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서울 중구=오승혁 기자] "아리가또 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
19일 낮 '오승혁의 '현장''은 서울 중구 을지로4가역 인근에 위치한 중부 건어물 시장을 찾았다. 한국을 찾은 일본 관광객들의 쇼핑 리스트에 새로운 품목이 등장했는데 김과 바나나우유, 로드숍 화장품에 이어 최근에는 한국 전통 참기름과 들기름이 일본 관광객들 사이에서 ‘필수 쇼핑템’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내용을 실제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곳의 역사는 한국의 아픔과 궤를 같이 한다. 1950년 6.25 전쟁을 피해 함경도에서 내려온 피난 상인들이 남대문시장 근처에 자리 잡고 있던 건어물 상권을 여기로 옮기면서 70년 넘는 건어물 특화 시장의 역사가 시작됐다.
인근에서 오래 근무한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아는 사람만 안다"고 할 정도로 식당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건어물, 참기름 등의 구매를 위해 주로 찾던 이 시장에 때 아닌 일본인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명동의 뷰티숍이나 을지로의 감성 카페가 아닌 건어물 시장으로 혼자 배낭을 메고 온 나홀로 여행객부터 커플, 가족, 친구 등 다양한 손님들이 찾는 모습은 취재진이 보기에도 낯설었다.
이들은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이미 갈 곳을 정하고 온 듯 시선을 고정하고 시장 한 쪽에 참기름 가게들이 몰려있는 골목을 향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리고 이들 중 다수는 1987년부터 이곳에서 기름을 짜온 '충북제유소'로 직진했다.
최성환 충북제유소 대표는 자연스럽게 일본어가 적힌 메뉴판을 보여주고 주문을 받은 뒤 아내가 포장한 참기름을 손님에게 전달하는 사이 야쿠르트를 서비스로 줬다. 참기름, 들기름을 내리는 사이에 응대하고 일본어로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사요나라" 등의 인사를 하는 일련의 모습이 무척 자연스러웠다.

최 씨는 "작년 무렵부터 일본 연예인이 SNS에 우리 가게를 언급한 이후로 일본인 관광객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며 얼떨떨하면서도 밝은 표정으로 귀띔했다. 일본 국민 걸그룹 AKB48 출신 사시하라 리노가 구독자 129만인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해당 기름집 참기름을 라면에 곁들여 먹는 영상을 공개하며 일본인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매장 앞에서 만난 일본인들에게 구매의 이유를 묻자 "향이 다르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어 "특히 이곳의 향이 너무 좋다는 소리를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왔는데, 진짜라서 만족한다"며 "샐러드, 만두, 야채 요리 등에 뿌리고 선물로도 나눠줄 것"이라고 했다.
시장에서 특히 이곳에 손님이 많은 이유를 묻자 최 씨는 "원래 우리 스타일이 덜 볶고, 저온으로 오래 찌는 방식으로 맛과 향을 낸다"고 설명했다. 탄내 없이 부드럽고 깊은 고소함이 건강과 미식을 동시에 추구하는 일본인들의 입맛을 저격한 것이다. 그 덕에 한 번 사 간 뒤 재방문, 삼방문하는 일본인 '단골'도 부지기수다.
재미있는 점은 이 '원조 성지'의 등장이 골목의 독점을 낳은 것이 아니라, 골목 전체를 살리는 '상생의 생태계'를 만든 것이다. 일본인 관광객의 발길이 1년 이상 지속되면서 골목은 마치 백화점 팝업스토어처럼 젊고 트렌디하게 진화했다.

귀여운 것을 선호하는 일본인 관광객의 취향에 맞춰 곰돌이 모양 병에 참기름과 들기름을 담아 판매하는가 하면, 이색 디저트인 '들기름 아이스크림'을 선보여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잡았다. 패키지 역시 세련된 디자인으로 무장해 선물용으로 손색없게 쌓아뒀다.
자연스럽게 관광객들의 소비 동선도 유기적으로 연결됐다. 충북제유소에서 가정에서 두고 먹을 실속 있는 350ml 큰 병 위주로 본품을 구매한 뒤, 골목 안 다른 가게로 이동해 지인들에게 선물할 아기자기하고 예쁜 소형 기름 병을 추가로 구매하는 식이다.
골목을 가득 채운 참기름 냄새 사이로 계속 이어지는 일본인 관광객들의 발걸음과 감사 인사, 웃음은 전통시장이 외국인 관광객과 어떻게 호흡해야 하는지, 상인들의 어떤 상생을 할 수 있는지 적절한 답을 보여주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