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탐사-多장르 아이돌②] 뮤지컬★ 이재균, 나는 배우로소이다(인터뷰)
  • 오세훈 기자
  • 입력: 2014.04.26 08:00 / 수정: 2014.04.26 08:54

배우 이재균이 뮤지컬계의 아이돌로 여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배우 이재균이 뮤지컬계의 아이돌로 여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오세훈 기자] 떠오르는 해가 매번 다른 빛을 발산하듯 뮤지컬계의 신예 이재균(24)도 오르는 무대마다 '다른' 감동을 전한다.

"세상에 멋진 사람은 정말 많아요. 우리는 그들의 삶을 대신 연기하며 쫓아갈 뿐이죠. 그렇게 작품·캐릭터와 하나 되는 과정이 우리의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배우 아닐까요? 하하."

20대 초반의 젊은 배우가 기근인 뮤지컬계에서 이재균은 차근차근 하지만 빠르게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같은 그는 극에 자연스레 스며들며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다.

이재균이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한 지는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닥터지바고'(2012) 얀코 역, '번지점프를 하다'(2012) 현빈 역, '히스토리 보이즈'(2013) 포스너 역, '쓰릴 미'(2013) 리처드 역을 차례대로 소화하며 평단은 물론이고 관객들의 든든한 지지를 얻고 있다.

이재균은 "노래와 춤, 연기 삼박자가 기본이 되고 나서야 시작할 수 있는 것이 뮤지컬"이라며 "아무것도 아니던 내가 동경하던 배우들처럼 '나도 배우다'라고 말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내겐 기적이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배우다'는 말을 반복했다. '배우'인 그는 매번 무대를 통해 배우고, 배우는 과정을 거쳐 더 나은 '배우'가 되고 있다.

햇볕은 따뜻하지만 마음은 먹먹한 어느 봄날 서울 종로 두산아트센터 앞 노천카페에서 이재균을 만나 뮤지컬과 삶에 대한 긴 대화를 나눴다. 그는 말에 손짓과 몸짓을 더했다. 때로는 표정과 눈빛을 바꾸며 연기하듯 말했다.

이재균은 26일부터 서울 종로 두산아트센터에서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 무대에 오른다. /임영무 기자
이재균은 26일부터 서울 종로 두산아트센터에서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 무대에 오른다. /임영무 기자

◆ 잠 많던 아이가 뮤지컬계의 아이돌이 되기까지

"사실 2년째 듣는 말이지만 아직도 어색하고 창피해요.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어린 배우들이 많지 않아서 나온 얘기 같아요. 하하. 그런 말 들으면 괜히 더 열심히 연습하게 되는 것 같아요. 기분이요? 당연히 좋죠."

'뮤지컬계의 아이돌이 맞느냐'는 질문에 몸 둘 바를 모르던 이재균의 답이다. 이재균은 팬들 사이에서 손승원 등과 뮤지컬계의 샛별로 불리고 있다. 그는 "그들과 비교될 깜냥이 아니다. 아직도 멀었다"며 손사래쳤다. 말하는 그의 몸은 배배꼬였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이재균은 뒤늦게 배우의 삶을 시작했다. 뮤지컬은 잠만 자던 학생의 삶을 뒤바꾸어 놓았고 뒤늦은 성장통을 동반했다. 20세가 돼서야 사춘기를 경험했다는 그는 "그때 배우로서 필요한 불같은 사랑 등 여러 가지를 경험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후회 없는 20대를 보내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휴학했던 대학교 1학년 당시, 우연히 제안받은 오디션에 덜컥 붙으며 뮤지컬계에 발을 들였다. 그렇게 '그리스'와 '닥터지바고'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배고프고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이재균은 이를 즐겼다. 아직도 극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주변 선배 및 스태프들의 걱정거리지만 막상 무대 위에서는 맡는 역할마다 '이재균화'시키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는 연습실 공부벌레로도 통한다. 스태프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많은 것을 질문하고 계속해서 연습한다"고 귀띔했다. 이재균은 "운이 좋아 배우가 됐지만 아직 부족한 게 많아서 열심히 해야 한다"며 "막내라서 질문하는 것에 대한 특권이 있다.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선배들의 조언을 발판 삼아 한 발 더 내디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재균은 폭넓은 경험을 바탕으로 대중에게 작품으로써 신뢰감을 전하는 배우가 되길 원했다. /임영무 기자
이재균은 폭넓은 경험을 바탕으로 대중에게 작품으로써 신뢰감을 전하는 배우가 되길 원했다. /임영무 기자

◆ '여신님이 보고계셔' 순호, 이재균에 빠지다

이재균은 26일부터 서울 종로 두산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창작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에 류순호 역할로 무대에 오른다. '여신님이 보고계셔'는 한국전쟁 중에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무인도에서 표류하게 된 남한군과 북한국이 100일간 함께 생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무거운 소재를 유쾌하고 기발한 상상력을 더해 전쟁의 참혹함을 한 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로 풀어냈다.

이재균이 연기하는 류순호는 전쟁 중에 눈앞에서 형이 죽는 모습을 보고 전쟁 후유증을 앓는 소년병이다.

