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l 유병철 전문기자] # 7월 20일 유럽챔피언(스페인)이 메시의 남미챔피언(아르헨티나)을 꺾으면서 2026 북중미 월드컵은 끝났습니다. 하지만 조별리그 탈락으로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월드컵발 한국축구의 개혁’은 한창입니다. 정부 주도로 박지성(공동위원장)까지 등판한 K-축구혁신위원회가 가동되고 있으며, 유승민 회장의 대한체육회는 아예 체육단체 회장선거에서 직선제에 가까운 대대적인 선거인단 확대를 가시화했습니다. 여기서 질문입니다. ‘과연 회장 하나 바꾸면 한국축구가 살아날까요?’ 혹은 ‘보다 많은 사람들의 표를 얻어 당선된 체육단체의 수장이 또 다른 권력이 돼 같은 문제를 반복할 위험은 없을까요?’
# 민주주의는 서양산(産)이고, 데모크라시(Democracy)는 어원 그대로 ‘민중(다수)의 지배’입니다. 데모크라시를 ‘민주주의’로 번역한 것은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 후쿠자와 유키치입니다. 후쿠자와는 처음 데모크라시를 ‘하극상’으로 표현했다가 나중에 민주주의를 낙점했습니다. 그런데는 데모크라시는 단어 자체에 ‘-주의(-ism)'가 없습니다. 군주제(혹은 독재)의 반대편에 있는 민주제가 더 적당합니다. 번역과정에서 정치제도가 정치이념으로 변질됐고, 지금도 우리는 이를 혼용합니다. 실제로 정치제도로 민주제를 택했지만, 민주주의가 구현되지 않는 현실이 데모크라시로 포장되기도 합니다.

#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프랑스 혁명 이후 단두대 공포정치와 나폴레옹 독재를 지켜보며 권력집중을 두려워했습니다. 특히 존 애덤스는 민주주의가 ‘다수의 폭정(Rule of mob)’으로 소멸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실제로 인류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로 꼽히는 히틀러도 선거로 집권했죠). 이에 삼권분립, 상하원제 등 미국 민주주의 기초 중 하나는 철저한 권력분산에 기반을 두고 설계됐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던 민주주의가 존속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심리학을 봐도 그렇습니다. 권력을 많이 가질수록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감정에 공감하는 뇌 영역이 비활성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권력의 속성 자체가 그만큼 위험한 겁니다. 후불제 민주주의(feat. 유시민)라는 우리도 최근까지 대통령의 황당한 계엄선포라는 위험한 권력을 체험했습니다.
# 해답은 어렵지만 확실합니다. 다수의 지배라는 민주제 시스템에서 권력분산이 확실하게 이뤄지고,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시스템으로 기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내 민주주의 교육의 1인자인 김누리 교수(중앙대)는 "(한국은) 정치 민주화는 비교적 잘 돼 있지만 사회 민주화(중략), 경제민주화(중략), 문화민주화(중략)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한국사회에는 여전히 권위주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는 해결책으로 경쟁교육 타파를 제시합니다.
# 다시 축구, 아니 우리 체육계 이야기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선거가 많고, 선거의 공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우리네 현실에서 축구협회장을 비롯한 스포츠의 각 종목 회장, 그리고 대한체육회장과 지역 체육회장까지 모두 직선제로 뽑는 게 정답일까요? 정답을 떠나서 과다한 비용과 공정성 확보 등 현실적 난제가 즐비합니다. 이는 체육을 넘어 동호인이 존재하는 각종 문화단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전 세계에 그렇게 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잊을 만하면 투표를 해야하는 ‘선거공화국’이 될 겁니다.

# 형식적인 ‘민주제(민주주의가 아니라)’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보다 회장이 누가 되든 민주주의 원리와 공정함이 지켜지는 단체운영이 더 중요합니다. 특히 체육계는 그 핵심속성 중 하나가 경쟁(서열)이고, 상명하복 등 권위주의적 문화가 다른 사회영역보다 더 짙습니다. 학교폭력이 일반학생보다 학생선수 사이에서 2~3배 더 많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따라서 권력을 늘 감시하고, 부당한 권력행사에는 구성원들이 그때그때 저항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권력은 항상 견제받아야 하죠. 권력자는 함부로 권력을 남용하다가는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실감해야 합니다.
# 실제로 ‘13년 정몽규 회장의 축구협회’는 홍명보 감독 선임, 승부조작 축구인 사면, 특정학교 카르텔 등 그동안 숱한 문제점을 노출했습니다. 하지만 그때그때 제대로 견제받지 못했습니다. 상급단체인 대한체육회도 방법이 없다며 정몽규 회장의 4연임을 인준했죠. 인기종목인 축구가 이럴 정도이니, 비인기종목의 부당한 권력행사는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말이 쉽지 생업을 걸어야하는 체육계 내부고발은 쉽지 않습니다. 쓴소리를 냈다가 고역을 치른 이들도 다수 있습니다. 누구든 보복 걱정 없이 자신 있게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사회 최후의 보루인 사법시스템은 물론이고, 그에 앞서 스포츠윤리센터, 상급단체, 단체별 노조, 미디어 등 내외부에서 끊임없이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겸손한 권력과 민주주의는 깨어있는 시민이 만듭니다. 권력에는 박수가 아니라, 질문이 필요합니다. 이런 당연한 이치가 우리 체육에 한층 더 절실해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