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수원=이승호 기자] 입찰부터 운영·관리까지 총체적 난국인 경기신용보증재단의 ‘차세대 전산망 구축 사업’이 3년여 표류 끝에 결국 실패하면서 피해 규모가 가늠조차 어려울 정도다.
이미 지급한 30억여 원의 사업비와 손해배상금을 다 받아낼 수 있을지 의문인 데다, 사업 재추진에도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동안 노후화한 전산망으로 도내 소상공인들이 제대로 서비스받지 못한 피해도 기회비용으로 따지면 상당하다.
18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신보가 올해 8월 13일 조달청에 차세대 전산망 구축 사업’ 계약 해제를 요청했다. 경기신보는 과업 수행사인 A정보통신 컨소시엄이 2023년 3월 6일부터 지난해 5월 29일까지의 계약 이행 기간을 지키지 않았고, 이후에도 14개월 이상 과업 이행을 미뤘다고 사유를 댔다. 이 때문에 소기업과 소상공인 보증지원 등 제반업무 추진에 막대한 차질과 재정적 손실이 있다고도 했다.
경기신보가 스스로 ‘사업 실패’를 선언한 것으로, 조달청은 A컨소시엄과 경기신보를 상대로 이미 지급된 사업비 회수 등을 놓고 의견 수렴 중이다. 조달청은 통상 2개월 안에 해제 여부를 결정하지만, 3개월 넘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양측의 책임 공방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 선지급 사업비 회수·손해배상 받을 수 있나
가장 시급한 문제는 경기신보가 이미 지급한 선지급 사업비 회수다.
경기신보는 전체 사업비 48억 8700여만 원 가운데 2023년 5월 11일 1차로 19억 5500만 원, 2차로 지난해 1월 26일 9억 7700만 원 등 모두 29억 3200만 원을 A컨소시엄에 선급금으로 지급했다. 여기에 사무실과 집기 임차비용 등을 합하면 지금까지 쓴 돈은 32억여 원까지 불어난다.
하지만 선급금만 하더라도 전액 회수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경기신보는 계약 위반을 근거로 A컨소시엄에 선급금 반환을 요청할 계획이다. 하지만 A컨소시엄이 계약 해제 책임이 경기신보에도 있다며 소송을 불사할 태세여서 계획대로 회수될지는 불투명하다. 여기에 조달청이 양측의 이견으로 3개월 넘게 계약 해제 결정을 미루는 것도 전액 회수 난항에 한몫한다.
시석중 경기신보 이사장도 소송을 전제로 "전에는 계약을 위반하면 (선급금을 전부 받아내는 게 소송에서) 유리하게 결정났는데, 최근에는 (작업에 투입된 인력) 인건비를 일부 인정해 주는 쪽으로 얘기가 된다"며 전액 회수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신보는 또 이행보험증권 16억 4800만 원으로 3년여의 손실을 만회하겠다는 입장이다.
선급금까지 전액 회수해 애초 사업비를 선회하는 65억 3500만 원을 채워놓겠다는 생각이지만, A컨소시엄이 ‘과도한 과업 추가’, ‘과업 기간 연장 미부여’ 등을 주장하면서 이 또한 계획대로 될지는 불투명하다.
◇ 사업 전면 백지화…시간·비용 피해
애초 이 사업은 경기신보의 오래된 정보시스템인 ‘마이다스’를 신보중앙회의 시스템 ‘이음’으로 통합하고, 다른 자체 정보시스템도 고도화하기 위해 추진됐다.
경기신보가 사용 중인 마이다스는 2007년 5월 구축한 뒤 20년 가까이 돼 성능저하와 업무처리 시스템 부하 증가, 확장성 한계 등의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전국 유일하게 신보중앙회와 다른 시스템이어서 업무 효율성도 떨어졌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시작한 이 사업이 3년여 표류 끝에 결국 실패하면서 경기신보는 다시 백지상태에서 사업을 계획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시급한 신보중앙회와의 시스템 통합뿐만 아니라 자체 구축 시스템도 모두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마저도 A컨소시엄과의 계약해지 절차를 마무리한 뒤에나 가능하다. 경기신보가 예상되는 소송전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판단에 뒤로 미뤘기 때문이다.
이 사업 때문에 이제껏 미뤘던 자체 시스템 개발과 고도화 사업도 다시 해야 한다.
비대면 보증·자금신청 모바일앱 개발, 전자보증관리·전자서명·위변조방지 시스템 등 전자문서화, 통계분석시스템, 인력관리 시스템, 비대면 업무시스템 등이다.
이 사업들을 개별로 추진할지, 중앙회와 시스템 통합을 하면서 기존처럼 진행할지 방침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 ‘3년’ 소상공인·직원 피해…파악조차 어려워
‘차세대 전산망 구축’ 사업비 48억 8700여만 원은 ‘기회비용’이다.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 규모의 보증 업무를 다루는 경기신보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작은 금액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업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투입할 비용과 시간, 이 과정에서 발생할 무형의 손실은 결코 작지 않다.
경기신보 내부적으로는 업무시스템 고도화가 지연되면서 직원들의 업무 효율성이 크게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사업 테스트를 위해 현업을 멈추고 TF로 차출한 인력들의 업무 공백도 상당했다.
경기신보는 2023년 7월부터 이 사업 TF로 전산직 5명과 사무직 10명 등 대리에서 팀장·과장까지 포함된 직원 15명을 차출했다.
한 직장인 온라인 게시판에는 "차세대 사업은 누가 책임집니까. 정작 책임지는 임원은 아무도 없네요", "3년 가까이 표류하다 결국 좌초 위기에 처했다. 수많은 인력과 시간이 허비됐고, 핵심 인력은 지쳐 떠나고 있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가장 큰 피해자는 도내 소기업과 소상공인이다.
비대면 보증·자금신청 모바일 앱 개발, 각종 서류의 전자문서화 등 고객 서비스를 혁신할 핵심 기능들이 전산망 구축 실패로 사실상 물거품이 되면서, 그동안 누적된 불편은 물론 앞으로 발생할 손해 역시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상원 의원(국민의힘·고양7)은 "안이한 사업 관리로 피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라며 "(시석중 경기신보 이사장이) 행정감사에서 책임을 다해 마무리 짓겠다고 한 만큼 이행 여부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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