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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WE의 러브콜을 받은 멧 블룸 /사진=신 일본 프로레슬링 제공 |
우리나라는 여전히 승부 사전 합의라는 문제에서 논지가 벗어나질 않기에 프로레슬링에 대한 인식은 한계가 있는 듯하다. 그런 이유에서 WWE의 인기는 국내에선 보합세이나 미국 현지에선 이미 엔터테인먼트로 인정하기에 나쁘지 않다. 야구가 유럽에서 인기 없거나 미국에서 축구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은 것처럼 문화적 차이라고 말할 수 있기에 굳이 프로레슬링을 봐야 한다고 강권하고 싶진 않다. 그래도 WWE의 장점이 있다면 매출이나 경영 실적은 빚더미의 유럽 축구 리그나 적자인 야구팀들과 달리 아주 안정적이며 일부 문화권에선 엄청난 파괴력이 있단 점이다.
이번 글에선 위기에 몰렸지만 참은 뒤 결국 역전타를 이뤄낸 선수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 한다. A-트레인이란 명칭으로 활동한 1972년 생인 맷 블룸은 기괴한 외모와 은근히 빠른 몸놀림으로 초기엔 기대를 받았지만 엄청난 거구는 아니었기에 2m 10cm 대의 거인과 비교하면 다소 한계가 있었다. 결국 새로운 괴수들이 나올수록 밀리면서 중간급 선수로 쓰였고, 늘 그렇듯 출연 빈도가 떨어지다가 2004년 1월 WWE에서 계약 해지로 풀리고 만다.
이렇게 방출이 되면 초기엔 인지도 덕분에 작은 단체에 고액의 돈을 받고 출전할 수 있지만, 이것도 한 철일 뿐, 점점 팬들의 뇌리에서 잊히면 출전비용도 깎이고 추억의 선수로 밀리게 된다. 위기에 몰린 맷 블룸은 그나마 프로레슬링 인기가 남은 일본을 택했다. 전-일본 프로레슬링이란 단체에 데뷔한 블룸은 ‘자이언트 버나드’라는 이름을 택했고 WWE 출신의 자니 스탬볼리, 척 팔롬보와 같이 활동했다. 동료 팔롬보는 프로레슬링에서 다소 한계를 느끼자 오토바이 사업을 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았고 스탬볼리는 발전이 없단 평가를 들었지만 자이언트 버나드 만큼은 일본 내 외국인 강자로 치고 올라갔다.
2006년엔 라이벌 단체인 신일본 프로레슬링으로 이적했고 단체의 스타 나가타 유지를 잡고 토너먼트에서 우승했다. 덕분에 타이틀 도전권을 얻었고 당시 IWGP 챔피언인 브록 레스너에게 도전했으나 주가를 올리던 그에게 무너졌지만 기량이 더욱 늘었단 평가를 받았다.
그에겐 다시 기회가 왔다. 레스너가 UFC로 떠나자 최고의 외국인 선수 자리를 차지했고, 챔피언을 가리기 위한 토너먼트에서 결승에 진출, 당시 일본의 차기 에이스로 주목받던 타나하시 히로시에게 패했지만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물론 승부는 사전 합의 된 부분이지만, 팬들이 원하는 선수가 이기는 특성이 있기에 메인 경기를 차지하는 선수들은 단체나 팬들의 인정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이후 IWGP 태그 챔피언에 트래비스 톰코(타이슨 콤코)와 같이 올랐고, 일본 프로레슬링 전성기에 외국 용병들이 받던 대우는 아니지만 최상급 외국인 선수로 격상되었으며, 톰코가 미국으로 돌아간 뒤 칼 앤더슨과 태그팀을 이뤄 시원한 머리만큼 확실한 파워 듀오로 각광받았다.
일본에서 최고 용병으로 변신한 그에게 WWE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15년 만에 각성했다는 마크 헨리가 부상으로 인해 풀타임 출전이 어려워졌고, 거구라서 각광받던 이즈키엘 잭슨, 메이슨 라이언 등이 생각보다 기량 부족으로 문제가 되기에 맷 블룸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맷 블룸은 ‘로드 텐사이’라는 이름으로 레슬매니아 이후 등장하며 과거 ‘동양 출신의 괴수’ 뱀 뱀 비골로우 같은 강자의 역할이라 한다. 누구에게나 시련은 있다. 훨씬 더 재능이 많고 각광받던 스캇 홀 처럼 남들 때문에 약물 중독이 되었다면서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위기에 몰려서도 꾸준하게 기회를 기다린 뒤 결국 성공하는 맷 블룸 같은 이도 있다. 40대가 넘었으니 상대적으로 선수생명이 긴 프로레슬러라 하더라도 앞으로 전성기가 얼마 남진 않았지만 지금 정도의 노력이라면 향후에도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꾸준하게 준비한 사람에게 기회가 온다는 사실을 맷 블룸, ‘로드 텐사이’가 다시 한 번 증명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