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정착을 넘어 관광객 1000만을 꿈꾸는 '역사마을 1번지'

[더팩트 l 전남광주=김영신 기자] 키릴 문자가 적힌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중앙아시아 전통빵 리뾰시카와 샤슬릭을 파는 가게, 전통의상을 대여하는 상점들이 골목을 채우고 있다. 거리에서는 고려인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러시아말로 대화를 한다.
전남광주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이곳은 100년 이상 유랑의 역사를 이어온 고려인 동포들에게는 이제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광복 81주년을 이틀 앞둔 13일 <더팩트> 전남·광주취재본부가 '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을 찾았다.
고려인 마을의 역사는 2001년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3세 신조야 씨가 광주에 정착하고, 당시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던 이천영 목사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처음 몇 가구에서 출발한 마을은 이제 고려인 1세부터 4세까지 7000여 명이 살아가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고려인 공동체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매달 30여 명의 고려인들이 정착을 희망하며 이곳으로 오고 있다.
그 중심에는 고려인마을 이천영 이사장과 신조야 대표가 있다.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세 가구에서 시작된 고려인마을

고려인마을의 출발은 거창한 도시계획이나 관광개발 사업이 아니었다.
한국에 돌아온 고려인 동포들이 겪는 임금체불, 언어 장벽, 체류 문제, 주거와 의료의 어려움을 누군가는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시작됐다.
2001년 한국에 들어온 신 대표는 불법체류자로 있던 중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며 어려운 이들을 돌보던 이 이사장을 만났다.
누구보다 그 어려움을 알고 있던 신 대표는 이 이사장과 함께 어려운 고려인 동포들을 돕는 일에 뛰어들었다.
이렇게 만난 두 사람의 인연과 노력은 광주 월곡동을 국내 최대의 고려인마을 공동체로 만들었다.
동포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광주에 가면 고려인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가 중앙아시아와 국내 곳곳으로 번졌고, 고려인들이 하나 둘 월곡동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신 대표는 이후 사비까지 들여 지원센터를 마련하고 숙식과 일자리, 통역, 체류 문제 등을 돕기 시작했다. 고려인마을이 지금의 자치형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생활밀착형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2월 광주를 찾은 재외동포청장도 고려인마을을 '귀환 동포의 모범적인 정착 사례'로 평가했다고 한다.
◇하루 100여 명이 함께 먹는 밥상…"밥이 곧 정착"

고려인종합지원센터는 말 그대로 고려인 마을의 중심축이다.
13일 센터 지하에서 봉사단의 흥겨운 공연을 즐긴 주민들이 점심시간이 되자 1층에 마련된 식탁으로 모여들었다.
고려인마을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무료급식 프로그램 '사랑의 식탁'이다.
주방에서는 신 대표와 주민들이 음식 준비에 쉴 틈이 없었다. 어느새 마카로니 요리와 애호박찌개 등 중앙아시아 음식과 한국 음식이 한상 가득 차려졌다.
매일 이곳에서 식사를 하는 주민들은 100여 명. 주로 고려인 마을 1세 어르신들이다.
신 대표는 한 사람이라도 놓칠세라 주방과 식탁을 오가며 사람들을 의자에 앉히며 챙긴다. 단순한 식사 제공을 넘어 어르신들의 정서적 돌봄과 복지 안전망 역할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신 대표는 "한국에 온 고려인들이 단순히 머무는 곳이 아니라 일자리를 얻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아프면 치료받고, 노년에는 돌봄을 받을 수 있어야 진짜 정착"이라고 말했다.
◇정착을 넘어 '역사문화관광지'로

광주 고려인마을에는 고려인종합지원센터를 비롯해 고려인문화관 '결', 고려방송, 어린이집, 지역아동센터, 노인복지센터, 진료소, 중등 교육기관 새날학교 등 다양한 기관과 단체가 들어서 있다. 상담·복지·미디어·교육·의료 등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인건비 등 지자체의 일부 지원을 받는 고려방송은 국내를 넘어 해외 고려인 사회와도 소통한다. 고려인마을의 자치형 공동체 시스템은 문화와 복지, 교육과 의료를 한 곳에서 연결하는 독특한 모델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고려인 광주진료소에서는 지역 약사와 약학대학생들이 매주 의료봉사를 이어가며 의료 사각지대를 메우고 있다.
고려인마을의 변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 이사장은 "이 많은 기관을 유지하고 이 큰 공동체가 잘 굴러가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며 "정착 공동체를 넘어 1000만 관광객을 불러오는 고려인마을을 만드는 것이 신 대표와 저의 꿈"이라고 말했다.

