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대전=정예준 기자] 대전 도안 2-9지구 중심상업용지의 지구단위계획 변경(용도변경) 추진이 시행사의 ‘자진 철회’로 중단됐다.
표면적으로는 시민 반대 여론을 의식한 결정처럼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업계와 시민사회의 '재도전을 위한 전략적 후퇴'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
대전시에 따르면 유성구 용계동 도안 2-9지구 중심상업용지에 대한 용도변경 민원을 제기했던 시행사는 지난 8일 대전시에 민원 취하 의사를 통보했다. 이어 11일 취하원이 정식 접수됐고, 다음 날인 12일 최종 처리됐다.
대전시는 당초 8월 중순쯤 교육청과 유성구청, 시 관련 부서 의견 수렴을 마친 뒤 최종 판단을 내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절차가 끝나기도 전에 시행사가 먼저 발을 뺀 셈이다.
민원의 핵심은 주거용 오피스텔 부지를 주상복합 아파트 1600여 세대로 바꿔 달라는 요구였다. 이 과정에서 특혜 시비가 불거졌고, 시민사회와 동종 업계의 반발이 잇따랐다.
대전시교육청은 학령인구 변화와 교육환경 악화를 이유로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으며, 시 내부 부서도 교통 혼잡·환경 부담 등을 우려하는 의견이 우세했다.
시행사가 부정적 판단을 예견하고 공식 ‘부결’ 결정을 피한 것은, 기록에 남으면 이후 재상정이 어려워지는 행정 절차의 특성을 의식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그 직후다. 민원 취하를 통보한 다음 날인 9일, 시행사는 주민 토론회를 열었다. 사업 필요성과 형평성 문제를 강조하며 여론 반전의 시도였다. 시행사 주도로 진행된 행사에서 반대 의견은 제한적으로만 반영됐다.
일부 주민 서명운동까지 병행된 점을 고려하면 이는 순수한 의견 수렴이라기보다 재추진을 위한 명분 쌓기에 가까웠다.
이번 사안은 도시계획의 공공성과 절차 신뢰를 다시 묻는다. 개발사업은 사익과 공익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갈등을 낳는다.
그렇기에 도시계획은 단기 이익보다 장기적 도시 비전을 우선해야 한다. 그러나 반복되는 민원 제기와 철회, 형식적인 주민 의견 수렴 절차는 행정에 대한 불신을 키운다.
이제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동일 사안에 대한 민원은 일정 기간 재접수를 제한하고, 공공기여 기준을 구체화해야 한다.
개발이익의 지역 환원 구조를 마련하고, 도시계획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는 일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있었다’는 기록만 남기는 의견 수렴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시민 목소리가 반영되는 구조여야 한다.
도안 2-9지구 개발은 잠시 멈췄다. 그러나 도시계획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과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중요한 것은 개발의 속도가 아니라, 그 결정이 누구의 목소리를 담고 있느냐다. 공익이 사익에 밀리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행정과 사회가 함께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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