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부산=손연우 기자] 부산 기장군 이장협의회가 원전 현안 공유를 명분으로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에 2700여만 원 규모의 워크숍 비용을 요청한 뒤 지원받은 예산의 90% 이상을 식사와 기념품 구입에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민과 행정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은 이장협의회가 원전 현안을 앞세워 사실상 자체 행사 비용을 공기업에 부담시킨 것을 두고 역할과 책임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15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기장군 이장협의회는 지난달 30일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에 '기장군 이장협의회 워크숍 관련 지원 요청' 공문을 보내 행사 장소 대관료와 식대, 기념품 구입비 등을 지원해 달라고 했다.
협의회 측은 행사 목적을 '계속운전 및 건식저장과 관련한 주요 현안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상호 의견을 공유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고리 2·3·4호기 계속운전과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등 지역 최대 현안을 내세워 행사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더팩트>가 확보한 행사 일정표에는 계속운전이나 건식저장시설 등 원전 현안을 다루는 별도 교육이나 토론 프로그램은 포함되지 않았다.
실제 워크숍에서는 웃음치료사의 '리·반장 리더 인성교육'이 약 50분간 진행됐으며 이후 일정은 참석자 소개와 점심식사, 자유시간 등으로 채워졌다.
행사는 지난 10일 기장군 일광읍의 한 한정식 식당에서 열렸다. 기장군 5개 읍·면 188개 마을의 이장 160여 명을 비롯해 읍·면장과 시·군의원 등 약 200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원전 관련 설명은 행사 시작 직후 1분 정도 언급된 것이 전부였으며, 별도의 질의응답이나 주민 의견 수렴도 이뤄지지 않았다.
공문에 첨부된 예산안을 보면 장소 대관료 100만 원, 강사료 100만 원, 식대 800만 원, 기념품 구입비 1738만 원, 예비비 262만 원 등 총 2738만 원이 편성됐다. 기념품은 개당 7만 9000원 상당의 믹서기 220개를 지급하는 내용으로, 식대와 기념품 비용만 전체 예산의 90%가 넘는 2538만 원에 달했다.
이장은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따라 위촉돼 주민 의견을 행정기관에 전달하고 행정시책을 홍보하는 등 행정의 최일선에서 주민과 행정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특정 기관이나 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조직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의견을 공정하게 전달하는 것이 본래 역할인 만큼 원전 현안을 명분으로 공기업에 식대와 기념품이 포함된 행사 비용을 요청한 것이 이장의 본래 역할에 부합하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고리원자력본부는 계속운전과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추진 과정에서 지역 사회와의 협력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이 때문에 지역 여론 전달 역할을 하는 이장협의회의 요청을 쉽게 거절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에서 이장협의회가 이같은 여건을 활용해 과도한 행사 지원을 요구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다.
한 주민은 "주민 의견을 전달해야 할 이장 조직이 공기업을 상대로 행사 비용을 요구하고 그 예산 대부분이 기념품과 식사에 쓰인 것은 주민들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지원 필요성과 집행의 적정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팩트>는 기장군 이장협의회의 입장을 듣기 위해 회장과 사무국장 등에게 수차례 연락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