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여수=고병채 기자] 전남 청년 예술가의 정착과 로컬 문화 실험이 어우러진 전시가 열려 지역 기반 창작 생태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김효지 작가의 첫 개인전 '우주를, 바다를-담다, 닮다' 개막식이 지난 13일 오후 여수의 원도심 100년 고택을 리모델링한 복합문화공간 '낭만배울학교 쉬어家'에서 열렸다.
개막식에는 서울과 수도권을 비롯해 광주·순천·통영 등 전국 각지에서 방문한 청년과 중장년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전시 개막과 함께 열린 행사는 단순한 전시를 넘어 지역으로 돌아온 청년 창작자와 이를 품는 로컬 공간의 실험을 현장에서 확인하는 자리로 평가됐다.

공간 운영을 맡고 있는 조영주 지역문화콘텐츠연구소 소장은 환영 인사를 통해 "낭만배울학교를 운영하며 가장 큰 보람은 청년들이 다시 이 공간으로 모이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여수가 머무는 도시, 돌아오고 싶은 도시가 되기 위해 문화와 사람이 지속적으로 만나는 공간을 지켜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 개인의 성과를 넘어 청년 정착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김효지 작가와 전시를 함께 기획한 김온정 큐레이터 자매는 해외 유학 생활을 마친 뒤 고향인 여수에 정착해 창작 활동을 이어가려 했으나, 초기에는 작업 공간과 생계, 네트워크의 한계로 한 차례 좌절을 겪은 바 있다.
이후 두 자매는 다시 여수로 돌아와 더불어민주당 청년위원회와의 소통을 계기로 지역 청년 네트워크와 연결되면서 현재는 여수에 기반을 두고 창작과 교육·기획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김온정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는 우주와 바다라는 상징을 통해 청년 예술가가 지역에서 어떤 언어로 작업을 확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도"라며 "한옥이라는 로컬 공간 자체가 작품의 일부가 되도록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1층 한옥 공간에서 여수의 바다와 파도를 모티브로 한 '바다를 품은 항아리' 시리즈를, 별도 공간에서는 인공월면토를 활용한 '우주를 품은 항아리' 작업을 선보이며 지역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담아냈다.
백인숙 여수시의회 의장은 축사를 통해 청년과 예술, 도시의 방향성을 함께 언급했다. 백 의장은 "의장으로서 늘 고민하는 것이 인구 감소 시대에 청년들에게 어떤 도시를 남겨줄 것인가 하는 문제"라며 "오늘 이 공간에서 젊은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보며 여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시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김효지 작가의 작업은 전통과 과학, 예술과 미래가 만나는 상징적인 시도"라며 "여수의 바다와 결합된 예술이 지역을 넘어 세계로 확장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김종길 여수시의회 의원은 "현장에서 보고 듣다 보니 그동안 몰랐던 지역 문화의 가능성을 느끼게 됐다"며 "이런 시도가 이어질 수 있도록 관심을 갖겠다"고 말했다.
이석주 여수시의회 의원은 청년 예술인의 지역 정착을 강조했다. 이 의원은 "여수시의회에서 처음 발의한 조례가 '청년예술인 지원 조례'였다"며 "지역에서 묵묵히 작업을 이어가는 청년 예술인이 여수를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김효지 작가는 작품 소개에서 "작업을 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지역성과 지속 가능성"이라며 "여수의 바다, 버려지고 쌓이는 폐자원, 그리고 이곳 사람들과의 관계가 제 작업의 일부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도 예술 활동이 지속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번 전시를 통해 나누고 싶다"고 했다.
낭만배울학교 쉬어家는 전시뿐 아니라 회원제 프로그램과 교육, 워크숍, 교류 행사를 통해 청년 창작자와 시민이 일상적으로 만나는 구조를 지향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도 전국 각지에서 참여한 회원과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교류하며 '생활 속 문화 공간'으로서의 성격을 드러냈다.

지역 소멸과 청년 유출이 반복되는 현실 속에서, 이번 전시는 '왜 떠났는가'가 아닌 '왜 다시 돌아왔는가'를 묻는 현장으로 읽힌다. 여수 원도심의 한 고택에서 시작된 이 작은 실험이 청년 정주와 지역 문화의 지속가능한 모델로 확장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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