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를 뽑은 도시"…자연으로 치유·관광도시 설계한 '순천'
  • 고병채 기자
  • 입력: 2025.12.17 11:49 / 수정: 2025.12.17 11:49
전봇대 철거·국가해양정원·치유관광 정책
보전이 전략이 된 2025년 순천의 변화
전남 순천만습지 일대 남파랑길을 걷는 사람들. /순천시
전남 순천만습지 일대 '남파랑길'을 걷는 사람들. /순천시

[더팩트ㅣ순천=고병채 기자] 해 질 무렵, 순천만 습지 위로 흑두루미가 천천히 날아오른다. 강가를 따라 산책하는 시민과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가족, 여행객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겹친다. 한때 '관광지'로 불리던 공간은 이제 순천 시민의 일상이자 도시의 풍경이 됐다.

전남 순천시는 2025년을 기점으로 관광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관광을 단순한 '볼거리'가 아닌, 도시의 삶과 구조를 바꾸는 정책으로 끌어올렸다. 자연을 지키는 선택이 도시 경쟁력이 되고, 치유가 도시 전략으로 자리 잡으며 여행은 특정 공간이 아닌 도시 전체로 확장됐다.

순천 관광 정책의 핵심은 단기 방문객 증가가 아니다. 자연·치유·일상이 흐르는 도시 구조로의 전환이다.

순천의 변화는 개발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시민과 함께 자연을 지켜온 과정이 곧 정책이 됐고, 산업으로 이어졌다. 흑두루미의 안전한 이동을 위해 전봇대를 철거하고, 습지를 보전하며, 농경지 이용 방식까지 조정해온 순천의 선택은 이제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순천시는 2009년부터 흑두루미 주요 이동 경로를 중심으로 전봇대를 단계적으로 철거해왔다. 도시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훼손하는 대신, 자연을 기준으로 도시 구조를 다시 설계한 것이다. 이 정책은 환경 보호를 넘어 '보전이 곧 경쟁력이 되는 도시 모델'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 결과 순천은 대한민국 제1호 국가정원과 순천만 국가해양생태공원, 세계자연유산이라는 생태 자산을 동시에 갖춘 도시로 성장했다. 순천은 보존이 도시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2025년 순천 관광 정책의 또 다른 축은 '치유관광'이다. 순천은 갯벌·정원·강·숲·사찰 등 자연 기반 자원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 특정 시설 중심이 아닌 도시 전체를 치유 공간으로 확장하는 전략을 본격화했다.

그 중심에는 '갯벌치유관광플랫폼'이 있다. 순천만의 자연 치유 자원을 기반으로 국가정원과 동천, 산림, 원도심을 잇는 거점으로 조성되며, 순천 전역을 하나의 치유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있다.

순천의 치유 전략은 단일 시설이나 프로그램에 머무르지 않는다. 숙박과 미식, 걷기와 명상, 문화 경험을 도시 생활권과 자연스럽게 결합한 '도시형 치유 산업 구조'로 확장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순천시는 최근 발표된 '한국 건강지수(Korea Health Index)'에서 전국 252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14위, 호남권 1위를 기록했다. 자연 보전과 생활 건강 인프라, 시민 삶의 질 개선 노력이 객관적인 지표로 입증된 셈이다.

순천시민들과 관람객들이 2025 순천 푸드앤아트페스티벌 길거리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순천시
순천시민들과 관람객들이 2025 순천 푸드앤아트페스티벌 길거리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순천시

여행의 모습도 달라졌다. 2025년 순천의 여행은 특정 관광지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 전반으로 스며들었다. 미식주간과 미식대첩은 '맛으로 기억되는 도시' 이미지를 강화했고, 비어페스타와 푸드앤아트페스티벌은 원도심 상권과 지역 경제에 실질적인 활력을 더했다.

반려동물 동반 관광 프로그램인 '댕댕트레인'과 ‘댕댕순천’은 순천을 반려동물과 함께 여행하기 좋은 도시로 변화시켰다. 남파랑길 씨워킹, 사운드 순천, 흑두루미 탐조여행, 동천 수변 산책, 국가정원 치유 산책 프로그램은 자연 기반 치유형 여행을 도시 일상 속으로 끌어들였다.

2025년 순천은 국제 무대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국내 기초자치단체 최초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가입하며 '국제 생태도시'로 공식 진입했다. 동시에 마을호스트와 상인, 문화관광해설사, 주민이 직접 여행의 주체가 되는 시민 참여형 로컬 관광 생태계도 본격적으로 구축되고 있다.

순천의 관광은 더 이상 관광객만을 위한 산업이 아니다. 시민의 삶과 함께 움직이며 도시의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있다.

2025년의 변화는 완성된 결론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순천시는 치유형·자연형·체류형 관광을 축으로, 단순히 찾아오는 도시가 아닌 머물며 회복하고 다시 돌아오는 도시로의 전환을 이어갈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순천은 자연을 지켜서 여기까지 왔다"며 "이제는 그 자연이 사람을 치유하고 도시의 미래를 이끄는 기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치유는 특정 시설 하나로 끝나는 사업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삶의 방식"이라며 "자연과 사람이 함께 회복하며 성장하는 도시를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kde320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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