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 정병근 기자] 신보 제목으로 우리나라 대표 민요 '아리랑'을 가져왔는데 타이틀곡 'SWIM(스윔)' 가사는 전체가 다 영어다. 다소 아이러니한 이 조합은 정체성과 뿌리를 되새기는 정신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언어의 형식을 택했다는 점에서 조화롭고, 또 팝의 변방에서 항해를 시작해 팝의 중심에 다다른 성장 서사와도 맞닿는다.
방탄소년단(BTS)이 20일 오후 1시 정규 5집 'ARIRANG(아리랑)'을 발매했다. 약 3년 9개월 만의 완전체 컴백작인 이 앨범은 팀의 정체성과 삶을 살아가며 마주한 다양하고 보편적인 감정을 다룬다.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 '아리랑'을 제목으로 삼았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더 넓게 확장하며 나아간다. 방탄소년단이 지난 13년 동안 그래온 것처럼.
앨범은 방탄소년단의 뿌리에서부터 시작한다. 1번 트랙 'Body to Body(보디 투 보디)'는 앨범명에 걸맞게 한국의 대표 민요인 '아리랑'의 선율 일부를 녹였다. 2000년대 팝 랩(Pop rap)이 떠오르는 거친 에너지에 전통 타악과 합창을 더해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일곱 멤버의 태생적 뿌리와 힙합에 닿은 음악적 뿌리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방탄소년단은 굳건한 그 두 뿌리에서 가지를 뻗어나간다. 본인들의 시작점이자 추구하는 음악 장르 힙합을 전면에 배치하고 타이틀곡을 기점으로 다양한 색깔의 꽃을 피워낸다. 그 과정에서 틈틈이 한국의 정서로 방탄소년단만이 낼 수 있는 빛깔을 더한다.
방탄소년단은 'Body to Body'를 시작으로 거친 랩을 쏟아내는 얼터너티브 힙합 'Hooligan(훌리건)', 묵직한 808 비트와 미니멀한 전개의 힙합 알앤비 'Aliens(에일리언스)', 시종일관 200도 열기로 달리는 하이퍼 저지 'FYA(파이아)', 변칙적인 힙합 트랩 리듬에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드러내는 '2.0'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힙합 사운드를 들려준다.
방탄소년단의 글로벌 메가 히트곡인 'Dynamite(다이너마이트)'와 'Butter(버터)'는 팝 트랙이지만, 이들은 데뷔 때부터 뚜렷한 가치관을 담아낸 힙합으로 전 세계 팬들의 마음에 자리를 잡았다. 정규 5집 'ARIRANG'은 바로 그 정체성을 다시 일깨워주는 방식으로 전반부를 할애한다.

앨범은 6번 트랙 'No. 29'에 이르러 강렬하고 신선한 충격을 준다. 대한민국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로 분위기를 전환하는 것. 심지어 종소리가 한 번 울려퍼진 뒤 그 잔잔한 울림까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러닝타임(1분 38초)이 지속된다. 공기를 가르는 듯한 그 울림은 아주 희미하지만 파도를 가로지르는 소리로 연결된다.
이 트랙은 종소리 후 1분 넘게 사실상 거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단절된 듯한 느낌을 주지만, 그래서 더 웅장하다. 한국 전통 미학인 '여백의 미'까지 품고있는 듯하다. '여백의 미'는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상상과 해석의 여지를 주고 균형을 잡는다. 방탄소년단이 거친 항해를 시작하기 전의 비장한 각오를 품은 트랙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곧바로 타이틀곡 'SWIM'이 이어지는 배치는 그 느낌을 선명하게 만든다. 이 곡은 삶의 파도 속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헤엄쳐 나아가는 자세를 노래한다. 방탄소년단이 지나온 그간의 여정과 앞으로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본인들만의 감상에 그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을 전한다.
음악 장르의 전환도 이뤄진다. 전반부를 음악 정체성인 힙합으로 채운 방탄소년단은 올드스쿨 드럼의 생동감 위에 따뜻한 일렉트릭 기타와 로파이 신스 사운드를 더한 얼터너티브 팝을 들려준다. 밀려오는 흐름을 거스르기보다 자신만의 속도로 담담히 넘어가겠다는 의지를 가사만이 아니라 유연한 사운드로도 전달한다.

이어지는 트랙들은 확장성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사이키델릭 록 기반의 얼터너티브 'Merry Go Round(메리 고 라운드)', 그런지한 사이키델릭 트립 합 'Like Animals(라이크 애니멀스)', 애시드 하우스와 웨스트 코스트 팝 록의 감각이 교차하는 'One More Night(원 모어 나이트)', 어쿠스틱 기반의 소울 팝 록 'Into the Sun(인투 더 선)' 등.
방탄소년단은 다채로운 사운드 안에 회전목마처럼 반복되는 인생의 굴레를 버텨내는 이야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이면의 공허함과 두려움, 억눌린 채 길들여지기보다 뜨겁게 살아가자는 메시지,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하고 싶다는 솔직한 감정과 단단한 확신, 네가 부른다면 어디든 달려가겠다는 다짐과 약속을 담아냈다.
그렇게 이 앨범은 노골적인 듯 하면서도 과하지 않게 방탄소년단의 뿌리와 정체성을 드러내고 한국적인 요소까지 담아 전 세계에 전달한다.
"한국적인 요소를 정해진 틀처럼 그대로 가져오기보다는 지금 우리의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풀고 싶었다. 과하지 않은 변주와 우리만의 해석이 더해질 때 정서가 더 넓게 전달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적인 정서를 살리면서도 방탄소년단의 색이 선명하게 남도록 균형을 맞추려 했다"는 멤버들의 말에서 그 방향성은 더 뚜렷해진다.
방탄소년단은 앨범 밖에서 한국의 정서를 더 다채롭게 전파한다. 20일부터 한국의 미감을 현대적 감각으로 푼 팝업을 진행하고 한국을 대표할 만한 서울 곳곳에서 이벤트를 마련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과 협업한 상품들도 있다. 실제 유물에 새겨진 전통 문양과 장식을 재해석해 전 세계 팬들에게 자연스럽게 한국의 뿌리를 알린다.
방탄소년단은 21일 광화문 광장에서 컴백 공연을 한 뒤 오는 4월부터 역대급 규모의 월드투어에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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