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30년 전 도쿄의 그날과 지금의 최민호 세종시장
  • 김형중 기자
  • 입력: 2025.04.21 16:27 / 수정: 2025.04.21 16:27
최민호 세종시장. /김형중 기자
최민호 세종시장. /김형중 기자

[더팩트ㅣ세종=김형중 기자] 최민호 세종시장이 21일 약 4개월 만에 재개한 '월요이야기'에서 이달 초 출장길에 올랐던 일본과 베트남 방문기를 풀어냈다.

'월요이야기'는 최민호 시장이 세종시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칼럼 형식의 글이다.

최 시장이 이날 올린 글은 특히 30여 년 전 도쿄대학 유학시절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쓴 회고담으로 뭉클한 여운을 남겼다.

최 시장은 오사카 엑스포 한국관 개막식 참석을 시작으로 교토, 나라, 하노이 등을 잇따라 방문하며 세종시의 행정수도 비전을 소개했다. 특히 오사카에서는 한글문화도시 세종의 의미를 강조하며 재일동포들과의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도쿄대학 유학 시절 자신이 품었던 결연한 각오를 회상했다고 밝혔다.

그는 1990년대 초 지방자치법 연구를 위해 일본 도쿄대학에 내무부 최초의 국비 유학생으로 파견됐다. 항일의식이 뜨거웠던 그는 당시 "비록 배우러 가지만 굴복은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가방에 태극기를 넣고, 광복절 즈음 일본 땅을 밟았다.

그는 "일본 노래는 절대 배우지 않겠다. 논문에 한국 정보를 한 줄도 넣지 않겠다. 한국 돈은 단 한 푼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다짐은 현실 앞에 결코 가볍지 않았다. 보증인이 없어 가족 초청도 어려웠고 넉넉지 않은 유학비 속에 부인이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함께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지켰다. 자존심도 원칙도.

학위논문 주제는 일본의 '광역연합'. 당시 한국에는 없던 개념이었지만 30년이 지난 오늘날 '충청권 광역연합'이란 이름으로 충청권에서 구현되고 있다. 그 시절 그는 앞서 있었고 그 믿음은 현실이 됐다.

당시 유학생활 중 열린 한일 내무부 교류회의 만찬 자리에서 일본 측은 한국 노래를 부르며 환영했고 자연스레 한국 측에도 일본 노래를 요청했다. 모두가 그를 바라봤고 "최 사무관이 일본 노래 하나 불러보게"란 윗 사람의 지시에 등골이 서늘해졌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날도 원칙을 지켰다. 일본 노래 대신 조용필의 '서울 서울 서울'을 일본어 자막을 보며 불렀다. 상대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으면서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이번 출장은 그에게 뜻밖의 감동도 안겼다. 30년 전 자신을 도와준 민단 사무국장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그 딸이 이제는 한국어를 배우러 한국에 유학 와 서울에서 당당히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린 시절 한국어를 배우지 못했던 그녀가 이제는 스스로 한국어를 찾고 선택했다는 것은 단순한 언어의 변화가 아니었다. 그 변화는 곧 시대의 전환이었다.

최 시장은 이번 출장에서 일본 친구들에게 김치를 선물했다. 친구들은 기뻐했고 그는 깨달았다. 이제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 오히려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을.

BTS, K-POP, K-푸드, 그리고 전 세계가 사랑하는 한국어. 이제 우리는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의 국민이 되었다. 과거의 눈물과 분노는 오늘날 자부심과 긍지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이제 달라진 시대의 한국인으로 세종시장으로 다시 일본을 찾았다. 이번에는 일본 친구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고 그는 정중한 일본어로 응답했다. 노래방에서는 여전히 '서울 서울 서울'을 불렀고 일본 노래를 부르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최 시장은 "시대도 사람도 변했다"며 과거의 상처를 품은 자신이 이제는 너그러워지고 부드러워졌음을 고백했다.

그는 "역사는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힘의 흐름"이라는 말로 글을 마무리하며 시대의 변화 속 한국인의 자긍심을 강조했다.

tfcc2024@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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