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베네치아, 인천-14] 위대한 도시와 위대한 시민
  • 김형수 기자
  • 입력: 2025.12.18 08:00 / 수정: 2025.12.18 08:00
베네치아, 봉건지배 극복·공화국 수도 구축
공정·포용·정의로운 인본 도시로 함께 가야
유럽의 문화 수도 파리는 프랑스 대혁명의 발원지이다. 에펠탑의 레이저 불빛이 밤하늘을 비추고 있다. /프랑스 관광청
유럽의 문화 수도 파리는 프랑스 대혁명의 발원지이다. 에펠탑의 레이저 불빛이 밤하늘을 비추고 있다. /프랑스 관광청

'동북아 베네치아, 인천'은 인천이 지닌 역사적, 문화적 자원을 바탕으로 미래형 해양도시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시리즈로서 <더팩트>와 인천학회(회장 김경배)가 공동으로 기획 연재한다. 2017년 9월 출범한 인천학회는 인하대, 인천대, 청운대, 인천연구원, 인천도시공사,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국내 최초의 지역학회로서 인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연구하는 지식공동체이다. 300만 대도시 인천의 도시 발전을 위한 새로운 정책과 담론을 형성하고 다양한 해법을 찾아가는 학술 활동의 성과는 다른 도시에도 적용될 수 있는 국가 발전의 에너지가 될 것이다.

'동북아 베네치아' 제목은 글로벌 해양도시로서 관광, 물류의 세계 거점 도시를 향한 인천의 발전 가능성과 미래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연재는 인천의 잠재력을 재조명하고, 시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공감의 장을 마련한다. 또 동북아 해양 네트워크의 중심 도시로 도약하는 데 필요한 이슈를 제공하고, 단순한 도시의 확장을 넘어 살고 싶은 지속가능한 도시의 미래는 어떻게 조성돼야 하는지 그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인천을 어떻게 하면 위대한 도시로 만들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위대한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고층 건물, 첨단 기술, 화려한 경관, 오래된 역사만으로 도시는 위대해지지 않는다. 도시의 위대함은 시민의 위대함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들은 많다. 하지만 그 이름값이 곧 '위대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뉴욕은 금융과 자본의 중심지이지만 시민적 가치나 역사의 전환을 이끌어낸 도시라 하기에는 부족하다. 이스탄불과 카이로는 찬란한 문명을 품고 있으나 현대 시민정신의 상징은 아니다. 도쿄와 빈 역시 문화·경제적으로 주목받지만 '위대한 시민정신'이라는 기준에는 미흡하다.

그렇다면 어떤 도시가 진정한 의미에서 위대한 도시인가? 필자는 파리, 런던, 워싱턴DC, 베네치아, 암스테르담을 꼽고 싶다. 이 도시들의 공통점은 도시의 변화가 시민의 참여·저항·합의·관용·자유·평등이라는 가치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는 단순한 문화 수도가 아니라 프랑스 대혁명의 발원지였다. 파리시민들은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과 인권사상을 세계사에 구현한 주역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다'는 선언은 바로 이 도시의 시민적 저항에서 나온 것이다.

영국 런던은 절대왕정을 시민의 힘으로 제한하고, 의회민주주의와 입헌군주제를 정착시킨 도시다. 피를 흘리지 않고 시민적 합의로 질서를 만들어낸 명예혁명은 런던이 왜 위대한 도시인가를 잘 보여준다.

미국 워싱턴DC는 도시 자체가 민주주의의 상징적 교본이다. 국회의사당, 링컨기념관, 워싱턴 기념비의 조화로운 배치는 건국의 이념을 일상 속에서 상기시기며, 정치가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중심에 두어야 함을 끊임없이 환기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육지의 봉건지배를 견디지 못한 시민들이 바다 한가운데 직접 땅을 만들고 공화국을 세운 도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매립과 축조를 통해 태어난 도시 위에 관용과 자유주의의 전통을 구축했다. 이들 도시는 시민정신이 도시의 정체성을 규정한 사례이다.

인천시가 주최하는 INK(Incheon K-pop) 콘서트에 참가한 관중들이 환호하고 있다. /인천관광공사
인천시가 주최하는 'INK(Incheon K-pop) 콘서트'에 참가한 관중들이 환호하고 있다. /인천관광공사

이런 기준에서 보면 시울 역시 위대한 도시가 될 자격을 갖추고 있다. 한국사회는 중대한 헌정 위기 속에서도 폭력 없이 민주적 절차를 회복하고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루어냈다. 같은 상황이 미국이나 유럽, 남미 등 다른 국가에서 벌어졌다면 심각한 충돌과 희생이 뒤따랐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국 시민들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었고, 이는 세계적으로도 놀랄만한 역사적 교본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민은 이미 위대한 시민이며, 서울은 그런 시민을 품은 위대한 도시로 기록될 가치가 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인천은 어떻게 위대한 도시가 될 수 있을까? 앞서 말했듯 위대한 도시는 외형적 규모나 기술력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공정하고, 포용하며, 정의로운 인본 도시가 되어야 한다. 파리와 런던이 인권과 시민의식을 중심에 두었듯, 워싱턴DC와 암스테르담이 자유와 관용을 도시의 정신으로 삼았듯, 인천 역시 이러한 가치의 토대 위에서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인천이 위대한 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음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정의로운 도시가 되어야 한다. 힘과 권력 앞에 굴종하는 것이 아니라 부당함을 바로잡는 시민의 용기가 필요하다.

둘째, 포용의 도시가 되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나 소수 집단을 배척하는 대신 다양한 삶의 방식이 공존하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공정한 도시가 되어야 한다. 기회와 절차가 평등하게 열려 있는 개방 사회는 시민의 신뢰를 쌓고, 그 신뢰가 도시의 힘이 된다.

마지막으로, 사람 중심의 인본 도시가 되어야 한다. 자동차나 자본이 아니라 시민의 삶과 희망, 안전과 문화가 우선하는 도시 구조가 형성돼야 한다.

이 모든 변화는 어느 한 사람의 힘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교육, 문화, 시민 참여가 어우러져야 하고, 무엇보다 시민 전체가 같은 방향을 바라볼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건축가이자 환경운동가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가 말했듯, '혼자 꾸는 꿈은 꿈일 뿐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인천이 정의·포용·공정을 지향하는 시민과 함께 그 꿈을 꾸기 시작한다면, 언젠가 우리는 후손에게 '위대한 도시 인천'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작은 바로 지금이고, 그 주체로서 인천시민 모두가 동행해야 한다.

글=김천권 인하대 명예교수·인천학회 고문

기획=김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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