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기어이 적색 경고음은 비명으로 변했다. 후반 7분, 대전 마사의 중거리 슛으로 이날 네 번째 골을 내준 뒤 한동안 허탈한 표정으로 허공을 주시했다. 26일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대전하나시티즌과의 홈경기에서 울산HD의 골키퍼 조현우(34)는 또다시 4골을 헌납하며 1-4 대패의 쓴잔을 마셨다. 페널티킥 실점 하나 없이 오로지 필드 상황에서만 네 번이나 골망이 흔들리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그의 뒷모습은, 홀로 골문을 지탱하기에는 이제 그 장갑의 무게가 너무나 버거워 보였다.
한국 대표팀의 간판 수문장 조현우의 요즘 폼이 심상치 않다. 동물적 판단력과 민첩성으로 '슈퍼 세이브'를 밥 먹듯 해내던 그가 올해 들어 영 기를 못 펴고 있다. 지난 3월, 대표팀의 유럽 원정 당시 겪었던 코트디부아르전 대패(0-4)는 그 서막이었다. 이어 리그에서도 지난 15일 서울전(1-4 패)에 이어 이날 대전전까지, 벌써 한 경기 4실점의 수난만 올 들어 세 차례다. 월드컵 본선 무대를 지켜내기엔, 지금 그의 장갑은 너무나 무겁고 위태로워 보인다.

◆ 흔들리는 판단력: "막을 수 없는 공은 없다"던 절대자의 위엄 실종
최근 조현우가 노출하고 있는 가장 뼈아픈 약점은 골문 앞에서의 '망설임'이다. 지난 4월 22일 안양전은 그의 불투명한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한 판이었다. 전반 4분 아일톤에게 내준 선제골 당시, 조현우는 각도를 좁히기 위한 과감한 전진도, 골문을 사수하기 위한 안정적인 위치 선정도 아닌 중간지대에 고립됐다. 결국 아일톤의 슈팅은 어정쩡한 위치에 서 있던 그의 옆을 허무하게 지나갔다.
이 장면은 보름 전 전북 현대와의 '현대가 더비'에서 이승우에게 허용한 쐐기골 장면과 잔인하게 오버랩된다. 당시에도 조현우는 이승우의 간결한 드리블에 반응하며 각을 좁히려 했으나, 오히려 역동작에 걸리며 중심을 잃었고 왼쪽 옆구리를 스치는 슈팅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다. 두 장면 모두 조현우 특유의 동물적 반사신경은 꿈틀댔지만, 이미 무너진 무게 중심과 슈팅 궤적에서 벗어난 위치 탓에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
위기는 판단력의 부재로 이어진다. 이승우와 아일톤, 그리고 이날 대전의 공격진에게 당한 실점들은 하나의 공통된 궤적을 그린다. 예전의 그라면 공격수가 타이밍을 잡기 전 이미 공간을 장악하며 심리적 우위를 점했겠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공격수의 페인팅에 먼저 반응하며 스스로 무너지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한때 '막을 수 없는 공은 없다'고 믿게 했던 절대자의 위엄은 사라지고, 이제는 평범한 슈팅조차 버거워 보이는 불안한 뒷모습만 남았다.
◆ 숫자가 말하는 위기: 선방률 54.5%의 충격
조현우의 이상 징후는 지표로도 명확히 확인된다. 글로벌 스포츠 데이터 제공업체 풋몹(FotMob)에 따르면, 조현우의 올 시즌 선방률은 54.5%까지 추락했다. K리그 주전급 평균인 70%대는커녕 50%대 중반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철옹성'의 붕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 뼈아픈 것은 '득점 차단(Goals Prevented)' 지표다. 현재 이 수치는 -6.4를 기록 중이다. 통계적으로 '막았어야 할 골'을 약 6.4골이나 더 내줬다는 의미다. "안 먹을 골도 막아주던" 조현우가 이제는 "남들만큼도 못 막아주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주목할 점은 실점의 '질'이다. 올 시즌 15실점 가운데 페널티킥(PK) 실점은 단 두 골뿐이다. 오늘 대전전 4실점 역시 모두 필드골이었다. PK라는 '운'의 요소를 제외하고도 이런 수치가 나온다는 것은, 현재 조현우가 마주한 위기가 세월의 무게에 따른 '감각의 둔화'와 전술적 고립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김현석 체제의 과도기와 '고립된' 수문장
물론 이 모든 책임을 조현우 개인에게만 돌리기는 어렵다. 올 시즌 울산 HD는 김현석 감독 체제로 새롭게 출발하며 전술적 과도기를 겪고 있다. 수비 뒷공간이 자주 노출되는 공격적 성향 탓에 골키퍼가 감당해야 할 1대1 찬스가 급증했다.
4월 중순 서울전이나 이날 대전전처럼 수비 조직력이 무너지며 상대에게 완벽한 1:1 찬스를 내줄 경우 골키퍼의 지표는 급격히 하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가대표 1번'이라는 기대치를 생각하면, 팀의 부진 속에서도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주던 예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팬들에게 낯선 실망감을 안겨준다.

◆ '새로운 피' 수혈, 이제는 선택 아닌 필수
문제는 월드컵이 코앞이라는 점이다. 또 다른 베테랑 골키퍼 김승규 역시 적지 않은 나이와 큰 부상 이후의 컨디션 리스크를 안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축구계 안팎에서는 과감한 세대교체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현재 K리그에도 조현우의 대안으로 꼽히는 자원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북 현대의 골문을 지키며 안정감을 되찾은 송범근, 그리고 2부 리그인 수원 삼성에서 뛰고 있지만 현대적 골키퍼의 전형을 보여주는 김준홍 등이 그 주인공이다. 특히 20대 초반의 김준홍은 선방률 85.7%의 뛰어난 반사신경과 넓은 수비 범위를 자랑하며 '포스트 김승규-조현우' 시대의 적임자로 급부상 중이다. 베테랑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단기전인 월드컵에서는 '현재 가장 잘 막는' 선수가 장갑을 껴야 한다는 원칙이 힘을 얻고 있다.

◆ 결단의 시간이 다가온다
조현우는 그간 한국 축구의 수많은 위기에서 영웅으로 등극했던 선수다. 하지만 현재의 지표는 그가 커리어 사상 가장 가혹한 시험대에 올랐음을 말해준다. 단순한 심리적 슬럼프라고 하기엔 다실점의 추세가 너무도 고착화되어 있고, 무엇보다 그를 지탱하던 '동물적 감각'의 균열이 매 경기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뼈아프다.
이제는 이것이 일시적인 난조인지, 아니면 거스를 수 없는 에이징 커브(Aging Curve)의 시작인지를 냉정하게 따져 물어야 할 때다. 분명한 것은, 월드컵이라는 거대한 무대를 앞두고 대표팀 뒷문에 발생한 이 '비정상적인 균열'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데이터가 보낸 최후통첩을 홍명보호가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할지, 축구 팬들의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조현우의 장갑 끝을 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