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 l 순천=김영신 기자] "왜 4·3은 이야기하면서 여순 이야기는 하지 않나요?"
2020년 전남광주 순천시를 처음 찾은 김금숙 작가에게 한 시민이 질문을 건넸고, 김 작가는 많이 생각했고, 또 약속했다.
여순10·19사건을 소재로 한 최초의 그래픽노블 '흰 신'을 펴낸 김금숙 작가가 8일 오후 순천시 '나무들의 밤' 서점에서 독자들과 처음 만나는 '북토크'를 열고,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줬다.
김금숙 작가는 작품을 쓰게 된 계기부터 유족들을 만나고 여순의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취재했던 과정까지 나직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이야기를 전했다.
무엇보다 '흰 신'의 출발점에는 여순사건을 직접 겪었던 작가의 아버지와 가족의 역사가 있었다.
김 작가는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여순사건이 일어난 여수시와 가까운 고향 고흥군에서 성장했지만 정작 아버지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아버지 나이 오십에 태어나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음에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아버지가 항상 어려웠다는 김 작가는 나이가 들면서 차츰 아버지의 삶이 궁금해졌다.
'아버지는 여순을 어떻게 겪으셨을까', '아버지의 누나들은 왜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났을까', '왜 아버지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한 번도 제대로 하지 않으셨을까'.
이 질문들은 '흰 신'의 중요한 출발점이 됐다.
그는 작품을 쓰기 위해 지난 수년간 여순사건의 현장을 직접 찾았다. 유족들을 만나 증언을 들었고, 연구자들을 인터뷰했다. 여수항쟁역사관과 평화공원, 당시 교전이 있었던 장소까지 직접 찾아다녔다.
특히 여성 피해자들의 삶에 주목했다. 남편을 잃고 어린 자녀들을 키워야 했던 여성들, 가족을 잃고도 살아남아 모진 고생을 하며 살아왔음에도 긴 세월 침묵해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작가는 단순히 증언의 내용만 받아 적지 않았다고 했다. 피해자들이 말을 할 때의 표정과 몸짓, 침묵까지 바라보며 그들의 삶을 작품 속에 담으려 애썼다.
김 작가는 유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힘든 순간이 많았다고 했다. 80여 년 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까지도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팠고, 그 무게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한 사람의 기억이 사라지면 그 사람이 겪었던 역사도 함께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 한 사람의 유족이라도 더 만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가 제목이 왜 '흰 신'이냐고 묻자, 김 작가는 "당시에는 흰 색 한복을 많이 입었고, 봉기군도 흰 고무신을 많이 신었다. 흰색이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여순사건 이야기를 처음 그래픽노블에 담은 김금숙 작가의 '흰 신'은 작가의 실제 삶과 가족 배경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김 작가는 책 속에서 여순사건 당시 국가폭력의 비극뿐 아니라 이후 5·18 등 한국 현대사에서 반복된 민간인 희생과 낙인의 문제까지 연결하고 있다. '흰 신'은 여순이야기를 그린 책인 동시에 아버지의 삶을 기억하기 위한 한 딸의 긴 기록이기도 하다.
한 컷을 그리기 위해 직접 호미를 들고 내려치는 장면, 얼굴을 가리고 양손을 뒤로 묶는 상황까지 재연해 보기도 했다는 김 작가는 피해자와 유족들이 명예를 찾고, 국가로부터 사과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로 북토크를 마무리했다.
김금숙 작가는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를 그려낸 '풀'과 제주 4.3 이야기를 그린 '지슬' 등 아픈 역사 이야기를 주로 작품의 소재로 삼고 있다.
'풀'은 전 세계 35개 언어로 번역됐고 한국 최초로 국제만화계 최고의 권위를 지닌 '하비상'을 수상했다.
또 아이즈너상 3개 부문에 후보로 지명되고, 이탈리아 트레비소 만화축제에서 최우수 해외만화상 등을 수상하는 등 다양한 만화제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한국 만화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 작가로 평가 받는다.
bbb250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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