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수원=이승호 기자] 전국 최대 지방자치단체 경기도의 새 수장으로 선택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그의 승리는 단순한 지방선거 승리를 넘어 한국 정치사의 한 페이지를 새로 쓴 사건으로 기록됐다.
추 당선인은 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양향자 국민의힘 후보를 큰 격차로 제치고 경기도지사에 당선됐다. 매번 박빙 승부가 펼쳐졌던 역대 경기도지사 선거와 달리 이번에는 두 자릿수 격차로 압승했다.
이로써 1995년 민선 지방자치 출범 이후 31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광역단체장이 탄생했다.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1995년 민선 지방자치가 부활한 이후 여성 정치인들은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광역단체장 선거에 꾸준히 도전했지만 번번이 벽을 넘지 못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나경원·김은혜 의원 등 유력 정치인들도 광역단체장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
추 당선인은 그 벽을 처음으로 넘어선 인물이 됐다.
31년 만에 탄생한 첫 여성 광역단체장이자 전국 최대 광역자치단체 수장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은 더욱 크다.
인구 1400만 명이 넘고, 예산 규모 역시 웬만한 정부 부처를 뛰어넘는 경기도는 역대 대권주자의 정치적 시험대로 불려왔다. 손학규를 시작으로 김문수, 이재명, 김동연까지 경기도지사를 거쳐 전국 정치의 중심에 섰다.
이번 승리로 추 당선인 역시 단순히 첫 여성 경기지사라는 기록을 넘어 차기 대권주자군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6선 국회의원, 민주당 대표, 법무부 장관, 여기에 전국 최대 광역단체 운영 경험까지 더하게 되면 정치적 위상은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민선9기 경기도정은 추미애 개인에게도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추다르크'에서 당 대표로, 법무부 장관에서 첫 여성 광역단체장으로 이어진 정치 인생. 경기도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어떤 성과를 만들어낼지, 그 성과가 차기 대권주자로 가는 발판이 될 수 있을지 전국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최초'와 '돌파'의 연속
그의 정치 인생은 늘 '최초'와 '돌파'의 연속이었다.
1958년 대구의 세탁소집 둘째 딸로 태어난 그는 경북여고와 한양대 법대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가 됐다. 안정된 법복을 벗고 정치에 뛰어든 것은 1995년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비례대표 대신 서울 광진을 지역구에 도전해 이듬해 국회에 입성했다.
정치 신인에게 쉽지 않은 길이었다. 하지만 추 당선인은 늘 정면돌파를 택했다.
1997년 대선에서는 민주당의 불모지였던 대구에서 거리 유세를 이끌며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 선대위에서 국민참여운동본부를 맡아 '희망돼지 저금통' 운동을 주도하며 전국을 누볐다.
정치적 부침도 적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낙선의 아픔을 겪었지만 재기에 성공했고, 2016년 민주당 대표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을 이끌며 존재감을 키웠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법무부 장관을 맡아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정면 충돌했다. 이른바 '추-윤 갈등'은 한국 정치사의 상징적 장면으로 남았다.
이후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맡아 검찰개혁 입법을 주도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이어갔다.
이번 선거 역시 그의 정치력을 입증한 무대였다.
현직 김동연 지사와 한준호 의원이 맞붙은 민주당 경선에서 결선 없이 후보로 선출됐고, 본선에서는 경기 지역 민주당 국회의원 51명이 참여한 '추추(추진력은 추미애) 선대위'를 앞세워 31개 시·군을 누비며 선거전을 진두지휘했다.
◇화려한 수사 아닌 '추진력'
추 당선인이 내세운 무기는 화려한 수사가 아닌 '추진력'이었다.
선거 기간 내내 '입법·사법·행정을 모두 경험한 준비된 도지사'를 자처한 그는 교통·주거·일자리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당선 직후에도 "경기대전환, 당당한 경기를 만들겠다"며 수도권 통합 교통 체계 구축과 '원(One)패스' 도입을 약속했다.
이른바 '수도권 30분 출근 대전환' 공약의 하나로 수도권 교통 체계를 '원패스'로 통합해 도민들의 교통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GTX 사업도 차질 없이 추진해 이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서울과 경기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는 광역교통망 구축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이와 함께 용인·평택·화성을 잇는 K-반도체 벨트 구축에도 나선다. 반도체기술원과 반도체대학원 설립, 경기미래투자공사 신설 등을 통해 반도체 등 전략산업을 육성할 계획이다.
복지 분야에서는 '경기돌봄기준선'을 도입해 지역마다 차이가 큰 돌봄 서비스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AI 행정 분야에서는 전국 광역자치단체 최초 수준의 도지사 직속 'AI 수석'을 신설해 도정 전반의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경기도형 AI 응급의료 시스템' 구축도 내놨다. 이는 추 당선인의 대표 공약 가운데 하나로, AI가 구급차와 병원을 실시간으로 연결해 환자의 골든타임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김동연 지사의 대표 정책이었던 기후보험과 기후행동 기회소득, 기후위성 사업 등은 계승하기로 했다. 추 당선인 측은 이 정책들을 확대·발전시켜 실질적인 성과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31년 만에 여성 광역단체장의 벽을 허문 추미애. 이제 관심은 '최초'라는 기록이 아니라, 경기도를 얼마나 바꿔낼 수 있을지에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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