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넘게 공사 중단…균열·지반침하 호소 잇따라

[더팩트ㅣ울릉=김성권 기자] 울릉도 도동의 한 학교 공사 현장.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야 할 곳에는 흙더미와 목재 팔레트, 각종 건설자재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파란 방수포로 덮인 자재와 철거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잔해들이 곳곳에 쌓여 있었고, 공사장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가림막 일부는 훼손된 채 방치돼 있었다.
한때 학생들이 뛰놀았을 학교 터는 지금 공사가 멈춘 채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134억 원을 투입해 '미래학교'로 탈바꿈시키려던 울릉초등학교가 1년 넘게 공사 중단이라는 뜻밖의 상황에 놓였다.
올해 개교 118주년을 맞은 울릉초등학교 현장을 찾은 31일. 학교 주변 골목과 주택가 곳곳에서는 균열과 지반 침하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학교 공사장과 맞닿은 곳에서는 오래된 담장 일부가 갈라져 있었고, 도로 곳곳에도 균열이 이어졌다.
인근 주민들이 지목하는 문제는 단순히 '오래된 시설'에만 있지 않았다.
"공사를 시작한 뒤부터 불안합니다. 담장에도 금이 가고 도로도 갈라졌습니다."
주민들의 목소리에는 불안과 함께 답답함이 묻어났다.

◇134억 '미래학교'…멈춘 현장
울릉초등학교는 교육부의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 대상 학교로 2021년 선정됐다.
노후 학교시설을 미래형 교육공간으로 바꾸고 디지털 기반 교육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사업이다.
울릉초에는 총 134억 원이 투입된다.
기존 건물 가운데 건축 후 40년이 넘은 교사동 2개 동을 철거하고,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지하 1층·지상 3층, 연면적 2861.57㎡ 규모의 새로운 교육시설을 짓는 계획이었다.
공사는 2024년 3월 시작돼 2026년 2월 완공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새 건물의 모습을 갖춰야 할 학교는 여전히 공사장에 머물러 있다.
최근 준공된 다목적실 '꿈나루관'과 급식동 등은 철거 대상에서 제외됐다. 40년이 넘지 않은 시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학생들이 사용하던 오래된 교실동을 먼저 철거했지만, 신축 공사는 멈췄다.

◇"벽에 금이 갔다"…학교 주변 주민들의 호소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인근 주민들의 불안도 커졌다.
울릉초 인근 A교회 측은 2024년 7월 초 교회 주변에서 지반 침하와 건물 균열 등을 발견한 뒤 여러 차례 안전 점검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지난해 3월에는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까지 제기했다.
학교 신축을 위한 철거와 터파기 등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발생한 진동과 소음, 분진 등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도 이어졌다.
한 주민은 기자에게 갈라진 담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개인이 공사를 하는 현장도 이렇게까지 방치하지는 않을 겁니다. 관에서 하는 공사 현장이 이렇게 관리돼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실제 현장 주변에서는 담장과 벽면의 균열이 곳곳에서 확인됐다.
도로에도 길게 이어진 균열과 보수 흔적이 보였다.
다만 이러한 균열과 지반 침하가 학교 공사로 직접 발생했는지는 별도의 안전 진단과 조사 등을 통해 확인할 사안이다.
주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명확하다.
"원인이 무엇인지라도 제대로 밝혀달라"는 것이다.

◇"소음·진동·분진에 시달렸는데 사과 한마디 없었다"
주민들의 불만은 안전 문제에만 머물지 않았다.
철거 작업 등이 진행되는 동안 발생한 소음과 진동, 분진으로 생활에 불편을 겪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 주민은 "공사 과정에서 상당한 소음과 진동, 먼지를 감수했지만 교육당국이나 시공사 측으로부터 제대로 된 설명이나 사과를 받지 못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공사가 중단된 지금도 불편은 계속되고 있다.
공사 현장에 남겨진 자재와 흙더미, 각종 폐기물로 보이는 물건들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면 흙과 먼지가 인근 주택가로 날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특히 외부에서 공사 현장이 보이지 않도록 설치했던 가림막 일부가 훼손되면서 현장의 흉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134억 원짜리 미래학교 공사 현장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멈춰버린 공사장'으로 기억되고 있는 셈이다.

◇아이들은 1년 넘게 '폐교'에서 수업
가장 큰 피해를 호소하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들이다. 울릉초등학교 전교생은 84명. 여기에 유치원생 6명까지 포함하면 90명의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 임시 교육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현재 학생들은 폐교된 구 울릉중학교에서 임시수업을 받고 있다.
학교가 미래형 교육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시작한 공사로 인해 학생들이 임시교실로 장기간 내몰린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학부모 B씨는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폐교된 학교에서 1년 넘게 수업을 하고 있는데 제대로 된 교육이 되겠습니까."
아이들에게는 1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새 학교에서 공부할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기존 교실을 떠났지만, 기다리던 새 학교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공사 지연으로 인해 시공업체 역시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차라리 학교를 군이 사들이자" 목소리도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주민들 사이에서는 학교 부지의 활용 방안을 전면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차라리 울릉군이 학교 부지를 매입해 군청사나 공공시설을 건립하고 지하주차장 등을 조성하는 것이 더 실용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학생들이 임시로 사용하고 있는 구 울릉중학교를 리모델링해 교육시설로 활용하는 방안이 경제적으로 낫다는 의견도 나온다.
물론 학교 신축사업의 목적과 교육시설 확보라는 본래 취지를 고려하면 단순 비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134억 원을 투입한 사업이 장기간 멈춰 있고 학생들이 임시시설에서 수업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지역사회에서 이런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교육당국 "공사중지명령 해지…곧 재개"
울릉교육지원청은 공사 재개를 준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울릉교육지원청 관계자는 31일 "지난 27일 공사중지명령이 해지돼 곧 공사를 재개할 예정"이라며 "공사 현장을 관리·감독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현장 관리 소홀로 주민들에게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말했다.
멈춰 있던 공사가 다시 시작되면 이제 남은 것은 안전과 속도다.
무엇보다 학교 주변 주민들이 제기한 균열과 지반 침하 문제에 대해 객관적인 점검과 설명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사를 빨리 끝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118년 역사, 이제는 '미래' 보여줘야
울릉초등학교의 역사는 19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30명의 관어학교로 출발한 학교는 올해로 개교 118주년을 맞았다.
한 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울릉도의 아이들이 이곳에서 배우고 자랐다.
그런 역사 깊은 학교가 지금은 공사장 한복판에 서 있다.
철거된 교실 자리에는 흙더미가 남았고, 새 학교를 만들기 위해 들어온 자재들은 공사가 멈추면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은 폐교된 학교에서 수업하고, 주민들은 갈라진 담장과 도로를 바라보며 불안해한다.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라는 이름과 지금의 현장 모습 사이에는 너무 큰 간극이 있다. 134억 원이 투입되는 사업의 최종 목적은 새 건물을 하나 짓는 데 있지 않다. 아이들이 더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지역 주민들도 공사를 믿고 지켜볼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118년 역사의 울릉초등학교가 다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이제 더 이상의 기다림이 없어야 한다.
멈춰 있던 공사가 다시 시작되는 지금, 울릉초등학교의 진짜 시험대는 '완공'이 아니라 '안전하고 제대로 된 학교'를 만드는 데 있다.
t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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