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베네치아, 인천-19] '인터러뱅' 인천…'언더독'에서 '탑건' 도시로 도약 기대
  • 김형수 기자
  • 입력: 2026.03.05 08:00 / 수정: 2026.03.05 08:00
'마계 인천' 역발상…재미있는 도시 실현
매립·내륙 도시 이미지 털고 바다 품어야
1969년 8월 5일 지정돼 인천 서·남부지역에 조성된 주안국가산업단지. /인천시립박물관
1969년 8월 5일 지정돼 인천 서·남부지역에 조성된 주안국가산업단지. /인천시립박물관

'동북아 베네치아, 인천'은 인천이 지닌 역사적, 문화적 자원을 바탕으로 미래형 해양도시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시리즈로서 <더팩트>와 인천학회(회장 김경배)가 공동으로 기획 연재한다. 2017년 9월 출범한 인천학회는 인하대, 인천대, 청운대, 인천연구원, 인천도시공사,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국내 최초의 지역학회로서 인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연구하는 지식공동체이다. 300만 대도시 인천의 도시 발전을 위한 새로운 정책과 담론을 형성하고 다양한 해법을 찾아가는 학술 활동의 성과는 다른 도시에도 적용될 수 있는 국가 발전의 에너지가 될 것이다.

'동북아 베네치아' 제목은 글로벌 해양도시로서 관광, 물류의 세계 거점 도시를 향한 인천의 발전 가능성과 미래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연재는 인천의 잠재력을 재조명하고, 시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공감의 장을 마련한다. 또 동북아 해양 네트워크의 중심 도시로 도약하는 데 필요한 이슈를 제공하고, 단순한 도시의 확장을 넘어 살고 싶은 지속가능한 도시의 미래는 어떻게 조성돼야 하는지 그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300만 명 인구와 대한민국 제2의 경제 규모를 갖춘 메트로폴리스로서 바다를 향해 뻗어 나가는 인천시의 위상은 실로 '인터러뱅'답다. 물음표와 느낌표가 결합된 개념의 문장부호(!?) 인터러뱅은 의문과 감탄, 호기심과 놀라움, 이성과 감성이 상충하며 공존하는 역설적인 의미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인천은 개항장과 국제도시가 공존하고 식민과 전쟁의 상흔 위로 산업화와 매립의 역사가 겹쳐진 곳이다. 하지만 화려한 수사 이면에는 '마계 인천'이라는 그림자도 있었다. 때로 과거 수도권의 공해 산업을 묵묵히 감내하며 만들어졌던 낙후도시의 부정적 이미지 등이 소환되기도 한다.

도시의 이미지는 오랜 세월 축적된 인식의 산물이다. 세계적인 공항과 항만, 송도·청라·영종·검단 같은 화려한 도시의 외형을 갖췄음에도 도시 성장의 온기는 도시 전체로 고르게 퍼지지 못했다. 여전히 원도심은 낙후 상태에 있다. 300만 명 대도시가 되기까지 시립미술관 하나 없었다는 사실은 인천이 가진 규모에 비해 내실이 얼마나 공허했는지를 반증한다.

결국 인천의 현재 이미지는 걸어온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천의 지난 과거에 관심을 갖는 일은 인천을 향한 부정적 인식을 걷어내고 진정한 자부심을 세우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인천은 삼국시대부터 해양 교역과 소금 생산의 중심지였다. 주몽의 아들 비류가 건국할 때 미추홀(彌鄒忽)이었으며, 고구려 남하 후 매소홀현(買召忽縣), 신라가 백제를 탈취한 후에는 소성현(召城縣)이 됐다. 고려시대에는 인주 이씨 가문이 왕실의 외척으로 부상하며 경원군(慶源郡)을 거쳐, 인종이 탄생한 고을인 인주(仁州), 그리고 황실의 고향인 경원부(慶源府)로 불리며 전성기를 누렸다. 조선 건국 후 다시 인주(仁州)가 되었으나 1404년(태종13년) 지명에 천(川)이나 산(山)을 넣도록 한 개정령에 따라 비로소 지금의 이름인 인천(仁川)이 탄생했다.

해양도시 인천의 본격적인 출발은 1883년 제물포항의 개항이다. 조계지가 형성되며 현재 인천개항박물관으로 쓰이는 일본은행 등 외세 자본이 들어왔고, 1899년 경인철도의 부설로 구미 열강의 제국주의가 침투하며 식민지의 발판이 됐다. 1907년 주안만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천일염전이 축조됐다. 1910년대 금곡동에 조선인촌주식회사가 성냥을 생산했다. 만석동에 사이토정미소가 들어서며 일제에 의한 수탈 기지화가 시작됐다.

1937년 중일전쟁 전후 인천은 일제의 병참기지로 변모했다. 만석동에는 동양 최대 규모의 동양방적이 세워졌고, 공장 사택에 들어가지 못한 영세 노동자들이 지은 토막집들은 오늘날 '괭이부리마을'의 시초였다. 학익동과 용현동 일대에는 조선중앙전기, 히타치제작소와 경성화학공업 등이 들어서며 대규모 공업단지와 주거지가 형성됐다. 특히 부평에 미쓰비시중공업의 군수 공장과 대규모 조병창이 들어서며 부녀자와 학생들까지 강제노동에 동원되는 아픔을 겪었다. 일제의 대륙 진출을 위한 병참기지화 과정 속에서 인천은 '개항'의 낭만 대신 '공업'이라는 이미지를 덧입게 됐다.

