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희의 골라인] 손흥민은 페널티킥을 '실축'하지 않았다!
  • 심재희 기자
  • 입력: 2015.04.01 10:35 / 수정: 2015.04.01 10:35

손흥민 PK 실패! 손흥민이 지난달 31일 열린 뉴질랜드와 평가전에서 페널티킥을 성공하지 못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우루과이와 친선전에서 드리블 하는 손흥민. /이효균 기자
손흥민 PK 실패! 손흥민이 지난달 31일 열린 뉴질랜드와 평가전에서 페널티킥을 성공하지 못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우루과이와 친선전에서 드리블 하는 손흥민. /이효균 기자

'페널티킥 실패' 손흥민, 고개 들어라!

손흥민이 페널티킥을 실패했다. 슈틸리케호에서 가장 정확하고 강력한 킥을 날리는 그가 득점 확률이 제일 높은 페널티킥을 놓쳤다. 대선배 차두리의 은퇴 기념 축포를 터뜨리고 싶었던 손흥민은 경기 후 페널티킥을 성공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지난달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뉴질랜드와 평가전에서 손흥민은 전반 38분 페널티킥 마크 앞에 섰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차두리에게 기회를 부여했지만 차두리가 손을 가로저었고, 결국 '독일파 후배' 손흥민이 골 사냥에 나섰다. 하지만 뉴질랜드 골키퍼 스테판 마리노비치의 선방에 막혔다. 손흥민의 오른발 슈팅이 구석으로 향하지 않으며 마리노비치의 방어벽을 뚫지 못했다. 그리고 기사들이 쏟아졌다. 손흥민 페널티킥 실축.

왜 '실축'이라는 표현을 이렇게 쉽게 쓰는 걸까. 물론 손흥민의 페널티킥이 완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실축'이라고 할 정도로 잘못 찼을까. 오른발 인프런트 킥은 강하고 빨랐다. 손흥민을 중심으로 좌측으로 더 꺾이지 못해 실패했지만 슈팅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상대 골키퍼가 방향을 잘 읽었고, 강력한 슈팅을 잘 막아냈다. 손흥민이 '실축'한 것이 아니라 골키퍼의 선방에 가로막혔다고 봐야 옳다.

실축이 아닌 실패! 손흥민이 페널티킥을 성공하지 못하자 많은 매체들이 손흥민 페널티킥 실축이라는 표현을 썼다. /네이버 캡처
실축이 아닌 '실패!' 손흥민이 페널티킥을 성공하지 못하자 많은 매체들이 '손흥민 페널티킥 실축'이라는 표현을 썼다. /네이버 캡처

페널티킥을 차는 선수는 크게 6가지 방향과 또 다른 1가지를 놓고 선택을 할 수 있다. 바라보는 골대의 위치를 기준으로 왼쪽 위, 왼쪽 아래, 오른쪽 위, 오른쪽 아래, 가운데 위, 가운데 아래를 노릴 수 있다. 그리고 골키퍼가 한 쪽으로 몸을 던질 것을 예측하고 공을 살짝 띄워 타이밍을 빼앗는 '파넨카킥'이 있다. 자신이 의도한 구석으로 정확하게 찔러넣으면 성공할 수 있고, 골키퍼를 속이고 반대 방향으로 차거나 파넨카킥을 시도하면 골망을 흔들 수 있다.

손흥민은 왼쪽 위를 노렸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이것을 '실축'으로 불러선 곤란하다. 위에 언급한 7가지 경우 가운데 하나를 상대 골키퍼가 잘 예측했다. 골대를 맞히거나 골대를 완전히 벗어나는 '실축'이 아니었다. 만약 골키퍼가 반대로 몸을 날렸다면 시원하게 골 네트를 갈랐을 것 아닌가. 손흥민의 페널티킥을 '실축'으로 불러서는 안되는 이유다.

과학적으로 볼 때, 페널티킥의 성공률은 100%에 가깝다. 축구 선수의 슈팅 속도는 보통 시속 100km 이상이다. 100km를 기준으로 11m 페널티킥 지점에서 공이 날아가면 약 0.5초 만에 골라인을 통과한다. 골키퍼의 평균 반응속도는 훨씬 더 느린 약 0.66초다. 이론적으로 골키퍼가 페널티킥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페널티킥의 성공률은 실제로 70% 정도로 집계된다. 성공률이 떨어지는 이유는 바로 '부담감'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100% 확률인 페널티킥이지만 차는 선수가 볼 때는 '넣으면 본전, 못 넣으면 역적'이 되는 부담스러운 순간이다. 때문에 킥이 의도한 대로 가지 않고, 골대를 때리거나 벗어나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손흥민 역시 '부담감'으로 정확한 킥을 날리지 못했다. 하지만 허무맹랑하게 공을 하늘로 날리거나 골대를 맞히지는 않았다. 상대 골키퍼와 수싸움에서 이기지 못했고, 꼭 넣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공이 약간 가운데로 쏠리면서 아쉽게 득점을 못 올렸다. 페널티킥을 '실축'한 것이 아니라 상대 골키퍼에 막혀 '실패'한 것이다.

골키퍼 선방! 손흥민이 뉴질랜드전에서 페널티킥을 찼지만, 상대 골키퍼에 막혀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유튜브 영상 캡처
골키퍼 선방! 손흥민이 뉴질랜드전에서 페널티킥을 찼지만, 상대 골키퍼에 막혀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유튜브 영상 캡처

경기 후 손흥민은 "해서는 안될 실수를 했다"고 말했다. 자책하지 않아도 된다. 고개를 들어야 한다. 선배 차두리를 위한 축포를 터뜨리지 못해 아쉽겠지만 페널티킥을 실패한 것을 '해서는 안될 실수'로까지 표현할 필요는 없다. '완벽하게 차지 못해 막혔다'라고 말해도 되는 페널티킥 실패였다.

페널티킥이나 승부차기에서 역적과 영웅이 많이 탄생한다. 중요한 순간에 페널티킥을 놓친 선수는 역적이 되고, 놀라운 선방을 펼친 골키퍼는 영웅이 된다. 실패와 실축과 선방이 공존하기에 페널티킥 승부는 잔인하면서도 즐겁다. 그리고 흥미로운 사실 한가지 더. 페널티킥의 쓴 맛을 본 선수들이 더욱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게 축구계 진리다. '부담감'을 극복하며 더 좋은 선수로 올라서는 경우가 많다. '승부차기 실축'으로 회자되는 로베르토 바조도 마찬가지였다. 손흥민 역시 페널티킥 실패 악몽을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기를 바라면서 축구계 명언 하나를 남긴다.

"페널티킥 마크 앞에 선 선수는 적어도 페널티킥을 차는 두려움을 뛰어넘은 선수다!"

[더팩트 | 심재희 기자 kkamano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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