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차는 나에게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는 거다.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삶의 일부다." -엔초 페라리(1898~1988)
매년 수백 종의 신차가 쏟아지는 시대. 자동차에 대한 정보는 넘쳐 나는데, 정작 제대로 된 ‘팩트’는 귀하다. ‘팩트 DRIVE’는 <더팩트> 오승혁 기자가 직접 타보고, 확인하고, 묻고 답하는 자동차 콘텐츠다. 흔한 시승기의 답습이 아니라 ‘오해와 진실’을 짚는 질문형 포맷으로, 차에 관심 있는 대중의 궁금증을 대신 풀어준다. 단순한 스펙 나열은 하지 않는다. 이제 ‘팩트DRIVE’에 시동을 건다. <편집자 주>
[더팩트|고양=오승혁 기자] 이별이 더 아쉬운 차, 그만큼 함께한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오승혁의 팩트 DRIVE'는 지난달 22일 오전부터 25일 새벽까지 3박4일간 300km 이상을 달리며 지프의 소형 SUV 전기차 '어벤저'와 함께 했다. 금요일 아침 출근 차량들로 인해 더 꽉 막힌 서울 강남 일대부터 <더팩트>가 위치한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대문구 명지대 인근, 경기도 고양시, 파주 등지를 누비며 시내 일반도로와 고속도로 등의 여러 환경을 제대로 경험했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3.4초로 느껴질 정도로 어벤저와 함께 한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 만큼 이 차량의 매력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간 시승기를 진행하며 정 들고 이별하기를 반복했던 차량 중에 역대급으로 이별에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특히 시승기를 진행한 차량 중에 가장 많이 "이쁘다" "귀엽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전에 시승했던 지프 랭글러가 특유의 웅장함과 디자인이 지닌 매력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면, 이 차는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대기하는 상황과 주차장 등의 공간에서 운전자가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많은 눈길을 모았다.
BMW가 영국 브리티시 모터 코퍼레이션이 생산하던 '로버 미니'를 인수한 뒤 미니 라인업을 확장해 지금까지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지프 어벤저가 지닌 매력적인 소형 SUV라는 강점은 어마어마한 무기다. 지프 어벤저는 론지튜드, 알티튜드 두 트림으로 출시된다. 시승한 차량은 5640만원인 알티튜드다. 국내 시장에서는 실상 알티튜드만 판매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알티튜드는 론지튜드에 비해 1인치 큰 18인치 타이어를 탑재했고 개방감이 강한 선루프도 적용했다. 전비는 5km/kWh다. 5290만원인 론지튜드에 비해 350만원 비싸다. 보조금을 적용하면 4000만원대에 구매 가능하다.
실제로 지프 어벤저는 2022년 지프 최초의 전기차로 개발된 뒤 2023년 유럽 올해의 차에 브랜드 역사상 최초로 뽑혀 지프에게 최초 타이틀을 두 번이나 안겼다. 2022년 말 출시 후 2024년 중순에 10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려 지프의 효자로 자리매김한 어벤저가 BMW의 미니처럼 수십년의 세월을 넘는 효자가 될 수 있을까. 그럼 지금부터 직접 운전대를 잡고, 다양한 궁금증을 풀어본다.
Q. 소형 SUV와 전기차 영역 모두 국내 시장에서 경쟁 모델이 많은데, 지프 어벤저가 가진 매력은?
A. 시승차를 수령하기 위해 서울 강남구로 이동할 때만 해도 질문과 같은 생각을 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시장에서도 꾸준히 영향력을 키우며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대자동차, 기아차 두 기업은 소형 SUV 시장에서 여러 차종을 통해 지속적인 판매량 상승세를 기록하는 중이다. 또 이 두 회사의 전기차 관련 기술력이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만큼 전기차 구매를 원하는 이들을 만족시키는 선택지도 여러 개가 준비되어 있다.
이브이, 아이오닉 외에도 전기차의 상징과 같은 미국 브랜드 '테슬라'도 있다. 그런데 지프의 소형 SUV 전기차가 어떤 매력이 있기에 출시 2년 만에 10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어벤저를 마주했다.
어벤저를 마주한 순간 판매량이 바로 이해됐다. 하늘색에 가까운 에메랄드 색상이 이 정도로 잘 어울리는 차량은 처음이었다. 같은 주차장에 주차된 강렬한 노란색의 어벤저도 바로 눈길을 사로 잡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이쁜 차' '귀여운 차'의 대명사인 BMW의 미니가 크기와 형태 별로 쿠페, 클럽맨, 컨트리맨 등의 트림으로 나뉘어 오랜 세월 사랑 받고 있는 점이 바로 떠올랐다. 지프의 어벤저 역시 미니처럼 지프의 오랜 효자로 자리 잡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디자인의 매력이 상당했다.
미니가 BMW에서 팔리기 전 영국의 브리티시 모터 코퍼레이션이 여러 산하 브랜드를 통해 1959년부터 2000년까지 41년간 설계의 변화 없이 생산했던 로버 미니는 여전한 수요를 자랑하며 국내에도 해당 차종의 수리와 복원으로 유명한 숍이 있을 정도다.