1960년대 서울의 폭발적인 인구와 산업 팽창을 억제하기 위해 인천은 서울의 위성도시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기 시작했다. 수출에 용이한 인천항을 품었다는 이유로 주안만의 폐염전들은 매립되어 수출공단으로 변모했고, 도심 곳곳의 공장들은 집단화됐다. 1968년 경인고속도로의 개통과 함께 1970년대 산업구조가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인천의 연안은 거대한 중공업 벨트로 변모했다. 제조업의 급성장 이면에는 도시의 희생이 뒤따랐다. 1980년대에는 남동염전까지 매립해 남동공단이 조성됐고, 수도권의 공해 유발 공장들이 속속 인천으로 이전해 왔다. 그 결과 1980년대 후반 인천의 대기오염 수치는 전국 1위라는 불명예를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오랜 기간 인천은 서울과 수도권의 기피시설들을 감내하며 환경오염과 공해, 낙후라는 불이익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국가 성장의 엔진 역할을 하며 치렀던 희생이 슬프게도 인천의 부정적 이미지의 근거였다.

실제적인 로컬 비즈니스 학교로 운영되는 인천 마계대학은 개항로 프로젝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 전체가 축제가 되는 로컬 이벤트를 펼치고 있다. /마계대학 홈페이지
실제적인 로컬 비즈니스 학교로 운영되는 인천 마계대학은 개항로 프로젝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 전체가 축제가 되는 로컬 이벤트를 펼치고 있다. /마계대학 홈페이지

1899년 최초의 근대적 매립이 시작된 이후 인천은 쉼 없이 바다를 메워 왔다. 1970년대 후반에는 중동 건설 경기의 위축으로 남은 인력과 장비를 활용하기 위해 '동아매립지'라 불린 대규모 연안 매립이 추진됐다. 당초 농지 확보를 목적으로 시작된 이 매립지는 남측이 청라국제도시로, 북측은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로 변모하며 오늘날까지도 매립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1990년대에는 인천국제공항 건설을 위해 용유도와 삼목도, 신불도 사이의 바다가 메워지며 영종도라는 하나의 거대한 섬이 탄생했고, 다리를 통해 육지와 연결됐다. 송도국제도시와 신항만 또한 그렇게 매립된 바다 위에 세워졌다.

우리는 그 대가로 국가의 미래를 견인할 글로벌 도시를 얻었지만 '먼어금'이라는 지명으로 불리며 끝없이 펼쳐져 있던 송도 황금 갯벌을 잃었다. 백합과 상합, 꽃게와 낙지가 넘쳐나던 남동과 김포의 갯벌 역시 사라졌다. 38개의 섬이 자취를 감추거나 형태를 달리했다. 어촌의 삶 또한 흩어졌다. 바다와 섬이 어우러졌던 해안은 직선의 콘크리트 선으로 대체됐다.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소중한 점이지대를 잃은 철새들은 갈 곳을 잃었다. 손을 뻗어 바다를 만질 수 없게 됐다. 인천은 눈높이를 가로막은 해안의 콘크리트 벽으로 해양보다는 내륙도시의 이미지에 익숙해졌다.

인천은 서울과 인접한 해안도시라는 지리적 운명으로 개항과 강제적 근대화, 그리고 급격한 산업화를 겪었다. 국가 산업 발전을 견인하는 엔진 역할을 수행했지만 주거 환경과 편의시설의 질은 성장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최근 인천은 지역 불균형 해소와 동반성장을 위한 '제물포 르네상스' 원도심 재생사업을 추진 중이다. 오랜 낙후 지역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사업인 만큼 기대가 크다. 이번 재생을 통해 인천 곳곳에 스며있는 소중한 근현대 삶의 궤적이 온전히 담기길 바란다. 이제는 단순한 성장을 넘어 '가치'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때다. 비록 과정이 더 창의적이어야 하고, 시간이 더 걸리며, 비용과 노력이 더 들더라도 이를 감수하겠다는 행정적 결단이 필요하다.

인천의 부정적 별칭이었던 '마계 인천'을 로컬 브랜딩으로 승화시킨 점도 반갑다. 비하의 언어를 '개항로 프로젝트'나 '마계 인천 페스티벌' 같은 힙한 콘텐츠와 마케팅 요소로 재해석하는 역발상은 놀랍다. 인천이 자신의 약점까지 포용할 만큼 단단한 내공을 갖춘 건강한 도시로 거듭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재미있는 도시 인천'으로 이미지를 전환하는 데 이보다 더 영리한 전략은 없을 것이다.

나아가 인천이 대한민국 선도 글로벌 도시·해양 도시로 우뚝 선 만큼 바다를 소중히 품어야 한다. 과거 경제적 빈곤을 이겨 내기 위해 바다를 희생하며 성장해 왔다면 이제는 강화도와 영종도에 남은 갯벌을 보존하며 생태계와 공존해야 한다. 해양 쓰레기는 물론 한강에서 유입되는 오염원을 차단할 치밀한 방안을 강구하고, 쉽게 바다를 매립지로 활용하는 관성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인천은 인터러뱅(!?)의 도시다. 인천의 과거를 알면 알수록 놀랍다. 인천의 성장 역랑이 소중하고, 인천 비전의 달성 가능성도 높다. 인터러뱅 인천의 과거가 언더독(underdog, 상대적 약자)이었다면 현재는 다크호스(dark horse, 강력한 우승 후보)로까지 부상했다. 가까운 미래에 탑건(top-gun, 최고 총잡이) 도시로 도약하게 될 것을 확신한다.

글=조은수 (주)울산복합도시개발 대표이사

기획=김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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