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흐르는 세월은 막을 수 없다. 나이가 차면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자연스라운 일이다. 그곳이 그라운드라면 이런 장면은 더욱 빠르게 찾아온다. 30대가 넘어서면 노장의 칭호가 붙기 시작하고 35세 이상은 '환갑'이 지났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어느 곳에나 예외가 있는 법, K리그에서도 여전히 그라운드를 호령하는 노장들이 있다.
<더팩트>에서 10월 2일 '노인의 날'을 맞아 존경해 마지않는 K리그 노장 베스트11을 준비했다. 선정 기준은 나이(축구 선수로 환갑에 가까운 1982년생 이상)와 실력(K리그 경기 이상 출전)이다.

◆ FW - 이동국(전북 현대·1979년생) 스테보(전남 드래곤즈·1982년생)
이동국은 필드 플레이어 가운데 최고령이다. 한국 나이로 37세다. 하지만 나이가 무색하고 꾸준하게 골망을 흔들고 있다. 올 시즌도 2일 현재 이동국(13골)보다 많은 득점을 기록한 선수는 김신욱(14골)이 유일하다. 이동국의 골이 곧 역사다. K리그 407경기 180골로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해 나가고 있다. 최고령 필드 플레이어가 득점왕 경쟁을 펼치고 있는 것만으로 무슨 이야기가 필요하겠는가.
스테보는 11골로 한 살 형인 에두와 함께 나란히 득점 공동 5위에 올라있다. 지난 2007년 전북에 입단했을 때만 해도 25세로 앳된 얼굴이었던 스테보는 어느새 전남 서열 3위가 됐다. 그동안 스테보는 K리그에서 9시즌을 보냈고 207경기 81골을 기록했다.

◆ MF - 몰리나(FC 서울·1980년생) 황지수(포항 스틸러스·1981년생) 김두현(성남 FC·1982년생) 이천수(인천 유나이티드·1981년생)
시즌 초반만 해도 몰리나의 노쇠화를 걱정하는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어느덧 29경기 3골 9도움으로 서울의 선전을 이끌고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빛나는 그의 왼발은 서울의 강력한 무기다. 3살 어린 염기훈(수원)과 리그 도움왕과 K리그 최다 도움을 다투고 있다.
황지수는 경력이 화려한 선수는 아니지만 리그 정상급 미드필더로 매 시즌 든든한 활약을 펼친다. 젊은 선수가 바탕이 된 포항에서 묵묵히 중원을 지키고 있다. 올 시즌 24경기에 나서 2도움을 올렸다. 미드필더 가운데 그보다 많은 경기에 출전한 선수는 손준호가 유일하다. 2004년 포항에 입단해 10시즌 동안 268경기에 출전해 5골 10도움을 기록했다.
김두현은 올 시즌을 앞두고 성남으로 이적해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올 시즌 29경기 7골 6도움으로 성남의 돌풍을 이끌고 있다. 당당히 공격 포인트 9위에 올라있다. 전성기만큼 활동량은 없지만 탁월한 위치 선정과 빼어난 패스 능력으로 경기를 조율한다. 김두현을 만난 황의조는 골 넣는 재미에 빠졌다.
이천수는 전성기에 비해 화려한 경기력을 보이진 못한다. 지금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울산 시설 그의 전성기가 정말 대단했다는 말이다. 이천수는 올 시즌 20경기에 나서 2골 2도움을 기록했다. 예리한 프리킥 능력은 여전하다. 나이가 들어 베테랑의 품격을 더했다.

◆ DF - 차두리(FC 서울·1980년생) 곽희주(수원 삼성·1981년생) 조성환(전북 현대·1982년생) 현영민(전남 드래곤즈·1979년생)
차두리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는 듯하다. 2013년부터 K리그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그는 올 시즌 데뷔골을 터뜨렸다. 이어 75번째 슈퍼매치에서 다시 골 맛을 봤다. 21경기에 나서 2골 2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개인 통산 한 시즌 최다 공격 포인트도 경신했다. 폭발적인 스피드는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던 아시안컵 그대로다.
2011년 전북의 주장으로 리그 우승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이끈 조성환은 외도를 마치고 올해 전북으로 복귀했다. 빡빡한 일정을 치른 전북에서 베테랑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리그 17경기에 나서 탄탄한 수비를 보이며 전북의 선두 질주에 크게 이바지했다.
'수원의 전설' 곽희주는 올 시즌 중에 팀에 합류했다. 리그 8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수원이 줄부상으로 힘든 가운데 든든하게 최후방을 지켰다. 곽희주의 합류에 구자룡은 실력이 만개했다. 16라운드 제주와 원정 경기에선 결승골을 터뜨리며 4-3 짜릿한 승리를 이끌었다.
지난해 베스트11 왼쪽 수비수 후보에 오를 정도로 여전한 실력을 자랑한 그는 올해도 묵묵하게 전남의 왼쪽을 지키고 있다. 리그 26경기에 출전해 2도움을 기록했다. 그는 K리그 그라운드를 누빈 14시즌 동안 두 번을 제외하고 모두 20경기 이상 출전할 정도로 꾸준하게 활약하고 있다.

◆ GK - 김병지(전남 드래곤즈·1970년생)
김병지는 K리그 최고령 선수다. 필드 플레이어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이동국보다 무려 9살이 많다. 올해 27경기에 나서 30골을 허용했다. 경기당 1.11실점이다. 지난해(경기당 1.39실점)보다 나아진 기록이다. 김병지는 올해 통산 700경기 출전의 대기록을 세웠다. 세월을 비켜간 듯 여전한 선방 능력을 그라운드에서 발산하고 있다. 김병지는 노상래 전남 감독, 김도훈 인천 감독, 조성환 제주 감독 등과 동갑이다. 최용수 서울 감독, 윤정환 울산 감독은 김병지와 악수를 할 때 고개를 숙인다.
노장들의 활약에 후배들의 자리를 빼앗는다는 지적이 나오곤 한다. 프로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나이와 경력보단 실력이 우선시되는 곳이 그라운드다. 노장의 선전을 기원한다. 노장의 활약은 팬들에게 또 다른 재미다. 동년배의 노장 선수와 함께 팬들의 추억과 주름살도 늘어간다.
[더팩트ㅣ이현용 기자 sporgon@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