내연기관이라 부품 수급과 수리의 어려움이 수반되는 로버 미니와 달리 지프 어벤저는 전기차라 배터리 교환만 하면 수명 유지도 어렵지 않다. 이런 장점을 통해 어벤저가 명맥을 이어가면서 랭글러가 그랬던 것처럼 지프의 장수 인기 모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프 어벤저는 론지튜드(Longitude), 알티튜드(Altitude) 두 트림으로 제작됐다. 각각 경도, 고도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영어 단어다. 오프로드를 지향하는 지프 오너들의 취향을 담은 이름이다.

Q. 지프 어벤저가 담고 있는 이야기는?
A. 지프는 스토리텔링과 '이스터 에그(Easter Eggs)를 차 곳곳에 숨기기로 유명한 브랜드다. 1970년대 한 개발자의 부활절 장난이 지금의 이스터에그를 만들었다. 부활절 토끼가 장난스럽게 부활절 달걀을 곳곳에 숨기는 것처럼, 그는 그가 만든 소프트웨어에 특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문구가 등장하게 하는 장난을 쳤다.
이 장난이 영화 제작자, 디자이너 등 여러 업계 종사자들에게 널리 퍼져 지프를 디자인하는 이들도 차량 곳곳에 이스터 에그를 심기 시작했다. 해당 차량을 디자인한 디자이너도 어떤 이스터 에그가 어디에 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어벤저의 앞 유리에는 천체망원경으로 하늘을 보는 소년이 보인다. 그 소년이 망원경이 보고 있는 곳을 따라가면 별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차량 뒷유리에는 험준한 산맥이 보인다.
전기차이기에 실질적인 기능은 없지만, 지프를 상징하는 세븐 슬롯 그릴도 어벤저의 전면부를 장식하고 있다. 세븐 슬롯 그릴을 7 대륙을 의미하며, 이 모든 대륙을 탐험하고 싶은 지프 오너들의 꿈을 담고 있다.
물리 버튼 형태로 눌러서 조작하는 기어 변속기와 피아노를 치듯 건반을 누르는 공조기도 지프 특유의 아날로그 감성을 잘 담고 있다.

Q. 전기차는 승차감 지적을 많이 받는데, 어땠어?
A.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다. 회생제동으로 인한 꿀렁거리듯 차가 흔들리는 점과 이로 인한 멀미는 전기차의 단점으로 계속 지적되는 부분이다. 운전자는 이런 주행감에 상대적으로 빨리 적응되는 반면 동승자석이나 2열 또는 3열에 탄 이들이 적응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린다. 이에 택시 호출 앱에서 전기차가 잡히면 멀미를 걱정해 호출을 취소한다고 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다만 어벤저는 지프답게 전기차임에도 내연기관 차량을 모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경기도 고양시, 파주 등에 있는 자갈길과 길 옆으로 밭이 이어지는 비포장도로 산길에서도 힘 있게 달렸다. 고속도로 주행에서도 힘이 부족하거나 밀린다는 느낌이 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주행 중에 전기차 특유의 꿀렁거림을 느낀 경험도 없다. 다만 취재진보다 회생제동 모드에 민감함을 느끼는 이들은 어벤저에서 스포츠 모드와 함께 기어의 드라이브 버튼을 한 번 더 눌러서 조금 더 내연기관 차량 같은 주행을 추구할 수 있다.
최대 출력 115킬로와트(kW) 및 최대 토크 270Nm의 힘 덕분이다. 에코·일반·스포츠·샌드·머드·스노우 등 6가지 주행 모드를 제공하며 내리막 주행 제어장치(HDC), 200㎜ 지상고 등으로 여러 주행환경에서 시원하게 달릴 수 있게 했다.
다만 요즘 같은 날씨에 통풍 시트가 없는 점은 아쉽다. 10.2인치 디스플레이를 통해 스마트폰을 수월하게 연결하고 실내 에어컨을 맥스로 틀어 열기를 잡았지만, 이전 시승차 폭스바겐 아틀라스에서 경험했던 통풍 시트가 그리워졌다.
Q. 전비는? 충전시간은?
A. 어벤저는 중국 CATL의 54kWh NCM 배터리를 탑재했다. 국내 인증 주행거리는 292km지만, 완충한 상태로 시동을 걸었을 때 계기판에는 400km 이상이 표시됐다.
물론 날씨와 주행 환경에 따른 차이는 있을 수 있다. 다만 주행 상황에 따라서 1kWh에 7km 이상의 전비까지 나왔던 점을 고려하면 한 번의 완충으로 최대 주행거리인 430km를 갈 수도 있다. 급속 충전 시 30%에서 80%까지 약 24분이 소요된다.
배터리로 인해 차가 무거워지는 것이 일반적인 전기차 시장에서 지프 어벤져는 경량화에 성공했다. 1550kg의 무게가 공인 전비 대비 40% 이상의 주행거리가 가능한 비결이다.
시승을 마치고 전기차를 타면서 내연기관의 매력도 그대로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지프 어벤저가 최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프 특유의 감성을 존중하면서 캠핑 등 모험심이 필요한 취미를 즐기지만 동시에 조용한 주행을 하고 싶다면 어벤저를 경험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