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들고 어깨 펴라!”...90도 사과한 배재고 품은 광주 [오승혁의 현장]
  • 오승혁 기자
  • 입력: 2026.07.06 22:28 / 수정: 2026.07.06 22:28
6일 배재고 선수 36명 전원 광주일고 찾아 사죄
5·18 희화화 논란 일주일 만의 사과…“처벌·정치 공방보다 교육의 계기로”
고교야구 대회 도중 상대 팀 광주제일고를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 응원 구호를 외쳐 논란을 빚은 배재고등학교 야구부가 6일 오후 광주제일고 야구부와 함께 전남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전남광주=박헌우 기자
고교야구 대회 도중 상대 팀 광주제일고를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 응원 구호를 외쳐 논란을 빚은 배재고등학교 야구부가 6일 오후 광주제일고 야구부와 함께 전남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전남광주=박헌우 기자

[더팩트|전남광주=오승혁·조효근 기자]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고 교육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는데요. 다만 정치권에서 이야기하고 뉴스에 도배될 정도의 사안인지는 모르겠네요. "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광주일고를 찾아 사과하고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한 6일, 광주에서 만난 한 30대 시민은 이같이 말했다. 학생들의 잘못에 대한 책임과 교육은 필요하지만, 논란이 지역 갈등과 정치적 공방으로 번지는 데는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이날 ‘오승혁의 현장’은 서울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의 사과 방문을 취재하기 위해 광주제일고(광주일고)를 찾았다. 배재고 야구부 일부 학생 선수들은 지난달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경기 도중 상대 더그아웃을 향해 5·18민주화운동을 희화화한 것으로 해석되는 구호를 외쳐 논란을 빚었다.

오후 3시로 예정된 사과 방문 약 2시간 전부터 광주일고 정문과 후문 주변에는 취재진과 유튜버, 시민 등 20여 명이 모였다.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어느 출입구로 들어올지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학교는 출입을 엄격히 제한했고, 경찰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정문과 후문 인근에 배치됐다.

취재진과 경찰의 등장에 인근 주민들은 "오늘 누가 오냐"며 관심을 보였다. 배재고 학생들의 방문 소식을 들은 이들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혀를 차며 지나가기도 했다. 방문이 예정된 시간에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을 태운 버스가 광주일고 후문을 통해 들어갔다. 배재고 학생들은 광주일고 학생들과 체육관에서 사과의 뜻을 전하고 악수했다.

배재고 야구부 학생선수 36명 전원과 지도자, 학부모, 교직원, 서울시교육청 관계자 등 86명은 해당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 만에 광주일고 학생들 앞에서 사과문을 낭독하고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이날 자리에는 이효준 배재고 교장과 정찬성 교감, 야구부장 교사, 야구부 감독 등 배재고 관계자와 이규연 광주일고 교장, 야구부 부장 교사, 양교 야구부 지도자와 선수들이 참석했다.

고교야구 대회 도중 상대 팀 광주제일고를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 응원 구호를 외쳐 논란을 빚은 배재고등학교 야구부가 6일 오후 전남광주 북구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찾아 사과한 뒤 광주제일고 야구부와 악수하고 있다. /전남광주=박헌우 기자
고교야구 대회 도중 상대 팀 광주제일고를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 응원 구호를 외쳐 논란을 빚은 배재고등학교 야구부가 6일 오후 전남광주 북구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찾아 사과한 뒤 광주제일고 야구부와 악수하고 있다. /전남광주=박헌우 기자

배재고 선수단 주장 A군은 "(저희들이) 광주에 발을 딛는 것만으로도 불편하셨을 텐데 귀한 시간을 마련해주신 광주일고에 감사드린다"며 "부적절한 발언과 행동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광주일고 선수들과 학부모, 광주시민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면서 "모든 선수가 진심으로 깊이 반성하고 있다. 야구를 떠나 인성이나 태도가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다시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또 "같은 선수로서 정말 하면 안 되는 행동이었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항상 마음속 깊이 반성하는 마음과 자세로 살아가겠다"면서 다시 한번 90도로 인사하고 광주일고 선수 대표에게 사과문을 전달했다.

광주일고 측은 배재고 학생들의 사과를 받아들이며 교육적 회복을 강조했다. 광주일고 야구부 주장 C군은 "저희도 다른 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상대를 조롱하거나 비하하지 않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주일고 야구부 감독 D씨는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고 실수는 반성하면 된다"며 "서로 화해하는 것이 더 성숙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이규연 광주일고 교장은 배재고 학생들을 향해 "고개를 들고 어깨를 펴라. 여러분의 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다독였다. 이 교장은 "마음으로 사과하는 것도 중요하고 몸으로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더 잘 살아가는 것"이라며 "다음에 다시 만나 서로 마음껏 실력을 펼치고 멋진 웃음을 주도록 약속하자"고 말했다. 또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될 때 배재학당 학생들도 함께한 것으로 안다"며 "광주일고와 배재고 모두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닌 명문학교인 만큼 선배들이 이룬 전통이 한순간의 실수로 부정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광주제일고등학교(광주일고)를 향한 5·18민주화운동 조롱 응원으로 논란이 된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선수 및 지도자들이 6일 광주를 방문해 공개 사과했다. 왼쪽부터 야구부 주장, 감독이 작성한 사과문. /서울시교육청 제공
광주제일고등학교(광주일고)를 향한 5·18민주화운동 조롱 응원으로 논란이 된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선수 및 지도자들이 6일 광주를 방문해 공개 사과했다. 왼쪽부터 야구부 주장, 감독이 작성한 사과문. /서울시교육청 제공

이후 두 학교 학생들은 국립5·18민주묘지로 이동해 헌화와 참배를 진행했다. 묘역 참배에는 정근식 서울시교육감과 김대중 전남광주시교육감도 함께했다.묘지에서는 고요한 분위기 속에 일정이 이어졌다. 묵념과 헌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탄탄한 체격의 학생들은 굳은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중장년 남성은 "광주에서도 스타벅스나 신세계 불매 이야기가 나와도 며칠 지나면 앞에 줄을 서는데, 정치권에서 지역 감정으로 판을 키우며 자기들 이득을 보려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없잖아 있어 보기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사안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상대 학교와 지역의 역사적 상처를 조롱의 소재로 삼은 만큼, 사과에 그치지 않고 운동부 문화와 인성교육을 함께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학생들이 체육관에서 나온 뒤 후문 담장 밖에서 기다리던 일부 시민과 유튜버는 경찰의 제지 속에 각각 "인간이 돼라", "배재고 파이팅" 등 상반된 구호를 외쳤다. 경찰은 양측이 거리를 두도록 하며 현장 질서를 유지했다. 학생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국립5·18민주묘지 참배를 위해 이동했다.

이번 방문은 논란을 둘러싼 갈등을 키우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 선수들이 자신의 언행이 상대와 지역사회에 왜 상처가 됐는지 배우는 교육의 과정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잘못에 대한 책임과 재발 방지는 분명히 필요하다. 다만 현장에서 만난 일부 시민은 처벌과 비난만으로 끝내기보다, 스포츠 현장에서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와 역사 인식을 배우게 하는 교육의 계기로 이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sh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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