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화이트캡스의 이영표가 3일(한국시각) 기록한 시즌 첫 도움은 득점으로 연결된 마지막 패스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많은 팬들의 궁금증을 낳았다. / 스포츠서울 DB
[유성현 기자] '저건 골이 맞을까?', '그 선수의 유니폼엔 어떤 비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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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스 1] 이영표의 '기이한 AS'와 MLS의 독특한 규정
지난 주말, 지구 반대편에서 들려온 연이은 희소식은 더없이 반가웠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박지성(32·QPR)과 이영표(36·밴쿠버)가 나란히 도움을 기록하며 노장 파워를 과시했는데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첫 경기 완패의 충격에 휩싸였던 국내 스포츠 팬들은 오랜만에 들려온 두 베테랑 선수의 낭보에 쌓였던 스트레스를 말끔히 날릴 수 있었습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시즌 개막전부터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초롱이' 이영표의 활약은 또 다른 내용으로 화제가 됐는데요. 다름 아닌 MLS의 '희한한 도움 규정'으로 축구 팬들을 의아하게 만들었습니다. 결승골을 도운 선수가 이영표를 포함한 2명으로 기록되면서 적잖은 스포츠 팬들의 궁금증을 낳았습니다. 터진 건 1골인데 도움은 2개라는 이색 기록.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이영표는 3일(한국시각) 캐나다 밴쿠버의 BC 플레이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3시즌 MLS 1라운드 토론토 FC와 홈경기에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했습니다. 공수에서 폭넓은 활약을 보이던 그는 후반 14분 결승골에 징검다리를 놓으며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죠. 이영표는 오른쪽 측면에서 케니 밀러와 2대1 패스를 주고 받은 뒤, 전방에 있는 다이고 고바야시에게 패스를 건넸습니다. 고바야시는 쇄도하던 거손 코피에게 곧바로 공을 내줘 짜릿한 결승골을 도왔죠. 탄탄한 팀워크가 빛을 발한 환상적인 '삼각패스'였습니다.
원칙대로라면 골이 터지기 직전에 패스를 건넨 고바야시의 도움만이 기록되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MLS는 득점 과정에서 마지막 패스를 건네지 않았던 이영표에게도 도움을 추가적으로 부여했습니다. 결국 1-0으로 밴쿠버의 승리로 끝난 이날 경기에서는 도움을 기록한 선수가 두 명이 되는 진풍경이 연출됐습니다.
이영표의 도움 기록에는 MLS만의 독특한 도움 산정 방식이 반영됐습니다. MLS에는 골을 얻는 공격 과정에서 마지막 패스를 건넨 선수 뿐 아니라, 득점 과정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선수에게도 도움을 부여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영표의 패스가 골을 만든 '삼각패스'의 기점이 됐다는 이유로 도움으로 기록된 것이죠. 지난 시즌까지 LA 갤럭시에서 활약했던 데이비드 베컴도 이 규정의 혜택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2009년 MLS 결승에서 측면으로 찔러 준 베컴의 침투 패스가 랜던 도노번의 크로스를 거쳐 마이크 매기의 득점으로 연결되면서 2명의 선수에게 도움이 매겨진 바 있습니다.
프로 축구의 도움 규정은 각 리그마다 차이가 큽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는 득점자가 세 번의 볼 터치 이내에 골을 터뜨리면 마지막 패스를 건넨 선수의 도움을 인정합니다. 페널티킥이나 프리킥이 득점으로 연결되는 경우에는 반칙을 얻어 낸 선수가, 골대에 맞고 나온 공을 다른 선수가 넣었을 때는 이전 슈팅을 시도한 선수가 도움을 얻습니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와 이탈리아 세리에A는 도움을 공식적으로 집계하지 않습니다. 중계방송사마다 도움을 매기는 방식에 차이가 있어 기준이 다소 모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MLS만큼은 아니지만 K-리그도 도움 집계 기준이 독특합니다. K-리그에서는 볼을 터치한 횟수보다 '득점자가 얼마나 많은 선수를 제쳤느냐'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죠. 기준은 단 1명 이내입니다. 만약 1번의 볼터치로 2명 이상의 선수를 제치고 골을 터뜨린다면, 마지막 패스를 건넨 선수의 도움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2명 이상의 선수를 제치면 패스를 건넨 선수보다 득점자의 역량이 골에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골대나 상대 선수를 맞고 나온 공을 다른 선수가 다시 슈팅에 득점에 성공해도 도움이 인정되지 않는 점도 EPL과는 다릅니다.
축구를 기록의 스포츠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패스 성공률, 활동량 등을 과학적인 데이터로 기록화한 역사가 그리 길지 않고, 여전히 골과 출장 수가 개인 기록의 전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골을 만드는 '숨은 공로자'를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는 도움 기록은 더욱 명확하게 집계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리그마다 각기 달라 혼란스러운 도움 산정 기준. 차라리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 주는 남자)'이 나타나 확실하게 정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