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희생자 고 박찬길 검사 유족, 국가 상대 손배소…78년 만에 국가책임 묻는다
  • 김영신 기자
  • 입력: 2026.07.07 10:25 / 수정: 2026.07.07 10:25
'적구 검사' 누명 쓰고 재판 없이 총살…정부, 지난 4월 희생자 공식 인정
서동용 변호사와 임송본 여순사건 중앙위원이 지난 6월 29일 순천시 북초등학교에서 고(故) 박찬길 검사의 유족 박경진 목사를 만나 당시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고(故) 박찬길 검사는 재판 없이 이곳에서 총살당했다. 왼쪽부터 서동용 변호사, 임송본 위원, 박경진 목사. /서동용 변호사
서동용 변호사와 임송본 여순사건 중앙위원이 지난 6월 29일 순천시 북초등학교에서 고(故) 박찬길 검사의 유족 박경진 목사를 만나 당시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고(故) 박찬길 검사는 재판 없이 이곳에서 총살당했다. 왼쪽부터 서동용 변호사, 임송본 위원, 박경진 목사. /서동용 변호사

[더팩트 l 순천=김영신 기자] 여순사건 당시 경찰의 혐의 조작으로 재판 없이 총살된 고(故) 박찬길 검사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7일 유족 측 법률대리인인 서동용 변호사에 따르면 앞서 정부는 지난 4월 10일 고(故) 박찬길 검사와 부친 고(故) 박인서 씨를 여순사건 희생자로 공식 결정했다. 사건 발생 78년 만에 국가가 희생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황해도 출신인 박 검사는 1947년 광주지검 순천지청 차석 검사로 근무하며 경찰의 권한 남용과 민간인에 대한 과도한 처벌을 바로잡는 데 앞장섰다. 증거가 부족한 사건은 무혐의 처분하고,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에는 엄정하게 대응했다.

특히 민간인을 사살한 경찰관을 살인죄로 기소해 징역 10년을 구형하면서 순천 경찰의 반발을 샀고, 경찰은 박 검사를 '적구(赤狗·붉은 개) 검사'로 상부에 보고하며 좌익 인사로 몰았다.

1948년 여순사건 발발 이후 박 검사는 부친과 함께 피신했지만 경찰에 체포됐고, 부친 박인서 씨는 경찰서에서 고문 끝에 숨졌다. 박 검사는 '인민재판장'이었다는 허위 혐의를 뒤집어쓴 채 정식 재판도 받지 못하고 순천북초등학교 교정에서 총살됐다.

이듬해인 1949년 법무부 조사와 국회 기록을 통해 박 검사가 인민재판에 관여하지 않았고 경찰의 혐의 제기가 허위였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합동수사본부는 학살을 주도한 인물로 제8관구 경찰청 부청장 최천을 지목했지만 경찰 조직의 반발로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유족들은 이번 소송을 통해 국가의 공식 사과와 실질적인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박 검사의 차남 박경진 목사는 "국가가 희생 사실을 인정한 것은 의미 있는 첫걸음이지만 가족들이 수십 년간 겪은 통한과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다"며 "국가가 책임을 분명히 인정하고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동용 변호사는 "현직 검사마저 근거 없는 '빨갱이' 누명으로 재판 없이 학살된 사건"이라며 "국가폭력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정당한 배상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은 정부가 여순사건 희생자로 공식 인정한 현직 검사 사건에 대해 국가배상을 청구한 첫 사례로, 향후 여순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 책임 인정과 배상 범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bbb250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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