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조차 못 찾아"…위패로 만난 가족, 눈물로 채운 위령제

  • 손연우 기자
  • 입력: 2026.10.19 17:42 / 수정: 2026.10.19 17:44
부산 태종대서 제48회 순직 선원 합동위령제
위패 21위 추가 봉안…유족 등 300명 추모
19일 오전 부산시 영도구 순직선원위령탑에서 제48회 순직 선원 위패봉안 및 합동위령제가 거행된 가운데 참석자들이 영령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선원노련
19일 오전 부산시 영도구 순직선원위령탑에서 '제48회 순직 선원 위패봉안 및 합동위령제'가 거행된 가운데 참석자들이 영령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선원노련

[더팩트ㅣ부산=손연우 기자] "아빠는 다시 온다며 어린 아들이 제 눈물을 닦아 줬어요."

바다에서 남편을 잃고 홀로 남매를 키운 향상월 씨에게 40년째 찾는 순직선원위령탑은 여전히 눈물의 자리였다.

19일 오전 부산 영도구 순직선원위령탑에서 만난 70대 향 씨는 남편의 부고를 접했던 날을 떠올리며 울먹였다. 그는 "남편을 기다리며 밤을 꼬박 새운 뒤 이튿날 아침 어린 아들을 업고 사고 현장으로 갔다"며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 나를 안고 내내 눈물을 닦아줬다"고 말했다.

그날의 어린 아들과 딸은 어느덧 장성했다. 향 씨는 "아이들은 나를 보고 이렇게 잘 자라 줬다"며 홀로 남매를 키운 세월을 돌아봤다. 이제는 자녀들도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위령탑을 찾는다고 했다.

이날 오전 11시 이곳에서 열린 '제48회 순직 선원 위패봉안 및 합동위령제'에는 향 씨처럼 가족을 바다에 떠나보낸 유족과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선원노련) 등 해운·수산업계 관계자 300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조업과 항해 도중 목숨을 잃은 선원들의 넋을 기리고 지금도 바다에서 일하는 이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했다.

부산시 영도구에 사는 70대 김모 씨 부부도 고인의 안식을 빌기 위해 자리를 함께했다.

김 씨는 "1980년대 초 시동생이 거제 해역에서 유조선 폭발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며 "시신조차 찾지 못해 가슴이 미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족들이 인천에 있어 우리 부부가 매년 찾아온다"며 "오늘도 고인들이 더 편히 잠들기를 빌러 왔다"고 했다.

19일 오전 부산시 영도구 순직선원위령탑에서 제48회 순직 선원 위패봉안 및 합동위령제가 거행된 가운데 이창민 한국선박관리산업협회장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선원노련
19일 오전 부산시 영도구 순직선원위령탑에서 '제48회 순직 선원 위패봉안 및 합동위령제'가 거행된 가운데 이창민 한국선박관리산업협회장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선원노련

어린 두 딸의 손을 잡은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여성부터 고개를 떨군 채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는 노인까지 가족을 떠나보낸 시간은 저마다 달랐지만 돌아오지 못한 이를 향한 그리움은 같아 보였다.

위령제는 부산항 일대에 정박한 선박들이 일제히 30초간 추모의 뱃고동을 울리며 시작됐다. 참석자들의 묵념에 이어 올해 새로 모시는 순직 선원 21위의 위패 봉안이 진행됐다. 이로써 위령탑에 봉안된 위패는 모두 9414위로 늘었다.

올해 위령제의 제주(祭主)는 이창민 한국선박관리산업협회장이 맡았다.

이창민 회장은 추도사에서 "순직 선원들의 이름마다 가족을 위해 바다로 향했던 한 사람의 삶과 해양산업 발전을 위해 소임을 다했던 시간이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바다에서 일하고 있는 선원들이 더욱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책임"이라며 "업계·관계기관·선원단체와 협력해 안전체계를 개선하고 회원사와 공유하는 한편 취약한 관련 산업 분야로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19일 오전 부산시 영도구 순직선원위령탑에서 제48회 순직 선원 위패봉안 및 합동위령제가 거행된 가운데 전재수 부산시장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손연우 기자
19일 오전 부산시 영도구 순직선원위령탑에서 '제48회 순직 선원 위패봉안 및 합동위령제'가 거행된 가운데 전재수 부산시장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손연우 기자

전재수 부산시장은 "빠르고 멀리 가는 것만큼 배 탔던 사람이 무사히 돌아오는 것도 중요하다"며 "우리 시는 정부, 선원단체와 함께 현장의 위험을 줄이고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전 시장은 이어 "유가족 지원에 부족한 점은 없는지 살펴보고 선원들의 헌신이 오래 기억되고 정당하게 예우받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남재헌 해수부 차관은 "우리나라가 해양수산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나라와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해온 선원들의 피땀과 헌신 덕분"이라며 "선원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권익 보호를 강화하고 안전한 근무환경을 만드는 데 더욱 노력하겠다"고 했다.

선원노련에 따르면 순직 선원 위령제는 조업과 항해 도중 목숨을 잃은 선원들을 추모하고 유족을 위로하기 위해 해마다 열린다. 올해는 한국선박관리산업협회와 선원노련 등 해운·수산 분야 8개 단체가 공동 주관하고 해양수산부와 부산시, 부산항만공사가 후원했다.

순직선원위령탑은 부산항 개항 100주년을 기념해 1979년 4월 12일 건립됐다. 영도구 해발 100m 지점에 자리한 높이 46m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 부지 면적은 7745.49㎡다. 2006년 10월에는 위패봉안소가 준공됐다.

건립 이후 바다에서 생을 다한 선원들의 넋을 기리는 대표적인 추모공간으로 자리 잡았으며, 선원노련이 시설을 관리하고 있다.

newsbu@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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