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규정 뒤에 숨은 포항해수청, 울릉 주민 생명선은 누가 지키나
  • 김성권 기자
  • 입력: 2026.10.01 16:56 / 수정: 2026.10.01 16:56
울릉주민대표 단체인 울릉군 이장협의회가 포항해수청에 낸 탄원서(왼쪽)와 울릉군 보건의료원장의 호소문. /독자 제공
울릉주민대표 단체인 울릉군 이장협의회가 포항해수청에 낸 탄원서(왼쪽)와 울릉군 보건의료원장의 호소문. /독자 제공

[더팩트ㅣ울릉=김성권 기자] "겨울철 거센 파도에 뱃길마저 끊기면 아픈 몸을 이끌고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울릉 주민들의 호소가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단순히 배 한 척을 더 띄워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겨울철 풍랑으로 기존 뱃길이 막혔을 때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어떻게 육지로 나갈 것인지, 그 최소한의 안전판을 마련해 달라는 절박한 요구다.

그런데 주민들이 받아든 답은 사실상 "규정상 어렵다"는 취지의 사업계획변경인가 반려였다.

대저페리는 겨울철 한시적으로 '엘도라도 익스프레스호'를 후포~울릉 항로에 운항하기 위해 포항지방해양수산청에 사업계획변경인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포항해수청은 해운법 제12조에 따른 사업계획 변경인가가 면허받은 항로 안에서 선박의 교체·대체·감선, 기항지 변경, 운항 횟수·운항 시각 변경, 휴항 등의 경우에 한정된다는 점을 들어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면허받은 항로가 아닌 다른 항로에 선박을 운항하도록 사업계획을 변경하는 것은 현행 규정상 사업계획 변경인가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포항해수청의 설명이다.

법 규정만 놓고 보면 포항해수청의 설명에는 근거가 있다.

그러나 행정은 법 조항을 읽고 민원 서류에 결재 도장을 찍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특히 섬 주민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안 된다'는 답보다 '어떻게 하면 되는가'를 먼저 찾았어야

울릉 주민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주민들이 요구한 것은 영구적인 항로 변경이 아니다. 겨울철 몇 달 동안 기존 포항항로가 기상 악화로 불안정해질 경우를 대비해 한시적으로 후포~울릉 항로를 활용하자는 것이다.

울릉군 이장협의회와 울릉군보건의료원장까지 직접 호소문과 탄원서를 제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겨울철 울릉은 바람과 파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여객선 운항이 불가능한 날이 생기면 섬과 육지를 잇는 교통망 자체가 흔들린다.

가장 큰 문제는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경우다.

강풍과 폭설, 기상 악화로 여객선은 물론 헬기 운항까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중증환자가 발생한다면 선택할 수 있는 교통수단은 급격히 줄어든다.

주민 입장에서 '규정상 불가능하다'는 말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 이유다.

"겨울철 응급환자가 발생했는데 강풍과 눈보라로 헬기마저 운항할 수 없어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

울릉읍 도동의 한 주민이 던진 이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물론 응급환자 이송과 관련한 책임 소재를 특정 행정기관에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행정기관이라면 그런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가능한 대안을 검토하는 것이 먼저 아니겠는가.

◇후포항로 끊긴 뒤 대체 교통망은 사실상 사라져

상황은 이미 예전과 달라졌다.

후포~울릉 항로를 운항하던 에이치해운의 울릉썬플라워크루즈호가 지난해 8월 운항을 중단하면서 겨울철 울릉 주민들의 선택지는 더욱 좁아졌다.

코로나19 여파와 유가 상승, 누적 적자 등이 운항 중단의 배경으로 제시됐다.

그 결과 겨울철 포항항로가 기상 악화로 결항할 경우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대체 항로가 사실상 사라진 상황이다.

이런 현실에서 대저페리의 엘도라도 익스프레스호를 겨울철에 한시적으로 후포항로에 투입하자는 요구가 나온 것이다.

포항~울릉 항로는 약 217㎞, 운항시간은 약 2시간 50분인 반면 후포~울릉은 약 167㎞, 약 1시간 50분이다.

주민들이 단순히 '배를 한 척 더 띄워달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겨울철 섬 지역의 교통 공백을 줄이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행정은 '규정의 벽' 앞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포항해수청의 이번 반려 결정이 주민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온 것은 어쩌면 예고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행정기관 입장에서 법령과 면허 체계를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 안전 기준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선박 운항을 허가하라는 주장도 아니다.

하지만 법에 명확한 제한이 있다면 그다음 행정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안 된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데서 끝날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어떤 절차와 제도가 있어야 가능한가'를 찾아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다.

겨울철 고립 가능성이 커지는 섬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육지로 이동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택지를 확보해 달라는 것이다.

포항해수청이 현행 규정상 사업계획변경인가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신청을 반려했다면, 이제라도 관계 법령과 제도상 가능한 다른 절차가 있는지, 관계 기관 협의나 별도의 행정적 해법은 없는지 적극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행정의 역할은 규정을 지키는 것과 동시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울릉 주민들이 포항해수청을 원망하는 이유

주민들의 분노는 단순히 이번 반려 결정 하나 때문만은 아니다.

울릉 주민들에게 여객선은 관광객을 위한 이동수단이 아니다.

병원에 가고, 생필품을 들여오고, 교육과 행정을 위해 육지로 나가기 위한 생활의 통로다.

무엇보다 응급환자에게는 '이동수단'이 아니라 '생명선'이다.

그런데 주민들은 그 생명선을 지키기 위한 행정이 '규정'이라는 벽 앞에서 멈춰섰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포항해수청을 향한 원망과 비난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행정기관이 주민들의 목소리를 단순 민원으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번 기회에 '강구항~울릉' 항로도 다시 검토해야

주민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보다 근본적인 대책도 요구하고 있다.

과거 민선6기 당시 울릉군과 영덕군이 강구항과 울릉도를 잇는 여객선 운항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던 만큼 울릉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영덕 강구항을 연결하는 새로운 항로 개설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매년 반복되는 겨울철 해상교통 불안을 생각한다면 장기적으로 검토할 가치가 있는 대안이다.

한시 운항이든 새로운 항로 개설이든 핵심은 하나다.

울릉 주민들이 겨울마다 '이번에는 배가 뜰까, 안 뜰까'를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구조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제 포항해수청이 답할 차례

울릉 주민들은 포항해수청에 무조건적인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법과 안전을 지키면서도 가능한 방법을 찾아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저페리의 한시 운항 신청이 현행 규정상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그 이유만 설명할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제시한 절박한 현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대안까지 제시해야 한다.

'규정상 안 된다'는 한마디로 끝낼 일이 아니다.

겨울철 응급환자가 발생하고 기존 교통망마저 끊기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다면 행정은 지금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울릉 주민들에게 겨울바다는 매년 찾아오는 현실이다.

그리고 그 바다를 건너는 배는 관광선이 아니라 생명선이다.

포항해수청이 주민들의 호소를 단순한 민원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섬 주민들의 생존과 직결된 교통권 문제로 바라볼 것인지 이제 답해야 한다.

규정의 문구만 들여다볼 것인가.

아니면 그 규정 너머에서 겨울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1만여 울릉 주민들의 현실까지 들여다볼 것인가.

공은 다시 포항지방해양수산청에 넘어갔다. 그 답을 내놓을 책임이 이제 포항해수청에 있다.


t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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