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득점없이 무승부로 끝난 지난 9일 대구전 . 리그 2위, 최근 2경기 연속 승리가 없었을 뿐이지만 빅버드에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질타하는 걸개가 걸리고 일부 팬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광주 시절엔 경험해 보지 못했을 서늘한 팬심이다. 하지만 그는 담담했다.
"팬분들 마음에 안 들면 당연히 야유할 수 있다. 이건 인정하고 개선해 나가면 된다."
평소 "비축구인을 만족시켜야 축구 산업이 발달한다"고 강조해온 그답게, 높아진 팬들의 눈높이를 리더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과연 그는 팬들의 압박을 전술적 에너지로 승화시켜 야유를 환호로 바꿀 수 있을까? 이것은 전술판 위의 지략과는 또 다른 차원의 '리더십의 증명'이다.

◆ '수족관의 메기', 거대한 바다 '빅버드'를 만나다
한국 축구라는 정체된 수족관에서 가장 강력한 포식성을 가진 메기로 등장한 수원삼성 이정효 감독. 그는 광주 사령탑 시절,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전술적 파격을 이어가며 취임 1년 만의 K리그1 승격, 이듬해 K리그1 3위, 3년차 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8강이라는 기적의 역사를 잇따라 썼다.
당시 그는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존재 자체로 '추앙'받는 대상이었고, 그의 거친 언사조차 신선한 충격으로 수용되었다. 그러나 2026년 현재, 그가 서 있는 곳은 대한민국 축구의 거대한 자부심인 '수원 삼성'의 벤치다. 이제 이정효는 단순히 '잘하는 감독'을 넘어, 거대 구단의 막중한 기대치를 완수해야 하는 진정한 명장의 시험대에 올랐다.

◆ 득점력 부족이라는 숙제: '질식 수비'를 파훼하라
수원 삼성은 올 시즌 7경기 무실점으로 클린시트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문제는 경기당 득점 1.3점(8위)이라는 아쉬운 공격 지표다. 상당수의 상대 팀들이 수원만 만나면 극단적인 '두 줄 수비'로 내려앉는 탓이 크다.
아무리 화려하고 재미있는 패스 축구를 구사해도, 상대가 수비수 8~9명을 박스 안에 세우는 질식수비를 가동하면 공간을 찾기란 쉽지 않다. 상대가 골문 앞에 ‘버스를 세워둔 듯’ 수비만 하다가 한 번의 역습으로 승부를 보려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정효 감독에게 남은 숙제는 이 버스를 견인하거나 부수어내는 '파이널 서드에서의 정교함'이다.
이정효 감독은 평소 '수준 차이는 기본적인 작은 디테일에서 결정된다'고 강조해 왔다. 골키퍼의 선방조차 무력화하는 반 박자 빠른 패스 타이밍, 상대 수비가 예측하지 못하는 공격 숫자의 배치 등 그가 집착하는 전술적 디테일이 수원이라는 대어(大魚)의 몸짓에 얼마나 세밀하게 녹아드느냐가 관건이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이정효식 시스템이 골을 '만들기 위한 최적의 경로'를 찾아낼 때 비로소 득점력 부재라는 난제 역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한국 축구의 자산, 이정효가 가야 할 길
우리는 이정효라는 독특한 지도자를 한국 축구의 중요한 자산으로 보호하고 응원할 필요가 있다. 이정효라는 효시가 쏘아 올린 불꽃은 K리그에 '학구파 지도자'들의 러시로 이어졌다. 실제 K리그는 이정효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팀의 전술은 눈에 띄게 다채로워졌고, 세계 축구의 최신 트렌드를 접목하는 속도 역시 빨라졌다. 무엇보다 경기의 속도감이 달라졌다. 과감한 전방 압박과 기민한 트랜지션(전환)이 맞물리며 예전에 비해 훨씬 긴박한 승부가 이어진다.
상대의 수비 블록을 깨기 위한 정교한 빌드업과 이를 저지하려는 압박, 그리고 찰나를 파고드는 직선적인 공격 등 흥미로운 전술들이 그라운드 위에서 창과 방패처럼 번쩍인다. 안온하던 K리그라는 연못에 나타난 이정효라는 메기가 리그 전체의 긴장감을 불어넣고 신경 써야 할 변수를 늘려놓은 것이다. 이른바 K리그의 '메기 효과'다.
과거의 이변이 투혼과 운의 결과였다면, 지금의 이변은 철저한 데이터와 '포지셔닝'의 산물이다. 이제 그가 수원에서의 압박마저 이겨내고 멋지게 성공한다면, 한국 축구 생태계가 '권위'에서 '실력과 시스템'으로 완벽히 이동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 지략가는 위기 속에서 단단해진다
그는 여전히 꿈꾼다. ‘아챔’을 넘어 세계클럽월드컵에서 펩과 안첼로티를 만나는 장면을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수원은 그에게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비주류의 성공 서사를 넘어, 주류의 시스템을 혁신하고 승리를 쟁취하는 '지배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리라 기대한다.
K리그2 구단들의 집중 경계와 빅버드의 야유는 이정효라는 지도자를 더 예리하게 다듬는 자극제가 될 것이다. 벤치에서의 뜨거운 에너지가 그라운드 위에서 '상대를 무너뜨리는 정교한 약속'으로 구현되는 날, 지금의 야유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찬가로 바뀔지 모른다. 이정효라는 메기가 거대한 바다에서 '명장'이라는 이름을 얻기 위해 치르는 이 혹독한 통과의례를 우리는 흥미롭게 지켜봐야 한다. 시련을 뚫고 보여줄 '더 깊어진 이정효의 축구'가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