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급식에 대한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과거 학교 급식이 먹는 것에 치중이 됐다면 현재 학교급식은 영양·식생활교육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학교 현장과 가정이 함께 하는 영양·식생활교육은 학생들의 올바른 성장과 식습관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에 <더팩트>는 총 10회에 걸쳐 대전시교육청의 학교 급식 정책과 우수 영양·식생활교육 운영학교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다섯 번째 순서는 2025년 학교급식 정책 시범학교로 선정돼 교사와 학생이 함께 참여하는 식생활교육이 진행되는 대전과학고등학교를 찾아갔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대전=정예준 기자] 대전과학고등학교의 가을 교정은 유난히 활기가 넘쳤다. 식재료를 써는 소리, 레시피를 두고 의견을 나누는 목소리, 그리고 교사와 학생이 함께 웃는 모습까지. 그 중심에는 ‘쿠킹사이언스(Cooking Science)’ 동아리가 주관한 사제동행 쿠킹클래스가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요리 체험을 넘어, 학생과 교사가 같은 식탁에서 과학을 이야기하고 건강을 연구하는 새로운 교육 실험이었다.
◇ "요리는 과학이고 관계다"… 배움의 풍경이 된 식탁
취재진이 찾아간 날의 쿠킹클래스의 주제는 ‘연근으로 여는 건강 레시피’. 학생과 교사는 연근조림쌈밥과 연근오색야채말이를 함께 만들며 조리 과정에서 일어나는 영양 변화, 색과 식감의 조합, 조리과학 원리를 자연스럽게 대화로 나눴다.
한 학생은 조심스럽게 말아 올린 연근 야채말이를 교사에게 건네며 "선생님, 제가 만든 건데 한번 드셔보세요"라고 말했다. 교사는 환하게 웃으며 취재진에게 "학생이 직접 만든 음식을 건네주는 순간이 가장 인상 깊었다. 요리를 매개로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었다"고 미소를 지었다.
짧은 체험 수업이었지만, 식탁 위에서 오간 대화는 깊었다. 학생들은 색감과 영양을 고민하며 창의성과 섬세함을 키웠고, 교사들은 협력과 관계의 가치를 다시 확인했다.

◇ ‘발효’와 ‘과학’이 만난 식생활 교육 실험
대전과학고는 올해 대전시교육청이 추진하는 ‘2025년 학교급식 정책 시범학교’로 선정됐다. 학교는 ‘건강과 친해지는 레시피 개발 및 올바른 식생활 실천’을 목표로, 발효음식의 건강효과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실제 생활로 확산시키는 것을 핵심 방향으로 잡았다.
시범학교 운영계획서에 따르면 프로그램은 단순 조리 실습에 그치지 않는다. 학생·교직원·학부모까지 아우르는 다단계 식생활 교육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학교는 △쿠킹사이언스 동아리(학생) △다락방·C.S.I.(교직원 학습공동체) △영양교사 연구회(전문 연구 조직)등 세 갈래의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이 조직들은 식재료의 조리과학 탐구, 발효음식 레시피 연구, 교육자료 개발, 건강 POP 제작 등 역할을 나눠 정책 시범학교다운 구조적 운영을 강화하고 있다.
◇ "과학실에서 식탁으로"… 학생 주도 탐구가 요리로 완성
쿠킹사이언스 동아리는 단순 요리 동아리가 아니다. 학생들은 발효 과정의 미생물 활동, 조리 중 영양 손실률, 색과 질감 변화 등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요리 연구를 수행한다. 연구 결과는 POP(급식 홍보물), 레시피북, 실험노트 등으로 만들어져 급식실에 게시된다.
성민경 대전과학고 영양교사는 "야채를 잘 먹지 않던 아이들이 직접 채소를 다루고 색감을 맞추며 식재료를 새롭게 받아들이는 변화가 나타났다"며 "요리는 탐구의 시작점이자 학생들의 건강한 습관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슬로우푸드 가치, 발효의 필요성, 재료 선택 능력을 익힌다. 동아리 회장인 경승현 학생은 "패스트푸드 대신 건강한 식재료를 더 찾게 됐다"며 "앞으로도 조리과학을 기반으로 건강한 요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 교직원도 배움의 주체로… ‘다락방’에서 만드는 건강한 식생활 공동체
학생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대전과학고는 교직원을 위한 학습공동체 ‘다락방’과 C.S.I.’도 운영한다. 교사들은 월 1회 직접 식재료를 다루고 레시피를 실습하며 교육 자료를 개발한다. 독후활동, 영양 이론 강의, 조리 실험, 토론까지 더해져 교사들 역시 ‘배우는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이는 학교 식생활 교육을 교사 개인의 역량에 맡기지 않고, 공동체 차원의 전문성으로 끌어올리는 의미 있는 시도다. 교사들은 "학생들과 함께 같은 재료를 만지고 같은 식탁을 공유하면서 교육적 접점이 넓어졌다"고 말한다.
◇ "사제 사이에 새로운 관계의 문이 열렸다"
쿠킹클래스에 참여한 한 교사는 "학생들이 만든 음식을 받아드는 순간 교사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며 "이런 시간이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훨씬 부드럽게 만든다"고 했다.
학생들 역시 "선생님과 함께 요리하며 평소에 못 나눴던 대화를 하게 됐다"며 "학교의 새로운 일상이 생긴 것 같아 즐거웠다"고 소감을 전했다.
성민경 대전과학고 영양교사는 "사제동행 활동은 요리를 통한 탐구의 즐거움뿐 아니라 작은 추억을 남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 "식탁은 또 하나의 교실"… 과학고가 보여준 식생활 교육의 새 방향
이러한 변화는 단순 프로그램 운영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대전과학고는 급식을 ‘영양 공급’이 아니라 교육과 연구의 공간으로 해석했다. 식재료·발효·조리과학·건강 레시피 등 배움 요소를 교실 밖으로 확장해, 학교 전체가 참여하는 학습 생태계를 구축했다.
이지영 교장은 "요리는 과학적 원리와 따뜻한 감성이 만나는 특별한 배움의 장"이라며 "이 경험이 교실을 넘어 가정과 지역사회로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사제동행 프로그램에 대해 "학교 식생활 교육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의미 있는 시도"라며 "학습이 삶으로 이어지는 실천형 교육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 건강한 식탁이 바꾸는 학교… "교육은 결국 함께 먹는 한 끼에서 시작된다"
대전과학고의 실험은 명확한 메시지를 전한다. 과학고의 식탁은 하나의 교실이 될 수 있고, 한 끼의 식사는 공동체를 배우는 수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발효와 과학, 건강과 관계, 학생과 교사. 이 네 요소가 만나 완성한 대전과학고의 ‘쿠킹사이언스 프로젝트’는 학교 식생활 교육의 패러다임을 조용히, 그러나 뚜렷하게 바꾸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한 가지 질문이 놓여 있다. "학생들이 더 건강하고, 더 따뜻하게 성장하기 위해 학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대전과학고는 그 답을 오늘도 식탁 위에서 찾고 있다.
※ '안전하고 건강한 학교 급식' 기사는 대전시교육청 지원을 받아 제작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