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는 침묵, 팬들은 절규...홍명보호 ‘증명’ 없는 확신은 독이다 [이영규의 비욘더매치]
  • 이영규 기자
  • 입력: 2026.04.16 00:00 / 수정: 2026.04.16 00:00
월드컵 2개월 앞둔 홍명보호의 표류, 분노를 넘어 체념으로
유럽원정 연패와 대책이 안보이는 한국축구의 서글픈 자화상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이 28일 코스티부아르와 평가전에서 전반에만 2골을 내주는 졸전 끝에 0-3 패배를 기록했다. 사진은 선발로 나선 오현규(왼쪽)와 배준호의 경기 장면./밀턴킨스=KFA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이 28일 코스티부아르와 평가전에서 전반에만 2골을 내주는 졸전 끝에 0-3 패배를 기록했다. 사진은 선발로 나선 오현규(왼쪽)와 배준호의 경기 장면./밀턴킨스=KFA

[더팩트 | 이영규 전문기자]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이 어느덧 두 달도 안 남았다. 하지만 한국 축구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수능을 앞둔 수험생 부모처럼 불안하기만 하다. 시험은 코앞인데 준비는 갈수록 어긋나고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속이 타다 못해 차라리 이 거대한 시험을 외면하고 싶은 심정이다. 입으로는 열심히 하겠다면서 밤새 불만 밝힌 채 책상 앞에서 꾸벅꾸벅 헛잠만 자고 나오는 자식을 지켜보는 듯한 답답함. 최근 유럽 원정 최종 모의고사에서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 든 홍명보호가 딱 그 짝이다.

실종된 전술, 공허한 벤치

가장 큰 문제는 대표팀이 지향하는 축구의 실체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감독은 전술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 특정 상대를 상대로 무엇을 준비했는지, 플랜 A가 막힐 때 가동할 플랜 B는 무엇인지 팬들은 단 한 번도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경기 중 쉴 새 없이 작전을 지시하는 상대 팀 벤치와 달리, 우리 벤치는 감독이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팔짱을 끼고 있는 장면이 자주 포착된다. '감독 무용론'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주앙 아로소 수석코치가 포르투갈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협회는 대외적인 얼굴이 될 한국인 감독과 실제 전술을 구성할 유럽인 지도자를 원했다"며 "실질적인 훈련 조직과 경기 플랜 수립은 내 역할"이라고 밝혀 홍명보 감독의 실질적 역할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켰다. 코치 측은 뒤늦게 발언이 왜곡됐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그간 노출된 감독의 전술적 부재를 설명하기엔 충분했다.

'분업'이라는 허울 뒤에 숨은 리더십의 공동화

유럽 명문 구단에서도 감독이 매니지먼트에 집중하고 코치가 세부 전술을 전담하는 시스템이 흔하다지만, 감독이 본인의 철학조차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은 단순한 '분업'을 넘어 '리더십의 공동화'를 의미한다. 데이터와 전술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한 채 누구나 하는 '고지대 적응' 같은 원론적인 이야기만 반복하는 것은 현대 축구의 흐름에서 한참 뒤처져 있다는 고백과 다름없다.

지난 유럽 원정 코트디부아르(0-4), 오스트리아(0-1)전 연패는 그 결정판이었다. 월드컵 직전에 시도하는 스리백 전환은 여전히 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고, 수비 숫자가 공격수보다 많음에도 맥없이 실점하는 처참한 경기력에 팬들은 마지막 기대마저 접었다. 외신조차 "시스템 부재 속의 끝없는 실험"이라며 냉소적인 평가를 보낼 뿐이다.

소속팀 LAFC에 복귀한 손흥민(위쪽)은 5일 올랜도와 2026 MLS 6라운드 홈경기에서 전반에만 4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대활약을 펼쳤다. 사진은 손흥민의 도움으로 해트트릭을 기록한 드니 부앙가와 하이파이브 장면./LAFC
소속팀 LAFC에 복귀한 손흥민(위쪽)은 5일 올랜도와 2026 MLS 6라운드 홈경기에서 전반에만 4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대활약을 펼쳤다. 사진은 손흥민의 도움으로 해트트릭을 기록한 드니 부앙가와 하이파이브 장면./LAFC

황금세대의 찬란한 끝자락, 그 위에 드리운 '불통의 그림자'

이 사태의 근본 원인은 축구협회의 밀실 행정에 있다. 2024년 7월 선임 과정의 불투명성이 남긴 앙금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협회는 "왜 홍명보여야 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했고, 홍 감독은 12년 전 브라질 월드컵의 실패로부터 무엇이 달라졌는지 증명하지 못했다. 당시의 '인맥 축구' 논란이 이제는 본선을 코앞에 두고도 방황하는 '전술적 표류'로 치환됐을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대표팀은 역대 최강이라 불릴 만한 '황금세대'다. 월드컵 ‘라스트댄스’를 준비하는 손흥민(LAFC)을 필두로 이강인(PSG),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황희찬(울버햄튼) 오현규(베식타시) 등 세계적 클럽의 핵심들이 포진해 있다. 실제로 대표팀의 무득점 연패와 달리, 소속팀으로 돌아간 태극전사 공격수들은 연일 골 폭풍을 일으키며 주가를 높이고 있다.

정몽규 축구협회장은 16강 진출을 언급했지만, 황금세대의 무게감에 비하면 지나치게 소극적인 목표다. 국민들은 2002년 이후 24년 만의 ‘4강 도전’을 꿈꿀 만큼 눈높이가 높아졌다. 외신의 조별리그 통과 예측 보도에 마냥 좋아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웃 나라 일본이 8년간 다져온 시스템을 바탕으로 '우승'을 정조준하는 것과 대비하면 더욱 초라하게 느껴진다.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2일 귀국길에서 유럽 원정 평가전 2연패에 대해 사과하며 향후 계획을 밝혔다. /인천국제공항=오승혁 기자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난 2일 귀국길에서 유럽 원정 평가전 2연패에 대해 사과하며 향후 계획을 밝혔다. /인천국제공항=오승혁 기자

"월드컵은 증명하는 무대이지, 실험하는 무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홍 감독은 유럽원정 귀국길에서 "소득이 있었고 전술이 어느 정도 완성됐다"며 근거 없는 낙관론을 펼쳤다. 무엇이, 어떻게 좋아졌는지 성적표(데이터)로 증명되지 않는 확신에 팬들의 마음은 이제 분노를 넘어 체념에 이르렀다. 월드컵이 국민의 축제가 아닌, 협회와 감독만의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위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라 치밀한 '오답 노트'와 명확한 약점 보완 계획이다. 점유와 주도를 외치지만 알맹이는 없고, 위기 때마다 선수 개인의 기량에 기대는 '해줘 축구'가 반복되는 현실이 서글프다.

12년 전, 이영표 해설위원이 남긴 "월드컵은 증명하는 무대이지, 실험하는 무대가 아니다"라는 일갈이 2026년 다시 되돌이표가 되어 돌아올까 두렵다. "차라리 안 보고 싶다"는 팬들의 절규는 사실 누구보다 대표팀이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지막 호소다. 기적은 투혼이 아니라 치밀한 철학과 준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협회와 감독은 귀국 직후의 싸늘한 민심을 통해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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