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최수빈 기자] 그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 배우 오정세가 오랜 시간 자신에게 되뇌어온 말이다.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으려 했던 마음은 어느새 믿고 보는 배우가 된 지금의 오정세를 만들었다.
배우 오정세가 최근 서울 강남구 프레인빌라에서 <더팩트>와 만나 JTBC 토일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극본 박해영, 연출 차영훈, 이하 '모자무싸') 종영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 중 영화 감독 박경세 역을 맡은 그는 이날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모자무싸'는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만 안 풀려 시기와 질투로 괴로워하는 인간이 평화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총 12부작으로 지난 24일 종영했다. 작품은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법한 열등감과 무가치함을 현실적으로 담아내며 많은 시청자에게 깊은 공감과 위로를 전했다.
오정세 역시 작품이 남긴 여운을 오래 간직하고 있었다. 대본을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배우로서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단다. 그는 "한 글자 한 글자 귀하게 읽으면서 연기했고 현장에서도 귀한 시간을 보냈다"며 "'모자무싸' 덕분에 2026년이 가치 있는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히 이번 작품은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이후 차영훈 감독과 두 번째 호흡을 맞춘 작품이기도 하다. 오정세는 "많은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지만 그중 감독님의 영향이 제일 컸다"고 떠올렸다.
"'동백꽃 필 무렵' 쫑파티 때 감독님이 정말 엉엉 우셨어요. 작품이 끝나면 보통 신나고 행복해하는데 감독님은 그 모습을 보며 벅찬 감정을 느끼셨나 봐요. 근데 그게 멋있어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사람으로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모습처럼 느껴졌어요. 그 모습에서 경세가 떠올랐죠. '모자무싸' 촬영 때 옆을 돌아보면 실제 경세가 있는 것 같아서 든든했어요."

오정세가 맡은 박경세는 지독한 열등감을 가진 감독이다. 영화를 5편이나 만든 잘나가는 감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누구보다 강력한 지질함과 자격지심을 가진 불안형 인물이다.
그런 박경세는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조금의 평화를 얻는다. "1등은 못 해도 3등은 하겠다"는 말과 함께 스스로를 옥죄던 마음에서 한 발 물러선다. 오정세 역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장면으로 이 순간을 꼽았다. 그는 "남들이 보기에는 성공한 감독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계속 아등바등하던 인물이 마지막에 가서야 '3등만 할게'라고 말하는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작품 안에 명대사들이 정말 많은데 그중에서 '괴로워 죽지 말고 아파 죽지 말고 살아 있는 모두가 늙어 죽었으면 좋겠다'는 대사가 있어요. 그 바람이 되게 진하게 와닿았던 것 같아요. 박경세도 이제는 등수는 모르겠지만 주변을 둘러보며 자유롭게 살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작품이 이야기한 것은 결국 '무가치함과 싸우는 이들을 위한 위로'였다. 오정세 역시 그러한 감정과 싸운 순간이 있었을까. 잠시 생각에 잠기던 오정세는 "크게 느껴본 적은 없는 것 같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오디션에 떨어졌을 때도 무가치하다고 느끼기보다는 속상함 정도의 감정까지만 갔던 것 같아요. 내가 뭘 잘못하거나 실패하거나 계획대로 안 되더라도 존재 자체가 무가치하다고 느끼지는 않았어요. 그럼에도 올라갈 수 있어, 그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계속해 줬어요."
그 마음은 배우 일을 오래 하고 싶다는 진심에서 비롯됐다. 수많은 실패 속에서도 자신을 의심하기보다는 버티는 법을 찾으려 했다. 그렇게 오정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배우라는 일을 견뎌냈다.

"오디션을 보면 물론 떨어져서 힘들고 속상하죠. 하지만 '내가 언제까지 힘들어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후로부터는 이걸 나름대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에 대해 계속 고민했죠. 배우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부터는 저를 떨어뜨린 사람을 향해 '나 되게 괜찮은데, 나 놓쳐도 괜찮겠어?' 이렇게 생각을 바꾸면서 저를 위안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 이제 오정세라는 이름 앞에는 자연스럽게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작품마다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주며 어느새 대중에게 신뢰를 주는 배우가 됐다. 현재는 MBC 금토드라마 '오십프로'로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으며 오는 6월 3일 영화 '와일드 씽' 개봉도 앞두고 있다.
그럼에도 오정세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잃지 않았다. 그는 "그저 많은 분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봐주시면 좋겠다"며 "이걸 과하게 기뻐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저는 일 안에서 쉬는 배우인 것 같아요. 한 작품을 끝내고 재충전한 뒤 다음 작품에 들어가기보다 현장에서 쉬는 스타일이에요. '모자무싸' 현장도 제게는 잘 쉬는 공간이었어요. 물론 캐릭터 때문에 고민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쉼을 찾는 배우라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모자무싸'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이유는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비교 속에서, 누군가는 실패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며 살아간다. 오정세는 그런 이들에게 조용한 위로를 건넸다.
"어딘가에서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모자무싸'를 꼭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이 작품을 만나 정말 행복했고 위안도 많이 받았거든요. 생각할 거리도 많았고 제 과거도 떠올리게 해준 고마운 작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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