홍범도공원을 지나 고려인문화관, 고려인특화거리, 중앙아시아 테마거리, 문빅토르미술관 등을 따라 걷다 보면 고려인들의 연해주 이주와 항일독립운동, 1937년 강제이주, 중앙아시아 정착, 대한민국 귀환으로 이어지는 160년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
2024년부터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골목 곳곳에 고려인들의 역사를 담은 벽화와 조형물이 들어섰고, 광산구는 2025년부터 전문 해설사와 함께하는 '고려인마을 골목여행'을 운영하고 있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역사문화 골목여행 등 체험형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지난 3월에는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예술을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상설 문화공간 '문빅토르미술관'이 확장 이전, 새로운 전시 공간이 마련됐다.
문빅토르 화백은 고려인 3세다.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난 그는 고골 알마티 미술대학에서 공부하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미술 활동을 시작했다. 주로 고려인들의 역사, 문화, 인물 등을 작품에 담고 있으며, 카자흐스탄 대통령궁과 국립미술관을 비롯해 미국·독일·영국·프랑스·이집트 등 전 세계에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고려인마을 문빅토르미술관에는 그의 대표작 '홍범도 장군', '우수리스크 나의 할아버지', '1937 고려인 강제 이주열차'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 이사장은 "문빅토르 화백의 작품에는 강제이주와 망향, 독립운동, 귀환이라는 고려인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고려인의 역사가 예술 속에서 어떻게 살아나는지 알 수 있다"고 소개했다.
문빅토르 화백의 작품에는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겪어온 굴곡진 삶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작품도 있다.
이 이사장은 "친일한 사람들의 후손들은 대대손손 잘 먹고 잘 사는데, 나라 찾겠다고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의 후손은 긴 세월 가난과 유랑을 견뎌야 했다"며 "고려인마을을 역사관광지로 만드려는 이유는 그런 역사를 기억하고 알리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신 대표와 이 이사장은 "고려인마을이 문화와 역사 자원을 활용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주민들의 안정적인 일자리까지 만들어내는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두 사람의 바람대로 고려인마을의 역사, 문화, 관광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차츰 입소문을 타면서 현장을 찾는 관광객 뿐 아니라 온라인 방문자수도 늘고 있다.
지난 2024년에 열린 '광산 세계야시장'에는 3만여 명이 방문했고, 고려인마을을 찾는 학교와 기관, 역사교육 탐방객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주말 등 휴일이면 많게는 가족단위 10팀, 단체는 200여 명 가까이 이곳을 찾아온다.
2026년 1월부터 7월까지 고려인마을 홈페이지에 접속한 누적 방문자수는 5067만 3615명이다.
◇학교가 있어야 아이들이 이곳을 고향으로 생각

