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전남광주=최치봉 기자] 광주 여고생 피살 사건에 대한 부실수사와 유착 의혹이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 논란을 다시 지피고 있다.
검찰이 보완수사 과정에서 현직 경찰관인 장윤기의 아버지가 증거물을 훼손하고, 수사 정보가 가해자 측으로 새 나간 사실이 확인되면서다.
당시 광주광산경찰서 수사팀장인 A경감은 초동 수사에서 범행 차량 내 증거를 누락하고 채증 영상을 인멸한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A경감과 당시 수사팀 역시 줄줄이 공무상비밀누설 혐의와 증거인멸 방조 등으로 수사선상에 올라있다. 범인의 아버지가 현직 경찰인 탓에 사적 인연으로 관련 정보를 주고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는 동료 경찰로부터 아들의 자취 집 수소를 알아낸 뒤 방 안에 있던 리얼돌을 파쇄 처리했다. 차 안에 남아 있던 케이블타이도 감췄다. 아들의 형량에 직결된 성 관련 증거물들이다. 강간살인죄로 판결 나면 무기징역과 사형밖에 없다. 살인은 최소 형량이 5년이다. 아버지의 빗나간 부정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이같은 행위는 '사건 조작'이나 다름없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0일 밝혔듯이 검찰이 보완수사를 통해 규명한 내용은 장윤기 차량 추가 압수수색, 범행 현장 화물차 블랙박스 영상 확대, 1년 치 통화 내역 등 무려 11가지다. 수사 자체가 엉망으로 이뤄졌다는 방증이다. 국민들은 일반인에게도 똑같은 수사 원칙을 적용했을지 경찰에 묻고 있다. 공적 영역과 사적 관계가 뒤얽힌 일탈로 경찰 조직 자체가 흔들리는 꼴이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뒤늦게 장윤기 사건에 대해 국민에 사과하고, 경찰 수사 쇄신 전담팀(TF)을 꾸리기로 하는 등 부산을 떨고 있다. 만시지탄이다.
이 사건 뿐이랴. 검찰의 보완수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가 밝혀진 경우는 여럿 있다. 대표적으로 부산 돌려치기 사건은 검찰이 항소심에서 피해자 의류에 대한 DNA 재감정 등 추가 수사를 통해 성폭력 증거를 확보했다. 이어 공소장을 강간살인미수 혐의로 변경해 범행의 실체를 밝혀냈다.
세종시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은 경찰의 수사 단계에서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던 집단 성폭력 사실을 검찰의 보완수사로 실체가 입증됐다. 찾아보면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정치권으로 눈을 돌려보자. 여당은 검찰의 독점적 권력 견제를 명분으로 내세워 수사보완권 폐지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회 법사위에서는 형사소송법 개정을 놓고 갑론을박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규정된 형사소송법 제196조를 아예 없애거나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경찰에 대한 보완수사요구권만 인정할지, 검사가 경찰에 추가 수사를 요구하는 방식만 적용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야당은 "경찰의 수사권 독점을 견제할 검찰의 보완수사권 존치는 당연하다"며 반대하고 있다.
검찰은 오랫동안 수사와 기소를 동시에 수행하며 막강한 권한을 누려왔다. 특히 특수부 영역인 정치인 연루 사건을 놓고는 정권의 입맛에 맞는 답을 얻기 위해 사건을 조작했다는 의혹과 공방이 끊이질 않았다. 윤석열 정부의 계엄과 대통령 탄핵에 이은 정권교체로 그 실체가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급기야 검찰청 폐지와 중대범죄수사청 ,공소청 신설로 검찰의 수사권은 폐지됐다. 검찰이 수사에 개입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인 보완수사권마저 날아갈 위기에 놓였다. 자업자득이다.
이런 와중에 불거진 경찰의 제 식구 감싸기식 수사와 부실한 사건 처리는 '검경수사권 조정' 자체를 불신에 빠뜨리는 상황을 만들었다.
전체 사건의 1~2%에 불과한 '정치적 사건' 때문에 민생과 관련된 나머지 형사사건도 불신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정치적 사건과 형사사건을 분리해 보완수사권을 적용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또다른 사람은 검찰이 스스로 무덤을 팠듯이 경찰도 이번 장윤기 사건에서처럼 또다른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만큼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이런 사건이 누적된다면 잠재적 피해자인 국민들의 보완수사권 부활 요구가 다시 나올 거란 전망에서다. 설득력 있는 말이다.
그리고 법과 제도는 살아 움직인다. 국민들 마음도 늘 변하고, 정권도 한없이 이어질 수 없다. 다만 경찰의 실수 누적으로 보완수사권 재개 요구와 관련법 재개정 여론이 일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 발생하는 국민 피해는 누가 보상해주느냐이다. 피의자, 피해자의 입장은 늘 맞서게 마련이다.
장윤기가 강간살인죄로 또는 단순 살인죄로 처발받느냐는 피해자 측에서 보면 하늘과 땅 차이다. 아버지의 일그러진 '부정'이 피해 유가족을 두 번 죽이는 꼴이다. 오죽했으면 유족인 이채원 양의 어머니가 "경찰은 살인자의 편인가"라며 절규했겠는가. 정확한 수사와 물증을 통한 죄형법정주의와 사법 정의 실현이 보완수사권 폐지 여부에 앞서 논의돼야 할 지금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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