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두 골에도 웃지 못한 한국 축구의 하루 [박순규의 창]
  • 박순규 기자
  • 입력: 2026.07.31 00:00 / 수정: 2026.07.31 00:00
2026 북중미 월드컵 참사 한 달 뒤 샬럿에서는 환호,
30일 여의도에서는 정몽규·홍명보의 뒤늦은 사과 '씁쓸'
홍명보 전 축구국가대표 감독(오른쪽)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축구협회 현안 관련 청문회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가운데는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 /국회사진기자단
홍명보 전 축구국가대표 감독(오른쪽)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축구협회 현안 관련 청문회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가운데는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 /국회사진기자단

[더팩트 | 박순규 기자] 30일 오전, 한국 축구 팬들은 태평양 양쪽에서 펼쳐진 두 장면을 지켜봤다. 한쪽에서는 환호가 터졌고, 다른 한쪽에서는 무거운 사과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어느 장면 앞에서도 마음껏 웃을 수는 없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서는 손흥민이 메이저리그사커(MLS) 올스타팀의 주장 완장을 차고 그라운드에 섰다. 가슴에는 태극기가 새겨져 있었다. 불과 한 달 전,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뒤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떨궜던 한국 축구의 캡틴이었다.

같은 시각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는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과 홍명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청문회 증인석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샬럿에서는 손흥민이 다시 일어섰고, 여의도에서는 한국 축구를 이끌었던 사람들이 뒤늦게 사과했다. 이처럼 극명하게 엇갈린 두 장면은 월드컵 참사로 상처받은 팬들의 마음을 더욱 씁쓸하게 했다.

손흥민은 전반 20분 동점골을 터뜨렸다. 3분 뒤에는 역전골까지 넣었다. 35분 동안 두 골을 기록하며 MLS 올스타의 4-3 승리를 이끌었고, 경기 최우수선수에 선정됐다. 한국 선수 최초의 MLS 올스타팀 주장과 MVP라는 새로운 이정표도 세웠다.

득점 뒤 펼친 ‘찰칵 세리머니’에 관중석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최근 소속팀에서 3경기 연속골을 기록한 데 이어 올스타전에서도 멀티골을 터뜨린 손흥민은 월드컵 이후 공식 경기 기준 4경기 연속 득점을 이어갔다.

손흥민의 2026 MLS 올스타전 MVP를 알리고 있는 MLS SNS.
손흥민의 2026 MLS 올스타전 MVP를 알리고 있는 MLS SNS.

한국 축구 팬이라면 마땅히 기뻐해야 할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두 골을 보면서 월드컵에서의 장면들이 겹쳐 떠오른 것은 왜일까.

손흥민은 한국 대표팀 실패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할 선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감독 선임과 대표팀 운영, 전술과 선수 관리의 문제 속에서도 주장이라는 이유로 가장 큰 부담을 짊어졌다. 조별리그 탈락 뒤에도 누구를 탓하지 않았다. 다시 훈련하고, 다시 달리고, 다시 골을 넣었다.

손흥민의 두 골은 그래서 반가우면서도 아팠다. 개인은 실패를 딛고 앞으로 달려가는데, 그를 지켜줘야 할 한국 축구의 행정은 여전히 실패의 원인을 해명하는 자리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국회 청문회에서 정몽규 전 회장은 "축구협회장으로서 책임감을 통감한다"고 했다. 홍명보 전 감독도 "제가 져야 할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과는 필요하다. 최고 책임자가 국민 앞에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팬들이 듣고 싶었던 것은 다시 반복된 "죄송하다"는 말만이 아니었다.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은 왜 불투명했는가. 원칙과 절차는 왜 흔들렸는가. 월드컵 실패를 예고한 여러 경고에도 협회는 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는가. 누가 어떤 판단을 내렸고, 그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이 필요했다.

사과에도 때가 있다. 실패를 막기 위한 결단이 필요한 순간에는 침묵하거나 문제를 외면하다가, 결과가 참혹하게 끝난 뒤에야 고개를 숙인다면 그 사과는 국민의 상처에 충분히 닿기 어렵다. 실기한 사과는 책임의 완성이 아니라 책임의 시작일 뿐이다.

공교롭게도 2003년 한국 선수 최초로 MLS 올스타전에 출전한 선수는 홍명보였다. 23년이 흐른 이날, 홍명보는 국회 청문회 증인석에 앉았고, 그 뒤를 이은 손흥민은 주장 완장을 차고 올스타전 MVP가 됐다.

한 사람은 세계의 박수를 받았고, 다른 한 사람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것을 개인의 영광과 몰락이라는 단순한 구도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한국 축구의 시간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선수들은 여전히 세계와 경쟁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행정은 과거의 잘못을 해명하는 데 붙잡혀 있다.

물론 이벤트 성격이 강한 올스타전의 두 골이 월드컵 실패를 씻어줄 수는 없다. 손흥민 혼자 한국 축구 팬들의 깊은 상처를 치유할 수도 없다. 그의 활약은 잠시 마음을 녹인 위로였을 뿐, 한국 축구가 다시 태어났다는 증거는 아니다.

오히려 손흥민의 빛나는 장면은 한국 축구 행정의 그늘을 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선수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실패를 이겨내려 몸부림치는데, 책임자들은 청문회가 열리고서야 국민 앞에 나와 사과했다. 팬들이 손흥민의 두 골에도 마냥 웃지 못한 이유다.

‘후사지사(後事之師)’라는 말이 있다. 지나간 실패를 앞으로의 스승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면 사과는 의례가 되고, 청문회는 책임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라 분노를 잠시 달래는 행사가 될 뿐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깊이 숙인 고개가 아니다. 감독 선임 절차의 투명성, 기술 행정의 독립성, 책임과 권한의 명확한 구분, 국민 앞에 공개할 수 있는 의사 결정 구조가 필요하다.

손흥민은 월드컵의 상처를 안고 다시 뛰었다. 35분 동안 두 골을 넣으며 팬들에게 잠시나마 위로를 건넸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많은 골을 넣어도 한국 축구 행정의 실패까지 대신 갚아줄 수는 없다.

샬럿의 환호는 뜨거웠고, 여의도의 사과는 무거웠다. 하지만 두 장면 사이에 선 한국 축구 팬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월드컵의 상처가 남아 있었다.

팬들이 기다리는 것은 또 한 번의 사과도, 한 선수의 영웅적인 분투도 아니다. 다시는 손흥민의 두 골을 보면서조차 가슴 한편이 쓰라리지 않아도 되는 한국 축구다.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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