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엽 기자] 지난주 '농구장★사람들'에서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선수들과 이들을 바라보는 팬을 위해 목청을 높인 서울 SK 박홍구(32) 응원단장의 이야기를 전했다.(관련기사 보기) 인생을 즐기기 위해 자신이 꿈꿔온 응원 단상에 오른다는 박 단장의 외침은 '최강' 동부를 91-77로 이기는 이변을 연출한 SK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됐다. 집으로 돌아가는 팬들의 얼굴에도 함박웃음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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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구를 향한 순수한 사랑으로 체육관의 어두운 구석을 환하게 밝힌 자폐증 청년 황인성씨 (가운데)와 그의 부모 황덕연(오른쪽), 김선회씨 / 신원엽 기자 |
4일 고양 오리온스와 전주 KCC의 경기가 열린 고양체육관 한쪽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취재를 위해 체육관을 돌아다니던 중 소리가 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주변에 싸움이 일어난 것 같은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다정하게 농구를 관람하고 있는 한 가족이 있을 뿐, 어떠한 소동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발달 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한 청년의 성난(?) 응원만이 그 자리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더팩트>은 오리온스가 KCC에 82-88로 진 경기 후 자폐증 청년 황인성(21)씨와 그의 부모 황덕연(49), 김선회(48)씨를 만났다.
- 아드님의 목소리가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몸이 조금 불편해 보이더군요.
김선회씨(이하 엄마): 아들이 자폐증을 앓고 있는데 평일에 장애인 보호 작업장에서 일을 해요.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주말을 맞아 농구장을 찾았어요. 다 큰 아들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때론 부끄럽기도 하지만,(웃음) 농구장만 오면 무척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저도 자주 오게 되더라고요. 농구를 직접 보니 재밌기도 하고요. 아빠가 옆에서 아들의 곁을 의연하게 지켜주니까 든든하네요.
- 아드님의 응원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화가 난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엄마: 아들이 기분 좋다는 표현을 그렇게 격하게 해요. 화가 나거나 무언가를 싫어하는 게 아니에요.(웃음) 아들의 목소리가 상당히 커서 3층에서 경기를 보고 있어요. 처음 몇 번 왔을 때는 사람 많은 가운데 자리에 앉았는데 많은 분들이 쳐다보시더라고요. 그 다음부터 사람이 거의 없는 골대 뒤에서 경기를 보기 시작했는데 참 좋은 것 같아요. 그래도 항상 우리 아들의 목소리가 다른 분들이 듣기에 아무렇지 않은지 궁금하고 걱정돼요.
- 주변의 시선 때문에 아들과 좋은 자리에서 못 보는 게 많이 아쉽겠어요.
황덕연씨(이하 아빠): 아니에요. 선수들을 더 잘 볼 수 있는 곳에서 보면 저희는 더 좋을 수 있겠죠. 하지만 주변 분들이 힘들어져요. 물론 양해를 구하면 배려해주시지만 저희가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마음껏 소리 지르며 관람하는 것이 모두에게 훨씬 낫죠. 셔플댄스 음악과 오리온스 응원곡이 들리면 아들이 정말 좋아해서 열심히 응원하는데요, 이런 아들이 눈에 띌 수 있는 자리에서 상품 받는 것을 보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민폐가 될 수 있으니 참아야죠. 아들을 위한 상품은 경기 후 제가 맛있는 밥을 사는 걸로 대신할 겁니다.(웃음)
- 장애가 있는 아들과 농구장에 오는 게 쉽지만은 않으셨죠?
엄마: 고양시에 있는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단체의 프로그램을 통해 아들과 농구장에 처음 오게 됐어요. 다른 장애우들도 많아 용기내서 왔는데 아들이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그때 아들의 표정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좋아한 적이 있나 싶어요. 그 다음부터 저와 둘이 농구장에 다니기 시작했고 곧바로 아빠도 합류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죠. 솔직히 용기는 조금 필요해요. 첫 발걸음을 떼는 게 힘들지, 막상 오면 괜찮아요.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두신 다른 분들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농구장을 찾으시면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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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농구팬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한적한 골대 뒷쪽 3층 구석에 앉은 황씨 가족. |
- 농구를 향한 열정은 두 분도 아들 못지않으시던데요?
아빠: 남자라면 누구나 구기 종목을 좋아하지 않나요?(웃음) 저는 예전부터 허재 감독을 좋아해서 허 감독 선수 시절부터 그 팀만 따라다녔어요. 그런데 오리온스가 연고지를 고양으로 옮겼고, 또 김유택의 아들 최진수 선수가 있더라고요? 그 때부터 KCC는 응원 1순위로 밀려나고 오리온스가 0순위가 됐죠.(웃음)
엄마: 처음에 저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 아들이 응원하는 모습을 봤을 때 (비장애인들 보다) 표가 날 것 같아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아들과 비슷하게 몸을 흔들면서 응원하기 시작했죠. 우리 아들 혼자 그러면 너무 티가 나니까요. 이렇게 엄마가 옆에서 같이 응원해주면 아들도 더욱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고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저의 스트레스도 풀리고 농구 보는 재미를 알아가게 되더라고요. 농구, 참 재밌는 것 같아요.(웃음)
- 농구 정규 리그가 오늘로 끝났는데 아쉬워서 어쩌죠.
엄마: 이제 축구 보러 가려고요.(웃음) 축구장에 아들과 가본 적이 있는데 사람들의 함성에 아들의 목소리가 묻혀서 괜찮더라고요. 경기도 재밌고요. 야구장도 경험해 봤는데 저에게나 아들에게나 조금 지루한 스포츠인 것 같더라고요. 규칙을 이해하기도 어렵고요. 앞으로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자주 만나요.(웃음)
- '농구장★사람들' 공식 질문! 당신에게 농구란?
아빠: '농구장'은 저와 아들의 친밀도를 높여주는 매개체라고 생각해요. '농구'는 그냥 제가 좋아하는 구기 종목에 불과하지만 농구장에 오면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들과 같이 열심히 응원하면서 하나가 되죠. 저는 농구와 농구장을 구분하고 싶어요.
엄마: 제게 농구란 활력소이자 좋은 추억이에요. 아들과 농구장에 왔던 기억을 떠올리면 항상 기분이 좋아요. 그래서 올 시즌 마지막 경기인 오늘, 응원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은 거예요. 아들이 카메라에 찍힌 자신의 모습을 보면 좋아할 것 같기도 하고, 올해 농구장에서 쌓은 추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어요.
2011~2012시즌 KB국민카드 프로농구 정규리그가 이날 막을 내렸다. 선수들과 팬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도 신명나게 응원한 자폐 청년 황인성씨는 "다음 주에도 농구장에 올 거예요"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농구를 향한 순수한 사랑으로 체육관의 어두운 구석을 환하게 밝히는 황씨를 지켜본 부모는 "앞으로 우리 아들뿐만 아니라 모든 장애인들을 보는 주변의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졌으면 좋겠어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모두 한 팀의 팬이잖아요? 다 같이 어우러져서 힘껏 응원하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부탁했다. 이번 주 농구장을 빛낼 사람은 또 누구일까.
<글·사진 = 신원엽 기자>
더팩트 스포츠기획취재팀 기자 wannabe25@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