고려인마을의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바로 이 이사장이 교장으로 있는 '새날학교'다.
이 이사장은 교육을 고려인 정착의 핵심으로 꼽는다. 그는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사회의 제도와 문화를 익히는 동시에 자신의 고려인 정체성도 잃지 않도록 돕는 것이 학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새날학교는 공교육 접근이 어려운 고려인 동포 자녀와 중도입국 청소년을 위해 2007년에 세운 공동체형 대안학교로, 2011년 광주시교육청 인가를 받아 학력 인정 대안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2007년 개교 이후 지금까지 약 5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졸업생 가운데는 최근 한국외국어대학교 등 국내 대학으로 진학한 학생도 있고, 광주 인근 산업단지에 취업해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학생들도 있다.
고려인마을이 단순히 '어른들이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성장하는 공동체가 되고 있다는 의미다.
◇신조야 대표의 25년 헌신
신 대표에게 고려인마을은 단순한 정착민 거주지가 아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돌아와 뿌리내릴 수 있는 '고향'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에 가깝다. 신 대표는 2001년 한국에 들어온 뒤 수 많은 고려인들의 삶을 지켜봤다. 비자 문제로 발이 묶인 사람, 일자리를 잃은 사람, 임금을 받지 못한 사람, 언어가 서툴러 병원조차 제대로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래서 지금도 센터에 찾아오는 사람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다. 그들이 외국인등록증을 받으려면 신 대표의 도움이 없이는 어렵다.
고려인마을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 전쟁터를 빠져나온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이 한국으로 올 수 있도록 도왔다. 당시 고려인마을은 항공료 지원 등을 통해 수백 명의 우크라이나 고려인의 입국을 도왔고, 900여 명의 고려인이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신 대표가 지금도 강조하는 것은 '고려인의 고향 만들기'다. 그리고 그 고향은 과거에 머무는 공간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신 대표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고, 어르신들이 밥을 먹고, 환자는 치료를 받고, 새로 들어온 사람은 체류와 일자리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관광객은 고려인의 역사를 배우고 돌아가는 살아 있는 마을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 대표의 꿈은 고려인마을을 '역사마을 1번지'로 만들고, 궁극적으로 관광객 1000만 시대를 열어가는 것이다.
◇광복 81주년, 고려인마을에서 살아나는 홍범도 장군

광복 81주년, 매년 8월 15일이면 월곡동 고려인마을은 독립운동의 현장으로 변한다.
고려인마을은 15일 홍범도공원 일원에서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와 함께 봉오동전투 재현 행사를 연다. 물총을 든 참가자들이 일본군 역할의 참가자들과 맞서는 방식으로, 1920년 홍범도 장군이 이끈 독립군의 봉오동전투를 되새겨본다.
홍범도 장군을 비롯해 고려인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독립운동의 역사를 미래세대가 기억하도록 하는 행사로, 이번 행사에는 문빅토르 화백과 아동문학가 홍종의 작가가 함께 만든 그림동화 '고려아리랑' 원화전과 사인회도 함께 열린다.
◇유랑의 끝에서 다시 만난 고향, 역사와 나눔이 살아있는 '고려인마을'

고려인마을 골목을 천천히 걸어본다.
나무그늘 아래에 삼삼오오 앉아서 러시아어로 대화하는 사람들, 아이들은 홍범도 장군의 이름을 딴 어린이공원에서 뛰어논다.
센터에서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한 끼가 건네지고, 고려방송에서는 러시아어 방송이 흘러나온다. 문화관에서는 디아스포라 고려인 160년의 역사가 전시되고, 미술관에서는 강제이주와 망향의 역사가 그림으로 되살아난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고려인의 다음 세대가 한국어를 배우며 미래를 준비한다.
25년 전 단 몇 가구에서 시작된 작은 정착지는 이제 7000여 명이 살아가는 전국 최고의 고려인 공동체가 됐다. 정착을 넘어 교육과 복지, 문화와 예술, 역사와 관광이 결합한 새로운 마을로 진화하고 있다.
연해주에서 독립을 외쳤던 사람들, 1937년 강제이주 열차에 올랐던 사람들, 중앙아시아 황무지에서 다시 삶을 일궜던 사람들, 그리고 이제 대한민국 광주 월곡동에 돌아와 뿌리를 내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늘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랑의 끝에서 다시 찾은 고향 '광주 고려인마을'은 그 긴 역사가 현재형으로 살아 있다.
이 이사장은 13일 행사를 앞두고 마을 곳곳을 살폈다. 홍범도공원에서 킥보드를 타는 아이들을 만난 이 이사장이 러시아말로 장난스럽게 말을 걸더니 이내 '개다리춤'을 춘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다니는 학교의 교장선생님, 이 이사장의 이런 모습이 이미 익숙한 듯 웃으면서 함께 맞장구를 친다.
광주 월곡동 고려인마을은 거창한 구호보다는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며 만들어 가는 따뜻한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bbb250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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