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대전=정예준 기자] 대전·충남 행정통합 논의는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충남대전통합특별시 설치 및 경제과학중심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안' 발의 이후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수도권 집중에 대응해 광역 단위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자체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통합의 필요성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이다.
지금의 논의는 공감대를 넓히기보다 오히려 사회적·지역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행정통합이 시민들에게 체감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행정 체계 개편이라는 추상적 언어만 오갈 뿐, 통합 이후 교통·복지·의료·교육 등 일상이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한 구체적 그림은 좀처럼 제시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통합은 시민의 선택이 아니라 '위에서 내려오는 결정'으로 인식되기 쉽다.
지난 6일 대전시청에서 열린 대전·충남 행정통합 타운홀 미팅에서도 이런 인식은 확인됐다. 현장에서는 통합에 대한 기대보다 추진 속도와 절차에 대한 불신, 시민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통합의 효과를 묻는 말보다 '과정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더 많았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의 최근 발언은 이런 분위기를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그는 대통령의 행정통합 추진 의지를 전하며 "지금이 골든타임이고 지방선거 이전에 결론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나 국회가 수용할 수 없는 부분은 이해해달라"고 덧붙였다.
속도를 주문하면서도 기준과 결정권은 중앙에 있음을 분명히 한 메시지로 읽힌다. 더 나아가 시·도지사와 국회의 입장이 조정되지 않으면 통합이 무산될 수 있다는 언급은 성과와 책임의 비대칭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압박 속에서 시민의 동의는 필수 조건이 아니라 부차적 절차로 밀려나기 쉽다.
자녀를 둔 부모들의 불안과 불만은 더욱 크다. 교육 행정의 관할, 학군 체계, 교육 재정 배분이 통합 이후 어떻게 달라질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부모들은 자녀의 교육 환경이 예측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이는 과도한 걱정이 아니라 생활인으로서 충분히 합리적인 질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 제기가 '소수의 불만'으로 치부되며 논의의 중심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가장 민감하고 체감도가 높은 교육 문제는 통합 논의의 주변부로 밀려나 있다.
정부가 향후 4년간 최대 20조 원 규모의 재정 지원을 약속했지만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하고 있다. 재원의 배분 기준과 우선 투자 분야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상황에서 거액의 숫자는 설득의 근거가 되기보다 오히려 현실감 없는 구호로 남는다.
정치권의 모습 역시 불신을 키운다. 통합의 실질적 설계보다 주도권 경쟁과 입장 차이만 반복되면서 논의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정치권은 통합의 장점을 강조하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그래서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돌아오는 답변이 구체성을 갖지 못할수록 피로감은 누적될 수밖에 없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찬반의 팽팽한 구도는 이를 방증한다. 이는 통합 자체에 대한 거부라기보다, 과정과 내용에 대한 불신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신호로 읽혀야 한다.
행정통합은 서둘러 완성해야 할 행정 과제가 아니라 충분히 납득돼야 할 사회적 선택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추진이 아니라 갈등을 직시하고 줄이기 위한 노력이다.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하는 숙의의 장을 마련하고, 통합 이후의 변화가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갈등을 비용으로 치부한 채 밀어붙이는 통합은 지속될 수 없다. 진정한 통합을 원한다면 지금은 속도보다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데 집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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