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울릉 앞바다 수놓은 '어화'…오징어 어획량 급감 속 재도약 시그널
  • 김성권 기자
  • 입력: 2025.12.10 09:34 / 수정: 2025.12.10 09:34
"이 불빛이 꺼지면 우리도 없다"
칼바람 속 지켜낸 울릉 어부들의 밤
울릉도 앞바다 수놓은 어화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독자 제공
울릉도 앞바다 수놓은 '어화'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독자 제공

[더팩트ㅣ울릉=김성권 기자] 경북 울릉군의 '울릉 팔경(八景)' 중 하나로 꼽히는 '어화(漁火)'가 오랜만에 밤바다 위에 화려한 자태를 드러냈다.

울릉도 앞바다를 수놓는 고기잡이배의 집어등은 한때 여름에서 초겨울까지 끊이지 않던 장관이었다. 그러나 조업 불황이 이어지면서 최근 몇 년간 그 불빛은 점점 희미해졌고, 어화는 이제 관광 사진 속에만 존재하는 '추억의 풍경'으로 남는 듯했다.

하지만 9일 오후 저동항 인근 해상에서는 모처럼 많은 어선이 다시 불을 켰다. 해가 막 넘어가는 시각, 연근해 채낚기 어선들이 일제히 집어등을 밝히자, 수평선은 거대한 불빛의 띠처럼 환하게 펼쳐졌다. 칠흑 같은 바다 위에 떠오른 이 불빛은 잠시나마 울릉의 겨울을 따뜻하게 비춘 듯했지만, 그 뒤에 드리운 현실은 녹록지 않다.

밤이 깊어질수록 바람은 매섭게 몰아쳤다. 오징어는 불빛을 쫓아 모여들지만, 그것을 낚아 올리는 어부들의 손끝은 얼어붙는다. "예전 같으면 어선이 빽빽하게 들어찼지요. 불빛이 서로 부딪힐 정도였어요." 저동항에서 만난 한 50대 어민은 시린 손을 비비며 이렇게 회상했다.

울릉도 앞바다 수놓은 어화. /독자
울릉도 앞바다 수놓은 어화. /독자

그의 말대로다. 몇 년 전만 해도 200여 척의 어선이 밤새 불을 밝히며 울릉도 일대를 '바다 전체가 마을처럼 보일' 만큼 밝혀놓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오징어가 아예 잡히지 않아, 출어 자체를 포기하는 어민도 늘고 있다. 일부는 빚을 갚지 못해 배를 매물로 내놓거나 육지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오징어가 '금징어'라는 신조어로 불릴 만큼 희소해진 배경에는 복합적 요인이 놓여 있다. 해수 온도 상승, 어장 변화, 중국 어선의 무분별한 조업, 연안 생태계 이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어획량 급감은 울릉 지역 경제 전반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울릉도의 겨울 명물이던 오징어 건조대는 이제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바람만 맞고 있다. 가까스로 남아 있는 몇 개의 건조틀만이 과거의 명성을 기억하듯 바닷가에 서 있을 뿐이다. 한 어민은 "건조장을 보러 오는 관광객은 그대로인데, 말릴 오징어가 없으니 민망할 때가 많다"며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

오징어 조업의 침체는 어업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 상가, 운송업, 숙박업 등 울릉 경제의 줄줄이 고리가 모두 영향을 받는다. 오징어잡이 철에 몰렸던 인력 수요가 줄어들며 고용도 불안정해졌다. 어민이 육지로 떠나면 그 빈자리는 마을 공동체의 공백으로 이어진다.

울릉도 앞바다 어화. /독자
울릉도 앞바다 어화. /독자

이 때문에 울릉 주민 사이에서는 "어화가 꺼지는 날, 울릉의 생계도 꺼진다"는 우스갯소리 아닌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어민의 고령화도 문제다. 청년 인구가 줄어들며 기존의 선단을 유지하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울릉군과 정부가 연안 조업 지원과 자원 회복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 체감도는 여전히 낮다는 것이 어민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조업 규제와 안전 규정은 강화돼 부담만 늘어나는데, 정작 어장을 되살리는 실질적 대책은 더디기만 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과학 기반의 어장 관리 강화 △장기 모니터링 체계 구축 △무분별한 불법 조업 단속 강화 △청년 어업인 정착 지원 등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오징어는 울릉도 정체성과 직결되는 대표 수산물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업종 문제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과 맞닿아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모처럼 울릉 앞바다를 밝혀낸 어화는 단순한 조업의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어업인들이 건재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신호다. 불빛이 모여 장관을 이루듯, 어민과 지역사회, 행정이 함께 힘을 모을 때 울릉의 바다는 다시금 풍요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라져가던 어화가 다시 켜진 지금이야말로, 울릉도가 '어업의 섬'이라는 정체성을 지켜낼 마지막 기회인지 모른다.

울릉도 앞바다 어화. /독자
울릉도 앞바다 어화. /독자

t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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