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통 이유를 모르겠다. 왜 별안간 프로축구였을까?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도해 2026년 2월 11일 출범한 민관 협력 논의 기구인 프로축구 성장위원회가 1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1차 보고회를 진행했다.
문체부의 출범 당시 보도자료는 장밋빛이다. 심판 신뢰 회복, 잔디 품질 개선, 수익 모델 발굴 등 축구계의 오랜 숙원을 정부가 앞장서 해결해 줄 것처럼 묘사한다. 하지만 정작 이 위원회가 ‘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이토록 급하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다.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지난 1월 진행된 국무회의 중 국가대표 선수촌이 아직 태릉에 있는 줄 알거나, 주무 부처 장관이 동계올림픽과 동계아시안게임을 혼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정부의 스포츠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를 적나라하게 목격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냥 축구도 아닌, 프로축구의 성장을 콕 집어 챙기겠다니, 무슨 꿍꿍이속인지 모르겠다.
◆ 시급한 '법정 기구' 외면하고 뜬금없는 '급조 위원회' 출범
프로축구성장위원회의 탄생 과정은 그 자체로 미스터리다. 프로축구연맹과 대한축구협회 등에 "저명한 인사를 추천해달라"며 급히 수소문하고, 영문도 모른 채 추천된 인사들이 모이니 어느덧 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었다는 증언은 이 조직이 얼마나 하향식으로 급하게 설계되었는지를 증명한다.
정상적인 정책 기구라면 필수적인 공청회나 미디어 브리핑조차 생략된 채 일사천리로 출범한 배경은 무엇인가? 스포츠기본법에 의거해 국민의 스포츠권을 보장하고 주요 시책을 평가·점검하는 법정 기구인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는 6개월 넘게 표류 중이라고 한다. 한국 스포츠 발전을 위해 시급히 재건돼야 할 기구는 외면한 채, 당당한 법적 근거도 없는 성장위를 출범시킨 것은 스포츠를 정권의 홍보 도구 내지는 특정 목적을 위한 '행정적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키우기에 충분하다.

◆ 인적 구성의 모순, 현장 없는 '탁상행정'의 예고편
인적 구성도 의문투성이다. 프로연맹과 축구협회는 영문도 모른 채 참석 연락을 받았고, 막상 가보니 현장의 구조적 한계와 매일 사투를 벌이는 마케터나 실무자의 자리는 없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대부분 교수나 언론인 등 20여 명의 외부 인사들이었다.
문체부가 내세운 '외부의 새로운 시각'이 진심이었다면, 왜 그 명단에 MLS(메이저리그사커·미국프로축구)와 같은 신흥 시장의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글로벌 전문가나 그들의 노하우를 접목할 인사는 단 한 명도 없었는가. 진정으로 산업화를 고민했다면 '국내용 이론가'들이 아니라, 불모지에서 거대 시장을 일궈낸 실질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이식자가 필요했다. 결국, 현장의 실무자도 글로벌 전문가도 없는 이 위원회는 '보여주기식 명분'에 치중한 탁상공론의 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체육 현안, 현장에서 답을 찾겠다"던 장관의 얘기와도 배치된다.

◆ '심판 판정'까지 챙기겠다는 장관, 행정의 월권은 아닌가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11일 전체 회의에서 "야구는 확 풀렸는데 축구는 현안이 많다"며 "굳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국민들과 축구 팬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며 이번 성장위에서 주요 안건으로 올라온 잔디와 심판 문제 등을 에둘러 거론했다. 불과 세 달 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혼동하던 이의 입에서 나온 발언치고는, 그 디테일이 생소할 만큼 당혹스럽다.
기실 지적한 문제는 맞는 얘기다. 프로축구가 성장하려면 시설 여건이 개선되어야 하고 심판 역량이나 오심 논란이 해소되어야 함은 상식이다. 하지만 전문가의 영역은 전문가에게, 행정은 행정가에게 맡기는 것 또한 상식이다. 정부의 역할은 심판 판정에 훈수를 두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소신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행정적 지원에 머물러야 한다.
도대체 정부가 전문가들의 고유 영역인 심판 판정 문제를 왜, 무슨 수로 해결하겠다는 것인지부터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주무 부처가 이토록 지엽적인 기술적 문제까지 직접 챙기겠다고 나서니, 이제 문화체육부를 ‘프로축구부’라고 불러도 될 지경이다.

◆ 체육기금 전용과 ‘콘서트장 확보’라는 발칙한 시나리오라면?
여기서 개연성 있는 의구심 하나가 고개를 든다. 올 초 지적된 ‘국민체육진흥기금의 문화·관광 분야 전출’ 이슈와 ‘국내 공연장 부족’ 사태의 연결고리다. 이날 회의 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장관이 느닷없이 돔구장 얘기를 꺼낸 것도 이러한 의구심을 부추긴다. 사실여부는 알 수 없으나 실제 그런 의도가 있다면 정부는 좀 더 솔직하고 투명한 행정을 해야 맞다. 차라리 당당하게 "공연 인프라 확충을 위해 축구장을 다목적 복합시설로 대대적으로 개보수합시다!"라고 제안하라는 말이다.
사실 노후된 축구장을 개보수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축구계와 문화계 모두가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그 속내를 감춘 채 재정적 부담을 체육진흥기금에만 전가하려 할 때 발생한다. 진정으로 두 분야가 상생하는 행정이라면 예산 투입 역시 공정하게 분담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번 성장위 발족이 ‘기금 전용’에 대한 체육계의 비판을 잠재우고, 문화계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체육 기금을 끌어다 쓰려는 얄팍한 명분 쌓기가 아니길 바란다.
만약 문체부의 속내가 콘서트장 겸용 인프라 구축 비용을 오롯이 체육진흥기금으로만 충당하겠다는 안이한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는 체육계를 행정적 편의를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겠다는 독선과 기만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매사 비딱하게 보는 기자의 ‘의심병’이 키운 기우에 불과하다면 다행이겠지만, 전혀 가능성이 없지 않은 개연성 있는 의구심 앞에 정부는 이제라도 당당히 성장위 발족의 실제 의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재원 조달의 투명한 가이드라인은 무엇인지를 명백히 밝혀주길 바란다.

◆ '야구는 풀렸다'는 무지의 소치, 훈수 대신 행정력을 증명하라
최 장관의 "야구는 확 풀렸는데, 축구는 현안이 많다"는 발언은 기묘하다 못해 악의적이기까지 하다. 야구와의 비교를 통해 문제의 원인을 현장의 각종 규제와 같은 ‘제도적 족쇄’가 아닌 축구계의 무능으로 돌리고, 이를 통해 정부 개입의 명분을 쌓으려는 전형적인 '관료적 화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발언은 야구계가 들으면 실소를 금치 못할 ‘수박 겉핥기식 행정’의 극치일 뿐이다. 야구 역시 모기업 의존도, 노후 구장 인프라, 지자체와의 불합리한 수익 배분 구조 등 축구와 결만 다를 뿐 숱한 산업적 과제를 안고 있다.
장관이 말하는 ‘풀렸다’는 의미가 단순히 ‘관중이 많다’는 현상만을 뜻한다면, 그것은 스포츠 산업을 다루는 주무 부처 수장으로서 매우 무책임하고 무지한 발언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프로축구의 수익 모델을 고민한다면, 특정 종목의 전문 영역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식 훈수를 둘 것이 아니라, 현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각종 규제와 운영의 경직성을 실질적으로 풀어낼 행정적 지원 능력부터 먼저 증명하길 바란다. 야구도, 축구도 당신들의 생각만큼 '단순하게' 굴러가고 있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