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도 모른 채 탄광 노역…日 강제동원 유족 항소심 승소
  • 조효근 기자
  • 입력: 2026.07.23 16:18 / 수정: 2026.07.23 16:18
광주고법, 미쓰비시 측 항소 기각
유족 6명에게 최대 1억 원 배상
일제강제노역 피해자 유족이 23일 전남광주시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취재진들을 향해 옛 미쓰비시광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재판과 관련한 소감을 이야기 하고 있다. /뉴시스
일제강제노역 피해자 유족이 23일 전남광주시 동구 광주지방법원에서 취재진들을 향해 옛 미쓰비시광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재판과 관련한 소감을 이야기 하고 있다. /뉴시스

[더팩트ㅣ전남광주=조효근 기자] 일제강점기 일본 탄광으로 끌려가 강제노역한 피해자들의 유족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도 승소했다.

광주고법 민사2부는 23일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6명이 미쓰비시 마테리아루 주식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단한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유족 3명에게 각각 1억 원을 지급하고 나머지 3명에게는 상속 비율에 따라 1176만~1666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미쓰비시 마테리아루는 일제강점기 조선인을 강제로 동원한 옛 미쓰비시광업의 후신이다. 사도광산을 비롯해 일본 각지에서 탄광과 광산을 운영했다.

이번 소송에는 당초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9명이 참여했다. 이 가운데 자료 부족이나 소멸시효 등을 이유로 1심에서 패소한 3명은 항소하지 않았다.

피해자 고(故) 이상업 씨는 15세였던 1943년 전남 영암군에서 영장을 받고 일본 후쿠오카현 가미야마다 탄광으로 끌려갔다.

이 씨는 지하 1000m에서 석탄을 캐고 탄차를 미는 작업에 약 2년간 동원됐다. 강제노역 과정에서 심폐증을 앓았고, 해방 이후 귀국한 뒤에도 후유증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88세에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남겼으며 2017년 90세로 숨졌다.

또 다른 피해자 고 윤재찬 씨는 25세 때 곡성에서 면장의 권유를 받고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미쓰비시광업 탄광에 동원됐다.

윤 씨는 탄광에서 구타와 가혹행위를 겪었고 조국이 해방된 사실도 모른 채 1945년 12월까지 노역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의 조직적인 동원 아래 자유를 제한받고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일부 유족의 배상액은 피해자와의 상속 관계와 지분 등을 고려해 1심과 같이 산정됐다.

유족 측은 판결문을 검토한 뒤 배상액이 감액된 부분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할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상업 씨의 아들 이선희 씨는 재판을 마친 뒤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피해자와 유족이 끝까지 힘을 모아 아픔을 해결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윤재찬 씨의 아들 윤출호 씨도 "혹독한 강제노역을 견딘 아버지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린 것 같다"고 밝혔다.

소송을 지원한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이번 판결이 강제동원 피해를 역사적 사실로 재확인하고 일본 전범기업의 책임을 인정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시민모임에 따르면 미쓰비시는 일제강점기 일본과 한반도의 탄광·군수공장 등에 조선인 약 10만 명을 동원한 것으로 추산된다.


bbb250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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