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로만 남은 전쟁, 그 안의 또 다른 역사'…이광희 '항복하지 않은 성' 출간
  • 정예준 기자
  • 입력: 2026.04.15 16:51 / 수정: 2026.04.15 16:51
정묘호란 속 용골산성 항전 재조명
민초의 시선으로 복원한 '저항의 역사'
소설가 이광희 장편 역사소설 항복하지 않은 성 표지. /이광희 소설가
소설가 이광희 장편 역사소설 '항복하지 않은 성' 표지. /이광희 소설가

[더팩트ㅣ대전=정예준 기자] 대전의 소설가 이광희가 15일 장편 역사소설 '항복하지 않은 성'을 출간했다. 작품은 조선 중기 전란인 정묘호란을 배경으로, 용골산성을 끝까지 지켜낸 의병장 정봉수의 항전을 중심에 두고 전개된다.

정묘호란은 오랫동안 '항복의 역사'로 기억돼 왔다. 후금의 침공 앞에서 조정은 강화도로 피신했고, 결국 굴욕적인 화의를 선택하며 전쟁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 같은 역사 인식의 이면에는 끝까지 무너지지 않은 공간과, 물러서지 않은 사람들이 존재했다. 작품은 바로 그 '기억되지 않은 역사'에 시선을 돌린다.

이 소설의 핵심 무대인 용골산성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을 넘어, 국가가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저항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성 안으로 모여든 피난민과 백성들은 생존을 위해 무기를 들고, 점차 하나의 공동체이자 전투 집단으로 변화해 간다. 작가는 이 과정을 통해 전쟁의 주체를 왕과 조정이 아닌 ‘민초’로 옮겨놓는다.

작품은 조선왕조실록 등 사료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단순한 전투 기록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백성들이 어떻게 조직되고 훈련되며 전투력을 갖추게 되는지를 입체적으로 그려낸 점이 특징이다. 특히 농기구를 내려놓고 무기를 든 이들이 서로를 믿고 결속해 가는 과정은 이 작품의 서사를 지탱하는 핵심 축이다.

정봉수의 리더십도 주요하게 조명된다. 그는 기존 군 체계에 의존하지 않고 흩어진 백성들을 모아 훈련시키고, 낙후된 산성을 전략적 요새로 재편한다. 권력이나 신분이 아닌 선택과 책임을 통해 공동체를 이끄는 인물로 그려지며, 위기 속에서 실질적인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보여준다.

서사는 전란의 흐름과 맞물려 긴장감을 더해간다. 후금의 침공과 조정의 항복, 그리고 의병 결성과 항전이 교차하며 이어지고, 용골산성은 고립된 상황 속에서도 수차례 공격을 버텨낸다. 그러나 끝내 무너지지 않았던 성 역시 조정의 명령으로 비워지게 되는 장면에서, 작품은 ‘무엇이 승리이고 패배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은 역사적 공백을 메운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삼전도의 굴욕'으로 널리 알려진 병자호란과 달리, 정묘호란은 상대적으로 대중적 인식에서 비켜나 있었다. '항복하지 않은 성'은 이러한 공백 속에서 저항의 서사를 복원하며, 패배의 역사 속에서도 존재했던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추천사를 통해 "이 작품은 한 장수의 항전을 넘어 민족의 자존을 일깨운다"며 "국가의 힘은 결국 국민의 용기와 신념에서 비롯된다"고 평가했다.

이광희 작가는 그동안 역사 속에서 이름 없이 사라진 민초들의 삶을 조명해 온 작가다. '붉은 새', '청동물고기', '대호지 아리랑' 등에서도 사건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서사를 구축해 왔으며, 이번 작품 역시 그러한 문제의식을 이어간다.

출판계에서는 2027년 정묘호란 400주년을 앞두고 관련 역사와 서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번 작품이 대중적 재조명과 학술적 논의의 계기를 동시에 마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tfcc2024@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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