나라의 끝을 지켜달라'고 요구해 왔다면 이제 국가가 답해야 한다. 주민들이 감당해 온 추가 비용과 불편, 의료와 교통의 격차를 언제까지 개인의 희생으로 떠넘길 것인가.
특별법이 있는데도 주민들이 다시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현행 제도의 한계를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일 수 있다.
'영토를 지키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박수와 기념행사가 아니다. 떠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다.
울릉과 신안 그리고 옹진의 연대가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이제 말이 아니라 법과 예산으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국토의 끝에 사는 주민을 지키는 것이 곧 국토를 지키는 일이라면, 그 책임 역시 지방정부가 아니라 국가가 져야 한다.
이번 '먼섬 연대'가 또 하나의 선언으로 끝날지, 대한민국 섬 정책을 바꾸는 출발점이 될지는 이제 정부와 국회의 선택에 달렸다.
t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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