"워낙 인기 있는 작품이기에 저만의 류순호로 어떻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기존의 류순호와는 조금 다른 순호를 보여주고자 노력하고 있죠. 상처 있는 아이의 표정과 손짓 행동 등을 어떻게 표현하게 될까요? 호흡 맞춘 배우들과 빨리 무대에 서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이재균은 지난 몇 개월간 순호 만을 생각했다. 캐릭터의 배경과 스토리를 연구하고 캐릭터가 보고 느끼는 것을 공감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열심히 공부해서 배우들과 연습하다 보면 자연스레 눈앞에 무엇인가가 떠오른다. 그렇게 그 캐릭터가 되어 간다"며 "상대방과 주고받는 피드백도 큰 도움이 된다. 순간의 느낌을 기억하고 체득하며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팀워크를 위해 이재균은 동료 및 선배들과 술잔을 기울이거나 속내를 털어놓으며 서로 이해하기 위한 시간도 자주 가졌다. 특히 함께 순호 역할을 맡은 그룹 슈퍼주니어 려욱과도 자주 호흡했다. 그는 "려욱 형도 우리와 같은 '상남자'더라. 그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아이돌 가수가 뮤지컬 활동을 하는 것을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난 려욱 형은 우리보다 더 열심히 해서 모두의 본보기가 된 사람이에요. 연습하던 도중 저녁 비행기를 타고 중국에 갔다가 다음 날 아침에 비행기를 타고 다시 와 연습 하더라고요. 그들의 스케줄과 삶을 보고 연습에 열중하는 형이 대단해 보기기까지 했죠."

그는 "열심히 사는 아이돌에게 그저 아이돌이라는 이유로 폄훼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종류만 다를 뿐 '다 같은 예술 활동을 한다'고 생각한다. 장르의 경계도 많이 무너졌다. 이제는 그런 편견을 버려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재균은 물만 마셔도 살이 찐다며 배우로서 몸관리를 위해 꾸준히 다이어트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이재균은 "물만 마셔도 살이 찐다"며 배우로서 몸관리를 위해 꾸준히 다이어트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임영무 기자

◆ "나는 선택하지 않았다. 선택받았다"

노래 춤 연기는 기본, 자신의 몸과 마음, 목소리를 알고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뮤지컬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다. 뮤지컬에게 선택받았다"고 말하는 이재균이 꼽은 좋은 뮤지컬 배우의 덕목이다. 그는 모든 뮤지컬 배우가 그렇듯 선배들에게 배우고 무대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깨달을 수 있었다.

이재균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몸으로 느껴보고 싶어 했다. 그는 "그런 뒤에야 비로소 모든 것을 자기화하는 배우가 될 수 있을 것이며 그게 자신만의 연기 색깔을 갖는 법"이라고 귀띔했다. 그런 것들이 뒷받침됐을 때 비로소 관객에게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

그는 뮤지컬 배우 강필석과 할리우드 배우 에드워드 노튼(Edward Norton)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재균은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를 많이 따라 하려고 노력했다. (강)필석이 형은 늘 나보다 두세 발 멀리 보고 조금 더 넓고 깊게 생각하는 선배이자 내 모든 물음에 답을 주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세상에 0점짜리 연기를 보러오는 사람들은 없다. 그렇기에 이재균은 무대 위에서 스스로 백 퍼센트의 자신 있게 최선을 다한다. 평가는 오직 관객과 상대 배우의 몫이다. 그래서 그는 상대배우와 더 많이 호흡하며 동시에 의지한다. 자신과 상대 배우가 만족한 극은 곧 관객이 즐거워하는 공연이 된다고 믿어서다.

그래서일까. 그는 무대에 오르며 가장 좋았던 순간을 묻는 말에 "극이 끝나고 상대배우가 진심으로 안아줬을 때"라고 답했다. 그는 "관객의 칭찬도 좋지만 상대배우에게 인정받을 때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이재균은 지난해부터 뮤지컬계의 샛별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임영무 기자
이재균은 지난해부터 뮤지컬계의 샛별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임영무 기자

◆ 청년, '배우'를 배우다

이재균은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진 남자다. 차가운 눈매에 순진해 보이는 얼굴, 소위 좀 놀았을 것 같은 분위기에 모범생 같은 행동을 한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모두 소화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는 가장 해보고 싶은 캐릭터를 묻는 말에 고민 없이 "정말 나쁜 놈"이라고 답하고는 "정말 나쁜 애를 진짜 나쁜 애로 표현해서 나쁜 사람들이 제대로 욕먹고 비판받게 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허세가 아니었다. 이재균은 주관이 뚜렷했고 목표를 정확히 설정하고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는 '어떤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은가'라고 묻는 말에도 "사실 너무 먼 얘기다. 생각해 보지 못했다. 다만 지금 내 일을 즐겁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관객에게 믿음과 즐거움을 주며 캐릭터보다는 작품 전체를 살리는 배우를 좋은 배우로 꼽았다. 관객이 작품 전체를 오롯이 느낄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 그러한 작품에서 빛을 내고, 그 빛으로 자신이 선 무대를 더욱 밝게 해주는 그런 배우.

"많은 경험으로 캐릭터를 노련하게 표현하면서도 자신이 가진 기술과 노하우를 가감하게 버려 좀 더 서툴게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여신님이 보고계셔' 동료들이 우연히 테이블을 지나갔다. 그들은 서슴없이 이재균에게 장난을 걸었고 이재균은 자연스레 기자를 장난에 참여시켰다. 그리고 이제 그는 대중을 무대로 끌어들이려 한다. 준비는 끝났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막은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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