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초점] '오히려 경쟁력을 떨어트린다'…K팝 상향평준화의 함정
  • 최현정 기자
  • 입력: 2026.08.03 10:00 / 수정: 2026.08.03 10:00
중소 기획사도 음악과 퍼포먼스 완성도 대부분 뛰어나
자금과 시간 부족 등으로 인해 결국 비슷한 콘셉트 반복
중소 기획사 소속 K팝 그룹도 음악과 퍼포먼스의 완성도는 모두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상향평준화가 오히려 변별력을 떨어트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더팩트DB
중소 기획사 소속 K팝 그룹도 음악과 퍼포먼스의 완성도는 모두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상향평준화가 오히려 변별력을 떨어트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더팩트DB

[더팩트ㅣ최현정 기자] '완성도가 뛰어나다.'

많은 전문가가 K팝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 특징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높은 완성도'가 오히려 K팝 경쟁력 상실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어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해 10월 Mnet 서바이벌 오디션 '언프리티 랩스타 : 힙팝 프린세스'에 메인 프로듀서로 출연한 일본의 댄서 겸 가수 이와타 타카노리는 한국과 일본 연습생의 차이를 "한국 연습생은 스킬이 높고 연예계에서 빠르게 데뷔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아서 인상적이었다. 반면 일본 참가자는 거친 면이 있지만 하루하루 사람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성장이 빨라서 재미있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타 타카노리의 이 분석은 K팝의 중요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로 K팝 그룹 멤버들의 가장 일반적인 데뷔 경로는 '학원'이다.

댄스 학원이나 보컬 학원 등에서 레슨을 받은 수강생들이 학원과 연계된 연예 기획사의 오디션을 보고 연습생으로 들어가 데뷔까지 이르는 식이다.

즉 K팝 그룹으로 데뷔하는 상당수의 멤버는 연습생을 시작하기 전부터 기본기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며, 설령 학원이 아닌 다른 경로로 입사한다고 하더라도 연습생을 거치면서 동일한 레슨을 받게 된다.

문제는 레슨이라는 것은 결국 일종의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특정 기준에 맞춰 보컬과 댄스 등을 진행하다 보니 실력 자체는 급격히 상승할지 몰라도 각각의 개성이나 특징을 드러내는 데에는 불리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음악 제작자 A씨는 <더팩트>에 "오디션을 볼 때면 보컬이든 댄스든 같은 곡을 선곡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며 "물론 같은 곡이라도 사람에 따라 소화하는 역량이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자신의 장기를 보여주기보다 '오디션 그 자체를 위해 준비했다'는 느낌을 지우긴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더군다나 K팝의 전반적인 작곡이나 프로듀싱 수준까지 상향평준화 되면서 데뷔 후에도 변별력을 갖추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또 다른 제작자 B씨는 "중소 기획사에서 나오는 K팝 그룹들도 단순히 음악이나 안무 완성도만 따지면 다들 뛰어나다. K팝 특유의 시스템이 확립되면서 모두 좋은 곡을 얻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퍼포먼스 연습에 엄청난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중소 기획사의 그룹을 여럿 섞어 놓고 각각의 특징을 딱 집어서 말하라고 하면 구분이 쉽지 않다"며 "완성도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어느 팀을 골라도 큰 차이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일본 걸그룹 큐티스트리트는 한국 음악방송에 출연해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국내 K팝 제작자 중에 이와 유사한 콘셉트의 걸그룹을 제작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Mnet K-POP 유튜브 채널 캡처
일본 걸그룹 큐티스트리트는 한국 음악방송에 출연해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국내 K팝 제작자 중에 이와 유사한 콘셉트의 걸그룹을 제작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Mnet K-POP 유튜브 채널 캡처

실제 하이브나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등 주요 대형 기획사에서는 아티스트가 직접 자신의 곡을 만드는 경우가 부쩍 늘었고, 예전이라면 관심을 갖지 않았을 마이너한 장르를 K팝과 혼합하는 시도도 주저하지 않는다.

일례로 최근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의 아티스트는 하드 테크노부터 드럼앤베이스, 이모록, 하우스, 신스록, 레이지, 하이퍼팝 등등 메이저라고 하기 어려운 서브 장르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성공을 거뒀다.

다만 이는 상대적으로 재능이 뛰어난 인재가 많이 몰리고 자금과 시간에도 여유가 있는 대형 기획사이기에 가능한 방식이지 중소 기획사에는 '다음'을 기약할 시간과 여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중소 기획사들은 알고 있음에도 또다시 안정적인 음악과 콘셉트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 마케팅 업체 임원 C씨는 "최근에 일본의 걸그룹 큐티스트리트가 한국 음악 방송에 출연해 큰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사실 K팝의 기준으로 보면 보컬이나 퍼포먼스, 라이브 실력 등이 뛰어나다고 하기 어렵다. 하지만 오히려 '신선하다'며 인기를 얻었다"며 "하지만 K팝 제작자에게 이와 똑같은 콘셉트로 걸그룹을 제작하라고 하면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예측이 안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몰라서 비슷한 콘셉트를 반복하는 게 아니다. 안정적인 선택을 하면 어느 정도 수요가 발생할지 예상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렇다"며 "비슷하게 내면 '자기 복제'라는 소리는 들을지언정 기존 팬이 이탈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콘셉트로 나오면 '초심을 잃었다'며 자칫 기존팬마저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결국 계산이 서는 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룹 아일릿은 Its Me에서 기존의 이미지나 음악 노선과 전혀 다른 하드 테크노 장르를 선택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이는 대형 기획사이기에 가능한 시도라는 반응이다./아일릿 공식 유튜브 채널 캡처
그룹 아일릿은 'It's Me'에서 기존의 이미지나 음악 노선과 전혀 다른 하드 테크노 장르를 선택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이는 대형 기획사이기에 가능한 시도라는 반응이다./아일릿 공식 유튜브 채널 캡처

가장 큰 문제는 당장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C씨는 "음악과 퍼포먼스의 완성도 자체는 뛰어나다보니 최근 리센느처럼 역주행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는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같은 성공 사례가 자주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그는 "K팝 산업은 이미 시스템화됐고 이 구조가 단숨에 바뀌기는 불가능하다"며 "AI 음악이 제도권으로 들어와 음악산업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뒤바뀌는 대변혁이 일어나거나 마이클 잭슨, 비틀즈처럼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압도적인 재능을 지닌 인재가 나타나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상황은 당분간 이어질 확률이 높다"고 덧붙였다.

C씨는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중소 기획사는 아무리 돈을 써도 점점 더 성공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어설프게 대기업을 따라하느니 차라리 비용을 절감하고 작은 성과부터 차근차근 노리는 것이 현실적인 운영 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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