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잘못 쓰면 시스템도 무너진다 [최순호의 축구세상]
  • 최순호 전 국가대표
  • 입력: 2026.07.30 10:11 / 수정: 2026.07.30 10:11
대한축구협회 위기의 본질은 제도가 아닌 리더십의 실패
인적 쇄신·절차적 정당성·자율성 회복으로 다시 출발해야
홍명보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과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리는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청문회에 출석하기 위해 국회로 들어서고 있다. /국회=배정한 기자
홍명보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과 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리는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청문회에 출석하기 위해 국회로 들어서고 있다. /국회=배정한 기자

[더팩트 | 최순호 전 국가대표] 대한축구협회가 깊은 혼란에 빠져 있다.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는 마음은 무겁고 안타깝다. 그러나 위기의 원인을 단순한 행정 착오나 특정 사건 하나에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 오늘의 혼란은 오랜 시간 축적된 잘못된 리더십과 인사, 권한 집중이 한꺼번에 드러난 결과다.

협회에 시스템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목표와 정책이 있었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조직과 과제도 존재했다. 문제는 제도를 만들고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아무리 훌륭한 시스템을 갖춰도 한 사람의 판단과 영향력이 조직 전체를 압도하면 균형은 무너진다. 제도가 사람을 통제해야 하는데, 사람이 제도 위에 서는 순간 조직은 사유화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결국 위기의 시작은 잘못된 리더십이었다.

조직의 성패는 사람을 어떻게 선택하고 어디에 배치하느냐에서 갈린다. 대한축구협회는 대한민국 축구를 대표하는 최고 기관이다. 그렇다면 행정과 기술, 심판과 지도자 육성, 유소년 정책의 각 분야에 최고의 전문성을 갖춘 인재가 자리해야 한다.

특히 기술 분야는 세계 축구의 흐름을 읽고 한국 축구만의 방향을 설계할 수 있는 전문가가 중심이 돼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일부 인선은 전문성보다 이름값과 대중적 인지도, 화제성에 치우쳤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인기 있는 사람과 일을 잘하는 사람은 반드시 같지 않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처럼, 사람을 잘못 쓰면 아무리 좋은 시스템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대한축구협회는 기업의 오너 조직이 아니다. 국민의 사랑을 바탕으로 존재하는 문화·체육단체다. 회장은 주인이 아니라 일정 기간 조직 운영을 맡은 최고 책임자다. 임기는 개인의 권리가 아니라 조직의 건강한 순환을 위한 제도다.

그러나 권력이 장기화하고 의사결정이 특정인에게 집중되면 견제와 균형은 약해진다. 직언하는 사람은 사라지고, 책임을 묻는 문화도 흐려진다. 협회는 특정인의 시대가 아니라 세대가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지속 가능한 조직으로 운영돼야 한다.

축구 원로들의 역할도 돌아봐야 한다. 나 역시 이제 원로 세대에 속한다. 그래서 지금의 침묵에 책임을 느낀다. 축구계가 방향을 잃었을 때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중심을 잡고 원칙을 말해야 한다. 후배들에게 부담을 떠넘기고 뒤에서 걱정만 해서는 안 된다.

침묵은 때때로 동의로 받아들여진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하고, 지켜야 할 자율성과 원칙은 분명히 지켜내야 한다. 그것이 한국 축구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선배들의 책무다.

지금처럼 비상한 시기일수록 감정보다 절차가 앞서야 한다. 직무대행 체제를 중심으로 질서를 유지하고, 정당한 절차를 통해 비상대책기구와 새로운 집행부를 준비했어야 한다. 그러나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비난과 충돌이 먼저 등장하면서 축구계 전체가 진흙탕 싸움에 빠지고 있다.

혁신은 선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누가, 어떤 절차로, 어떤 권한을 가지고 개혁을 추진하는지에 대한 신뢰가 확보돼야 한다. 절차적 정당성이 없는 혁신은 또 다른 갈등을 낳을 뿐이다.

정부의 역할도 분명해야 한다. 법과 제도에 따른 관리·감독은 필요하다. 협회의 불투명한 행정과 부적절한 운영이 있다면 엄정하게 살펴야 한다. 다만 경기 성적이나 축구 행정의 모든 문제를 정치적 판단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축구협회는 자율성과 책임을 기반으로 움직여야 하는 체육단체다. 정부는 직접 운영하려 하기보다 공정한 규칙을 세우고, 축구계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관리·감독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자율 없는 책임도, 책임 없는 자율도 건강한 발전을 만들 수 없다.

이제 대한축구협회에는 말 그대로 환골탈태가 필요하다. 조속히 비상 체제를 정비하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새로운 리더십을 세워야 한다. 동시에 대대적인 인적 쇄신과 조직 개편이 뒤따라야 한다.

투명한 인재 등용, 행정 조직의 전문화, 기술 철학의 확립, 지도자와 심판 육성, 유소년 시스템의 재설계까지 모든 분야를 원점에서 점검해야 한다. 기존의 5대 목표와 10대 정책과제, 30대 실천과제도 선언에 머물지 않도록 현실에 맞게 다시 다듬고 중·장기 계획으로 실행해야 한다.

나무를 베려면 먼저 도끼날을 갈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 한국 축구에 필요한 것은 조급한 성과가 아니라 조직의 기초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좋은 사람을 공정하게 선택하고, 그 사람이 시스템 안에서 책임 있게 일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람이 시스템 위에 군림하는 협회가 아니라 시스템이 사람을 성장시키는 협회로 바뀌어야 한다.그것이 국민의 신뢰를 되찾고 한국 축구의 미래를 다시 여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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